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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마이웨이' 홍여진, 사생아·이혼·유방암…가슴아픈 인생史

기사입력 2018.10.11 22:41 / 기사수정 2018.10.11 22:44


[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마이웨이' 홍여진이 인생 이야기를 공개했다.

11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마이웨이'에 출연한 홍여진은 1979년 미스코리아 선(善) 출신으로 올해 데뷔 30년 차 배우다. 강한 이목구비로 인해 주로 성격 강한 역할을 많이 맡은 그는 이제는 소박하고 털털한 본인의 매력을 드러내며 제2의 연기 인생을 꿈꾼다. 배역의 크기와 상관 없이 연기를 하는 자체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에게 연기란 생존을 넘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홍여진은 "작년까지는 활발한 활동이 없었다. 솔직히 노년에 모아둔 것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나. 연금만 모아서 하루하루 보내야 하나 할 정도였다. 올해 들어 많이 바빠졌다. 다행히 드라마도 들어오고 홈쇼핑도 들어온다. 굉장히 알찬 나날, 이게 정말 감사한 거구나를 느끼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홍여진은 "미스코리아 때는 1979년이었다. 젊었을 때 얼마나 잘나갔을까, 얼마나 화려한 시절을 보냈을까 하는데 미국 이민 간지 1, 2년 밖에 안 된 초짜여서 영어도 그때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엄마가 쓰러져 바로 돌아가셨다. 내가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 수 있는 게 부동산 아니면 보험회사다. 20살부터 30대까지 보험을 쭉 했다. 빨리 결혼해 아이를 낳고 서른 전에 낳아야겠다 싶어 '추억의 이름으로' 끝나고 바로 결혼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 무작정 결혼을 하고 보니 그 사람의 인간성, 됨됨이를 떠나 모든 조건이 이 사람이 결혼할 조건이 아니었다. 미국은 신용이 최고다. 난 항상 깨끗했다. 은행 계죄를 열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는 융자가 있더라. 그 사람이 내 걸 도용해 빼쓰고 신용카드까지 빼서 쓰고 있더라"고 덧붙였다.

또 "한국에서 에로 영화가 한창 붐일 때였다. 그 전에는 그런 캐스팅이 안 들어오다가 베드신이 있는 영화가 들어왔다. 결혼했으니 당연히 거절했다. 출연료가 2배더라. 남편이 날 불러다 놓고 하는 얘기가 '배우를 한답시고 이 길로 나섰는데 벗는 게 무슨 흉이냐'라고 하더라. 난 그렇게 안 들렸다. '이것만 있으면 카드 값을 갚아 줄 수 있는데'라고 생각했다. 내가 분명히 얘기했다. 한국에서 이 영화를 찍으면 당신과 끝이라고 했다. '이건 아닌 것 같다. 부도가 나서 은행에 파산 신고가 나도 우리가 벌어 갚아야지 이걸 갚기 위해 내가 옷을 벗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했다. 자꾸 나를 종용하더라. 반 먼저 받은 돈을 그 사람에게 줬다. 한국에 있으면서 이 사람하고는 안 되겠다, 아이를 갖기 전에 갈라서자는 마음으로 내가 이혼하자 해서 집을 나왔다"고 고백했다.

홍여진은 에로 배우, 이혼녀라는 타이틀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죽으려고 했으면 벌써 죽었지 싶었다. 남자와 이혼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겠다고 생각할 때 죽고 싶었다. 암 걸렸을 때보다 더 죽고 싶었다. 30대에서 40대를 계속, 그러다가 유방암에 걸렸다. 내 과거가 지워진 것 같은, 30여년 평생이 지워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은 뒤 3년 동안 우울증을 겪었다. 그러나 자신의 투병기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중년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 울더라. 내가 자가 검진하는 법을 항상 얘기했는데, 만지니까 멍울이 잡혔다고 하더라. 차일피일 미루느라 안 가고 6개월이 지나 병원에서 나오는데 말기라고 하더라. 그 다음부터 어떤 프로그램이든 건강 프로그램에서 유방암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은 무조건 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다. 1명이 그걸 보고 생명을 건져낼 수 있다면 난 지금도 나간다"며 울먹였다.

홍여진은 절친한 박원숙을 만났다. 그는 "내게 언니가 둘이 있다. 엄마가 애 둘을 낳고 내가 세 번째 애다. 애 둘을 이북에 다 두고 왔다. 이산가족이 된 거다. 그 언니가 선생님 나이다. 아버지가 다르다. 이남에 와서 아버지를 만나 나를 낳은 거다. 나이가 들고 보니 엄마 가슴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된다. 자기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고 돌아가신 거다. 살아있을 때 효도를 많이 못 했다. 아예 엄마를 미워하기까지 했다. 날 왜 쓸데없이 낳았는지 생각했다. 엄마 돌아가시고 가정사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게 굉장히 컸다. 그게 가장 아팠고 힘들었다. 이제는 엄마가 얼마나 이남에 와서 힘들었을까 한다"며 속사정을 꺼냈다. 

홍여진은 제작진에게 "엄마는 유부녀였다. 아빠를 만나 날 낳았지만 이북에 남편과 애 둘이 있으니 호적이 정리가 안 된 상태였을 거 아니냐. 아버지를 만나 나를 낳았으니 엄마와 아버지는 정식 결혼한 게 아니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 가족이 반대했다. 어느 집이 애 둘 딸린 여자에게 장가를 보내겠냐. 날 아버지 집에 보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그래서 엄마가 원망스러웠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엄마라도 안 보냈을 거다. 자기 딸을 두고 또 딸을 낳는데 누가 보내겠냐"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을 때 아버지에 대해 찾아봤다. 그 집에도 아이가 셋이 있다더라. 난 원래 성이 백씨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남동생(삼촌) 호적에 올린 거다. 난 어렸을 때 삼촌이 아버지인 줄 알았다. 엄마가 어릴 때 날 삼촌 네 집에서 자라게 했다. 엄마는 떨어져 있었다. 집에서 절에도 많이 가고 굿을 많이 했는데 어떤 스님이 그랬다더라. 이 딸과 오래 살려면 둘이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같이 있으면 둘 중에 하나가 죽는다고 했다더라. 엄마가 삼촌네 집에서 자라게 한 것도 미웠다.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했다. (나이 들고 보니) 날 떨어뜨린 것도 엄마에게는 큰 사랑인 거였다"며 안타까워했다.

홍여진은 북한에 있는 언니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 8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신청했지만 탈락했다. 방송으로 지켜보며 남다른 마음을 느꼈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해하는 현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khj3330@xportsnews.com / 사진= TV CHOSUN 방송화면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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