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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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이야기] 배리 본즈의 대부였던 윌리 메이즈

기사입력 2009.03.27 08:49 / 기사수정 2009.03.27 08:49

홍주형 기자

[엑스포츠뉴스 = 홍주형] 

- '조 루이스, 새미 데이비스, 나슈아, 잭샤 헤이페츠를 합친 인물' 

- '안타를 칠 때 그의 글러브에 있으면 1루주자가 3루까지 간다는 것은 죽으러 가는 것' 


- '올스타 게임은 그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 

그렇다. 이 모든게 그를 평가한 것이다. 그는 바로 'The Catch' 의 주인공인. 윌리 메이스이다.

1. 니그로리그 시절에서 메이저리그로 데뷔할 때까지 

그는 1931년 5월 6일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 부터 농구를 한 메이스는 평균 18득점을 올렸던 선수였고, 미식 축구로 경기당 40야드 이상 펀트를 기록한 풋볼러이기도 했다. 다양한 운동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메이스의 운동 신경은 대단했다. 그리고 1947년 야구를 시작해 1948년 블랙 배론스에서 0.262 타율과 1홈런 1도루만을 기록했다. 문제점을 보완한 1949년 0.311 타율로 성장한뒤, 1950년 0.330 타율과 0.547 장타율을 기록해 메이저리그 구단인 뉴욕 자이언츠에서 스카우트 해간다.

메이저리그로 오기 전, 마이너리그에서 그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1951년 20살에 트리플 A에서 1달동안 0.477 타율과 0.799 장타율을 기록해 메이저리그로 승격을 받게 된다. 20살에 트리플 A 를 초토화 시킨 셈이다. 야구를 한지 4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리고 그의 Legend의 커리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2. 루키 시즌, 그리고 2년간의 공백기간


데뷔 첫 12타석에서 무안타를 기록한 그는 워렌 스판을 상대로 폴로 그라운즈에서 홈런을 쳐낸다. 그리고 데뷔 해 성적은 0.274 타율 20홈런 68타점을 기록해 신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역사적인 8,9월을 보낸 자이언츠 덕에 월드시리즈에 진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월드시리즈에서 그는 22타수 4안타 0홈런 1타점 0.432 OPS 로 결국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막지 못하게 되었다. 1952년, 1953년 한국 전쟁으로 1.8 시즌 이상을 날리게 되었다. 그가 전쟁에 갔다 온 이후 1954년, 그의 전설은 마침내 시작이 되었다.

3. 역사상 최고의 중견수가 되다

1954년 그는 최고의 6번 타자가 되었다. 1993년 배리 본즈가 역대 최고의 5번 타자가 된 것 처럼, 1954년의 메이즈의 모습은 역사상 최고의 6번 타자의 모습이었다. 2년이라는 공백기간 동안 듀로서 감독은 그를 끔찍이도 아낀 덕에 초반에 3,4,5번에서 제역할을 못하자 (24경기 0.255 타율 6홈런 14타점 0.304 출루율 0.521 장타율) 바로 6번으로 내려버렸다. 6번 타순으로 내려온 메이스는 놀랍게도 3달 연속으로 1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괴력을 보였다 (5월 11, 6월 10, 7월 12). 6번 타자로 대다수를 뛴 7월까지의 성적은 99경기 0.325 타율 36홈런 81타점 0.396 출루율 0.694 장타율을 기록중이었다. 그 뒤 듀로서는 그를 4번, 5번으로 끌어올렸다. 물론 52경기에서 5홈런 29타점에 그치긴 했지만 2달 내리 0.380 이상의 타율과 4할 4푼 이상의 출루율, 6할 이상의 장타율을 기록해 시즌 성적 0.345 타율, 41홈런 110타점 0.412 출루율 0.657 장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은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그 유명한 The Catch로 월드시리즈 우승에 크게 일조를 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우승이었다.

1955년 드디어 3번 타자로 올라간 그는 0.319 타율 51홈런 127타점 0.400 출루율 0.659 장타율로 기록했다. 하지만 1956년 그는 4월에 0.200 타율로 부진을 겪었다. 하지만 5월 말에 0.297 타율로 조금씩 회복 되었지만 2홈런 10타점을 기록에 그쳤다. 단지 도루에 재미를 붙인 덕에 11도루를 기록했다. 그 후 88경기에서 21홈런 47타점 0.295 타율 0.370 출루율 0.538 장타율 19도루 7도실로 23홈런 30도루로 홈런 7개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그의 파워는 9월에 발동이 걸어서인지 9월에만 11홈런 을 쳐서 결국 36홈런 39도루를 기록했다. 84타점으로 100타점에 실패를 했고 0.296 타율 0.370 출루율 0.557 장타율로 1955년에 비해 하락세를 탔다. 1957년 그는 2년 내리 100타점에 실패를 했다 (97). 하지만 트리플 20 (20 2루타 - 20 3루타 - 20홈런 : 메이스는 1957년 26-20-35)을 작성했고, 정확성면에서 0.333 타율로 1954년의 모습을 돌아왔으며 출루율도 0.408, 장타율도 0.626도 1955년 수준으로 거의 회복을 했다. 특히 마지막 51경기에서 15홈런 35타점 0.361/0.418/0.693 8도루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1958년에도 30-100에 실패를 했지만 (29-96) 0.347 타율 / 0.419 출루율 / 0.583 장타율로 OPS 1.000 을 끝까지 지켰으며, 31도루를 기록해 30-30에 근접한 시즌을 보냈다. 1959년에 30홈런 100타점을 드디어 채우고 (34-104) 0.313 타율 0.382 출루율 0.583 장타율로 1958년에 비해 약간 떨어진 비율 넘버를 기록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1960년이 아쉬웠다. 29홈런 102타점도 그랬지만 첫 72경기에서 그는 18홈런 64타점 1.122 OPS 를 기록하다가 그 뒤 81경기에서 0.274 타율 11홈런 39타점 0.774 OPS 로 추락을 겪는다.

1961년 부터 본격적으로 파워에 의존하기 시작한 그는 6년만에 40홈런 이상을 기록했고, 대신 타율은 0.308 (OPS는 0.977) 에 그쳤다. 1962년에 49홈런으로 1955년 이후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하고 140타점을 기록했다. 물론 0.304 타율에 그치긴 했지만 0.999 OPS 를 기록했다. 1963년에 스트라잌존에 적응된 이후 극도의 부진함 (7월 27일까지 102경기 22홈런 55타점 0.848 OPS, 0.274/0.352/0.496)을 기록하다가 마지막 2달 동안 적응된 나머지 55경기에서 무시무시함을 보여주게 된다. 55경기에서 16홈런 48타점 1.163 OPS 0.382/0.430/0.733 을 기록한 것이었다. 1964년에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전반기에서 그는 77경기에서 23홈런 55타점 1.081 OPS 0.339/0.423/0.657 을 기록하다가 후반기에서 정확성이 맛이 가서 OPS 1.000 에 실패를 하고 만다. 후반기 그의 성적은 80경기 24홈런 56타점 0.903 OPS 0.254/0.339/0.559 에 그치고 만다. 그러나 1965년에는 다시 정확성이 살아났고, 홈런도 52개를 쳐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고, 112타점, 그리고 1.043 OPS 와 0.317/0.398/0.645를 기록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줘 MVP를 기록했다. 그리고 1965년에 통산 500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이 때가 마지막 전성기였다.

1954~1965년까지 그는 평균 0.318 타율 40홈런 109.25타점 0.392 출루율 0.605 장타율을 기록했다. 이 기간동안 그보다 많은 타점을 기록한 타자는 없었고, 그보다 높은 타율을 기록한 사람은 5000타석 이상 기준으로 행크 에런 밖에 없었으며 (에런 - 0.320 타율 평균 33.17홈런 108.75 타점 0.376 출루율 0.567 장타율), 그보다 더 뛰어난 장타율을 가진 타자는 없었다. 또한 그보다 더 뛰어난 OPS 를 기록한 미키 맨틀 딱 한명 (1.031) 밖에 없었다. NL 에서 12년동안 최고를 기록했었다.

4. 500-3000, 660홈런, 그리고 은퇴

1966년 부터 전성기가 지난 그는 시대를 잘못 만난 덕도 있고, 늙어감에 따라 그의 성적이 하락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1968년은 13홈런에 그쳤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남은 불꽃을 불태워 1969년 28홈런, 1970년 0.425 출루율을 기록해 다시 살아났다. 에런에 비해 꾸준함을 약간 덜 가져서인지 500-3000 은 2번째 선수가 되었지만 그래도 자이언츠에서 이 기록을 작성한 선수는 그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1972년 시즌 중에 고향팀으로 돌아가 1973년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한다. 통산 660홈런을 기록한채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 진출 하고 마무리 한다. 물론 마지막도 팀은 월드시리즈에서 패하고 만다. 그러나 명예의 전당에는 당연히 한방에 헌액이 되었다.

5. 골드글러브, 그리고 MVP, 올스타 

메이즈를 상징하는 것은 당연히 GG, 올스타다. 1957년 처음으로 제정한 이후 12년 내리 골드글러브를 수상했으며 (아마 그 전에 제정했다면 15년 내리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올스타. 1954년에서 20년내리 출장해 24경기에 출장했을 정도로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의외로 MVP 투표에서 부진했다. 에런, 로빈슨, 매튜스, 쿠팩스, 클레멘테랑 경쟁을 해서 MVP 투표에서 1954~1966년동안 탑 6에 12회에 들었지만 2차례에 그쳐야 했다.

시대를 잘못 만났던 점도 그의 커리어를 깎아 먹었다. 그의 시대는 투고타저 였다. 715점으로 환산 했을 때 그의 성적은 162경기 환산 0.310 타율 37홈런 108타점 0.394 출루율 0.572 장타율이었다. 하지만 시대를 잘못 만난 탓에 0.302 타율 36홈런 103타점 0.384 출루율 0.557 장타율로 끝내야 했다. 그래도 그는 최고의 타자였다는 점은 분명했다. 물론 역사상 최고의 중견수라는 타이틀도 그의 것이었다 (빌 제임스 선정 역대 중견수 1위는 윌리 메이스였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인지는 몰라도 베이스볼 페이지에서 그의 단점은 '야구 선수로서 그의 단점은 없다' 라고 말할 정도였을 정도로 완벽한 중견수였다. 



홍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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