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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준의 리듬체조 일루션] '리듬체조 1인자' 카나예바, '예술성'에 도전

기사입력 2009.05.06 02:00 / 기사수정 2009.05.06 02:00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난도의 여왕' 예브게니아 카나예바 - 하

'관록'을 이긴 떠오르는 신성

2008 베이징올림픽 리듬체조의 경쟁구도는 러시아 선수들과 안나 베소노바(25, 우크라이나)의 대결이었다. '심금을 울리는 리듬체조 선수'로 각광을 받은 베소노바는 가장 강력한 올림픽 우승후보였다.

베소노바와 함께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던 '러시아의 1인자'인 베라 세시나(23, 러시아)는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5 세계선수권대회 3관왕인 올가 카프라노바(22, 러시아)가 버티고 있었고 무서운 성장세를 타고 있던 '신성' 예브게니야 카나예바도 금메달 후보로 지목됐다.

리듬체조는 올림픽에서 오직 한 개의 메달이 걸려있다. 세계선수권을 비롯한 다른 대회처럼 종목별로 메달을 획득할 수 없는 것이 올림픽의 특징이다. 오직 한 개의 메달을 놓고 4개의 종목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이 선수들의 과제다. 올림픽 결선을 앞둔 예선전에서 줄과 후프, 그리고 곤봉과 리본을 연기한 모든 선수들의 순위가 매겨졌다.

1위에 오른 선수는 18세의 카나예바였다. 2007년부터 시니어 무대를 평정한 카나예바였지만 올림픽에서 이처럼 두각을 내리라고는 쉽게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카나예바는 예선전에서 실수가 있었음에도 다른 선수들을 큰 점수 차이로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오직 카나예바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난도'로 승부를 본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2006년, 카나예바는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아직 주니어 선수의 티를 벗지 못한 카나예바는 수구 다루는 기술이 서툴렀고 실수도 많았다. 국제심판인 김지영 위원은 2006년 프랑스 코르베유 월드컵시리즈에서 처음 만난 카나예바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카나예바는 얼굴이 워낙 예뻐서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16세의 어린 선수는 수구를 다루는 기술이 서툴렀고 실전 경기에서는 자잘한 실수도 많이 나타났다. 이러한 점 때문에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지만 가능성은 충만 해보였다. 그리고 2007년부터 카나예바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뛰어난 유연성과 최고의 재능을 가진 카나예바는 그 이후로 급성장해 나갔다"



카나예바는 2007년 그리스 파트라스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러시아에게 금메달을 안겼다. 그리고 2007년 아제르바이잔 바쿠 유럽선수권대회에서 리본과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단체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린 카나예바는 개인전에서도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08년 스페인 베니돔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후프와 곤봉, 그리고 리본에서 우승을 차지해 3관왕을 기록했다. 또한, 같은 해에 벌어진 이탈리아 토리노 유럽선수권대회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카나예바는 리듬체조 강국인 러시아의 '에이스'로 부각됐다.

18세의 어린 선수인 카나예바의 성장은 괄목할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림픽과 같은 큰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수많은 경험'이다. 올림픽을 앞둔 카나예바에게 '경험 부족'이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카나예바는 '경험'을 넘어서는 세계 최고의 '난도(리듬체조의 기술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줄과 곤봉 연기에서 보여준 카나예바의 피봇(한발로 회전)은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들었다.

한쪽 다리를 등에 닿도록 바짝 올리고 부드럽게 회전하는 턴은 카나예바의 주특기였다. 어려운 동작을 취하고 난 뒤, 부드러운 회전을 이용해 다음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턴은 카나예바의 프로그램을 장악하고 있었다.

수구를 던지고 받아내는 기술도 흠잡을 때 없었다. 줄 연기를 시작할 때, 카나예바는 오른 발로 줄을 허공에 높이 띄운 뒤, 손으로 받아내는 기술로 포문을 열었다. 프로그램 중반부에는 허공에 띄운 줄을 받은 뒤, 곧바로 줄넘기를 시도하는 동작을 취했다. 그리고 허공 위로 높이 던진 줄을 오른쪽 다리로 받아서 마무리 동작으로 연결했다.

카나예바는 이러한 요소를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실수는 점프를 시도하고 난 뒤, 빙판에 넘어지고 마는 것이다. 리듬체조의 경우, 허공에 띄운 수구를 놓치는 경우가 선수들에게 닥쳐오는 '최고의 악몽'이다. 연기 도중 수구를 놓치거나 던져서 받아야 할 수구를 떨어트리는 실수는 리듬체조 선수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실수이며 돌이킬 수 없는 감점으로 이어진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이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수구를 놓치는 범실이다. 연기 도중, 자유자재로 다루어야 할 수구를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세계 정상급에 올라있는 리듬체조 선수들의 연령이 20대 초반에서 중반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카나예바는 불과 18세의 어린 나이에 모든 수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현존하는 리듬체조 선수들 중, 가장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하는 선수가 바로 카나예바이다. 수구를 최대한 높이 던져서 손이 아닌, 상체와 다리로 자연스럽게 받아내는 점도 카나예바의 특기다. 여기에 어려운 기술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유연한 피봇도 고득점을 받는 기술요소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카나예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다. 결과는 인나 주코바(23, 벨로루시)와 안나 베소노바를 제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쟁쟁한 선배들을 모두 누르고 '리듬체조 여왕'에 등극한 카나예바는 마지막 종목인 리본을 마치고 난 뒤, 동료를 얼싸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현존하는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 '난도'를 넘어 '예술성'에도 도전한다

한국 리듬체조를 대표하는 신수지(18, 세종대)와 손연재(15, 광장중)는 모두 카나예바와 친분을 가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어 회화가 가능한 신수지는 카나예프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신수지와 손연재는 모두 '난도'에 있어서만큼은 카나예바가 최고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카나예바가 아닌 베소노바를 언급했다. 이유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연기를 베소노바에게서 느낄 수 있기 때문.

1분 30초란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난도를 수행하려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수준 높은 난도를 자연스럽게 성공시키는 과제는 포인트를 따내기 위해 필수적으로 따라야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난도에 치우치면 무대 장악력이 떨어지고 표현력에 대한 집중력이 저하된다.

카나예바가 현존하는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라는 의견은 많은 리듬체조 관계자들이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심금을 울리는 '표현력'에 있어선 베소노바에게 밀리고 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떨치고 카나예바는 이번 시즌에 새롭게 태어났다. 예술점수가 강조된 올 시즌, 카나예바는 한 단계 성장했다. 지난달 20일, 포르투갈 포르티마오에서는 올 시즌 첫 번째 월드컵시리즈가 펼쳐졌다. 난도 점수와 예술 점수, 그리고 실시 점수(실수를 체크하는 점수)의 배점이 각각 10점으로 할당된 첫 공식 국제대회에서 우승은 카나예바에게 돌아갔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안나 베소노바는 물론, 베라 세시나를 제치고 카나예바가 우승을 차지했다. 현지에 직접 다녀온 김지영 국제심판은 "카나예바는 예술적으로도 괄목할만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선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난도와 예술성에서 고른 성장을 하고 있다. 새로운 채점 규정을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실수가 없는 카나예바'를 이길 선수가 현재로선 드물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그러나 카나예바도 방심은 금물이다. 무엇보다 베소노바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베소노바가 몇 가지 어려운 난도를 장착하고 자신의 주무기인 표현력에 힘을 싣는다면 언제든지 카나예바를 위협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카나예바가 등장하기 전, '러시아의 1인자'로 군림했던 베라 세시나도 무시 못 할 존재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는 이들 선수들의 연기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남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카나예바는 올림픽챔피언에 오른 최고의 선수지만 평소엔 매우 활발하고 친절한 선수로 유명하다. 신수지의 증언에 따르면 "카나예바는 모스크바로 전지훈련을 간 국내 선수들을 맡아 모두 친절하게 대해줬다. 매트에서 내려오면 평범한 10대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이 프로그램 연습을 할 때면 다른 선수들이 매트를 비워주는 관례는 '최고 선수'의 특권이었다. 김지영 위원은 "카나예바는 강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어서 기술이 안 되면 될 때까지 계속하는 근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올 시즌에 벌어지는 월드컵시리즈에서 카나예바가 몇 번이나 우승을 할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또한,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이기도 하다. 20대가 넘어야 물이 오른다는 리듬체조의 관례를 깨고 10대의 어린 나이에 정상의 자리에 오른 카나예바는 '난도의 여왕'을 넘어서 '예술성의 여제'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 = 예브게니아 카나예바 (C) FIG(국제체조연맹) 공식 홈페이지 캡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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