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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은퇴 선언 신예지, "피겨를 향한 사랑은 계속 됩니다"

기사입력 2009.11.06 10:54 / 기사수정 2009.11.06 10:54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은퇴에 대한 준비는 지난 시즌부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 대회가 마지막 대회일 거라는 생각이 일관적으로 진행됐죠. 하지만, 2009-2010시즌을 반드시 치르고 싶은 마음은 강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은퇴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7일과 8일, 태릉선수촌 실내 아이스링크에서는 '2009 전국 회장배 전국 피겨 스케이팅 랭킹전'이 벌어진다. 2009-2010시즌에 치러지는 국내 첫 피겨 스케이팅대회인 랭킹전은 김연아(19, 고려대)와 함께 2010 밴쿠버 올림픽에 출전하는 여자 싱글 선수가 결정된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 대회에서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는 이는 전 국가대표이자 피겨 계의 맏언니인 신예지(21, 서울여대)다. '페스타 온 아이스'를 통해 '갈라의 여왕'으로 불려온 신예지는 가장 꾸준하게 국가대표로 활동해온 스케이터다.

지난 시즌까지 '국가대표의 맏언니'로 활동했던 신예지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신예지가 설 마지막 무대는 이번 회장배 전국 랭킹전의 마지막 날인 8일, 마지막 무대에 펼쳐질 예정이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아이스링크를 쉽게 떠나고 싶지 않았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그리고 그랑프리 시니어 시리즈에서 입상해본 경력은 없지만 신예지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국내 여자 싱글 정상권에 머물렀던 선수였다. 특히, 2006년에 출전한 ISU(국제빙상경기연맹) 주니어 그랑프리 멕시코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수상했다.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에서 메달을 획득한 국내 스케이터는 김연아와 신예지를 포함해 5명(김나영, 최지은, 곽민정)이다.

부상과 부츠 문제로 인한 슬럼프를 이기고 신예지는 지난 시즌 다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스케이팅에 남다른 열정이 있었던 신예지는 되도록 오랫동안 빙판에 머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선수생활을 지속해나갈 여력은 고갈돼 있었다. 무엇보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신예지를 곁에서 지원해준 어머니인 허정미 씨의 지원이 더 이상 힘들게 됐다.

"작년 벌어진 랭킹 전부터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시즌을 마무리하는 강릉 종별대회까지 지속적으로 참가했습니다. 종별대회를 마칠 때만 해도 한 시즌을 더 치르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어요. 그러나 결국엔 시즌을 치러보지 못한 상황에서 은퇴를 하게 됐습니다"

신예지는 은퇴를 결심한 이후, 3개월 동안 무척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피겨 스케이터의 길을 걸어오면서 순탄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때마다 스케이트 끈을 묶게 한 원인은 피겨에 대한 열정이었다.



"한참 성장할 시기인 10대 중반 때, 큰 부상을 당하면서 3년 동안 고생했어요.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스케이트를 타야겠다는 신념만이 절 일으켜 세워줬죠. 평생 동안 스케이트만 타서 그런지 부츠를 벗으면 모든 의욕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마치 말기 암환자가 된 심정 같았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아쉬움을 조금씩 극복해냈습니다. 지금은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가끔 제자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보면 빙판 위에서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져요"

아이스쇼에서 다양한 '끼'를 발산한 신예지는 '갈라의 여왕'이란 명칭을 얻었다. 은퇴를 선언하면서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팬들의 곁을 떠나는 점이라고 말했다.

"팬들이 제게 보낸 성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멈추지 않는 당신이 보고 싶다"라는 문구였어요. 특히, 지난 8월에 벌어진 '2009 아이스올스타즈' 공연 때, 저는 조연출로 일했었어요. 한결같이 절 아껴주시는 팬 분들은 조연출로 데뷔한 저를 찾아와 크게 성원해 주셨죠. 그 문구처럼 멈추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엔 걸음을 멈추게 됐어요"

가장 고생하며 스케이트를 탔던 마지막 세대, 후배들은 내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겨 여왕' 김연아를 통해 드러난 사연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정진한 노력에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국내에서 피겨 스케이팅을 한다는 현실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여실히 드러났다.

김연아보다 2년 선배인 신예지도 험난한 길을 걸으며 선수 생활을 유지해왔다. 신예지는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힐 만큼, 장래성이 기대됐지만 불청객이었던 부상은 신예지의 발목을 잡았다.

또한, '노력형' 선수였던 신예지는 격려보다 '재능이 부족해 안 될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신예지는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여러모로 불리한 핸디캡을 안고 있었다. 167cm로 국내 최장신 선수였던 신예지는 큰 체격 때문에 점프 착지 시, 몸에 오는 충격이 더욱 강했다. 또한, 큰 신장을 지탱해줄 발목이 가늘었고 평발이었다. 지속적인 점프를 하는 피겨 선수들에게 평발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제가 평발이라서 주위에서는 더블 악셀을 뛰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었어요. 어린 나이부터 점프 연습을 하는 현재에 비해 제가 어렸을 때는 써클 원을 도는 연습을 계속하고 점프 연습은 지금보다 늦은 시기에 연습했어요. 점프를 배우기엔 늦은 시기인 12세 때부터 점프를 배웠는데 비록 늦었지만 결국엔 더블 악셀을 완성해냈어요. 그리고 트리플 점프도 랜딩하게 됐죠"

주니어 시절부터 김연아와 최지은(21, 고려대)과 함께 한국 피겨 스케이팅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한 신예지는 2007년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당시 세계랭킹 29위였던 신예지는 그랑프리 시리즈에 초청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인 허정미 씨는 그랑프리 대회 출전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집까지 파는 결단을 내렸다. 피겨 스케이팅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는 종목이다. 기량 향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지훈련도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힘들게 전지훈련을 감행했지만 정작 대회 초청장은 날아오지 않았다.


미국 LA에서 신예지를 지도해준 세계적인 피겨 지도자인 프랭크 캐롤(미셀 콴의 전 코치)이었다. 신예지의 가능성을 확인한 캐롤은 그랑프리 시리즈에 참가하지 못하는 신예지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결국, 캐롤은 "너희 나라의 피겨 행정력은 어떻게 됐기에 충분히 출전할 수 있는 선수가 그랑프리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이냐?"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또한, 피겨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힘겨워하는 점은 '부츠 문제'였다. 김연아도 지속적으로 무너지는 부츠 때문에 피겨를 그만둘 뻔했던 사연이 있다. 이런 점에서 신예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예지는 누구보다 부츠 문제로 고민을 겪었다. 피겨 선수로서 큰 체격도 컸던 데다가 발도  평발이어서 부츠의 생명력이 매우 짧았다. 그리고 모든 부츠를 해외에서 공수받는 국내 실정 때문에 갑자기 스케이트 화에 문제가 생기면 훈련에 큰 지장을 주었다.

실제로 대회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부츠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허정미 씨는 홀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가 부츠를 사오는 모험도 감행했다.

"한번은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남아있는 부츠가 계속 무너져서 속을 태웠어요. (신)예지가 출전할 랭킹 대회는 눈앞에 다가왔는데 무너지는 부츠 때문에 대회 참가에 지장을 줄 정도였죠. 결국, 연습에 전념하고 있는 예지는 남겨두고 홀로 미국 LA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금요일에 출발해서 곧바로 부츠 세 켤레를 구입한 뒤, 일요일 새벽에 도착했죠. 지구 반대편에 순식간에 날아가서 얻은 부츠라 기대를 했지만 결국, 이 부츠들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어요. 그때의 심정은 차마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어머니인 허씨는 무남독녀인 외동딸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씨의 사연이 공개되면서 '피겨 맘'이 많은 화제를 모았다. 가장 가까운 피겨 코치는 물론, 매니저의 역할과 운전사, 그리고 건강관리 및 경제적인 지원까지 모든 것을 관리하는 '피겨 맘'의 일상은 자신의 삶을 상당부분을 희생해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옆에서 가장 큰 힘이 돼 준 어머니에 대한 질문에 신예지는 눈물을 붉혔다.

"(김)연아가 어머니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어요." 엄마에게 받은 만큼, 모든 것을 돌려주고 싶다고요.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겨를 하는 저를 위해 엄마가 희생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그러나 어머니인 허씨는 "벌써 돌려주고 있다. 코치 생활을 하면서 나를 부양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피겨 선수인 딸이 고생하는 모습은 익숙했지만 너무나 안쓰러웠던 모습이 있었다. 하루종일 부츠를 신고 점프를 하는 특성상, 발에 오는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못하는 딸의 모습은 차마 지켜보기 힘들었다.



"은퇴를 결심한 뒤, (신)예지가 심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선수생활을 할 때보다 잠을 제법 잘 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였죠. 그런데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선수시절, 발은 물론, 온몸이 아파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지금은 잠을 편히 잘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이 너무 안타깝게 들렸어요. 하루에 7-8시간 연습하고 부상을 안고 살았으니 밤에 잠도 편히 못 잤죠. 지금은 몸이 덜 아파서 몇 년 만에 잠은 편하게 잘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스케이트가 타고 싶다고 예지는 늘 말해요"

신예지는 지금까지 자신의 아픈 모습을 많이 보여드려서 미안하다고 답변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깨달은 신예지는 앞으로 자신이 지도할 유망주들에게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고생은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피겨계의 안철수'가 되고 싶은 것이 새로운 목표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은퇴를 결심한 신예지는 현재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단순히 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무도 짜주고 있다. 자신이 연기하는 갈라 프로그램 안무를 직접 짜는 신예지는 '페스타 온 아이스'에서 세련된 안무를 선보였다.

신예지가 연기한 갈라 프로그램을 본 많은 피겨 유망주들 중, 신예지에게 안무를 부탁한 이들도 상당하다. 신예지는 벌써 20여 명에 이르는 꿈나무에게 직접 안무를 짜주었다. 기술 코치는 물론, 안무가도 해보고 싶다는 신예지는 국제심판에도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선수시절, 아쉬운 점이 많아서 그런지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피겨 지도자는 물론, 안무가와 국제심판도 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피겨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어요. 또한, 모든 선수들은 재능의 정도가 차이는 있지만 저마다 다른 개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자신만이 가진 개성을 일깨워주는 점도 제 몫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신예지의 목표는 아이스쇼 연출자가 되는 것이다. '아이스올스타즈'에서 조연출로 일해 본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됐다. 특히, 세계적인 안무가인 셰릴 본과 김연아의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은 신예지의 안무를 보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셰릴 본이 기회가 오면 함께 갈라를 해보자는 제의도 했었어요. 저에겐 매우 영광스러운 제안이었죠. 그리고 제 롤 모델인 아라카와 시즈카(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격려해 줬어요. 이런 분들의 성원은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무대가 될 고별 공연을 앞둔 신예지는 고별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팝 그룹 Blue의 'Sorry seem to be hardest word'는 자신을 성원해준 팬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시즌에 연기할 쇼트프로그램 곡(쉰들러 리스트 테마 음악)과 롱 프로그램의 곡(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도 이미 지정해 뒀었다. 이제는 이 곡에 맞춰서 연기할 수 없지만 평소에 매우 좋아했던 곡이라고 신예지는 대답했다.

피겨 스케이터로 활동하면서 숱한 역경을 맞이했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에 후회는 없다고 신예지는 말했다. 피겨와 관련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힌 신예지는 ‘피겨계의 안철수’가 되고 싶다며 미소를 지었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메달을 따는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후회 없는 길을 걸어왔어요. 앞으로 시작될 새로운 길도 알차게 걷고 싶습니다. 피겨 팬 여러분에게는 "스케이트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한 선수가 있었다"라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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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신예지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남궁경상 기자, 신예지, 김연아, 아라카와 시즈카 (C) 신예지 제공]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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