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2.09 11:38 / 기사수정 2009.02.09 11:38
[엑스포츠뉴스=김정근] 스타 프로게이머 계에서 프로토스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일까? 07년 이전의 과거에 그 사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몽상가 강민이었다. 그리고 07년 3월 3일 이후 1년간은 혁명가 김택용이었다.
1차 곰티비 MSL 4강, vs강민(3:0) 결승, vs마재윤(3:0)
강민은 구시대 프로토스의 카리스마이자 실제 전략 리더였고 최강자였다.
마재윤은 스타 프로게이머 계 내에서 명실상부한 본좌,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두 사람은 3월 3일 이후 과거의 서사시를 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김택용이 프로토스를 짊어진 선수가 된 것도 아니었고 본좌가 된 것도 아니었다. 김택용은 말 그대로의 혁명을 이뤘으나 많은 프로토스 팬들은 역경의 극복으로 대표되는 올드프로토스 시대가 끝남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김택용의 실력도 카리스마도 그리고 정신력도 전 시대 마재윤과 같은 절대 본좌의 다크포스는 아니었다.
김택용의 칼날을 지탱시킨 건 자신이 본좌의 싹이라는 이유 없는 믿음이었고 본좌 자리에 대한 욕심이었다.
박성균에게 3회 MSL우승을 저지당하고 난 후 김택용은 치기 어린 자신감의 역풍을 그대로 맞았다.
특히나 4차 곰티비 MSL 32강에서 3저그 조를 만들고 이제동에게 자신의 패러다임을 부정당하고 이후 박명수 전에서 역사상 최초로 대 저그를 완벽하게 극복한 프로토스라는 수식을 부끄럽게 만드는 졸전을 보이며 패배한 게 결정적이었다.
택뱅시대, 육룡, 클럽데이 MSL 우승으로 복귀한 지금도 김택용은 무적이 아니다.
양대리그 광속탈락을 맛봤으며(결국, 손찬웅의 허리부상 공백으로 생긴 와일드카드를 잡고 OSL에 복귀하긴 했지만) MSL 32강에선 과거에 이어 두 번째로 3저그 조를 만들고 치욕을 맛보며 탈락했다. 그것도 자신에게 무참하게 패배해온 마재윤에게 꺾이면서.
그러나 김택용은 다시는 과거처럼 자신 안에 침잠하며 긴 슬럼프를 겪지 않을 것이다.
김택용이 부활했을 때, 사람들은 아직도 본좌에 욕심이 있느냐 물었고 그는 "본좌엔 관심 없다, 다만 팬들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본좌는 마재윤의 이름이고 본좌의 기준은 사람들이 억지로 만든 것이다. 그런 것은 목표로 할 것이 아니다.
김택용이 프로게이머로서 정해야 할 목표는 타인이 아닌 자신의 확고한 기준과 내적 동기에 근거해야 한다.
이윤열은 타인이 만들어내고 강요한 [임요환]이란 틀을 포기하고 비교불가의 커리어를 쌓겠다는 자신의 목표를 세운 이후, 이윤열만의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김택용은 몇 번이고 다시 넘어질 것이고 자신만의 혁명을 위해 일어날 것이다.
프로토스하면 바로 떠오르는 선수가 되는 것, 팬들의 기억에 남는 멋진 선수가 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었던 대 저그, 프로토스의 영구혁명 그런 것들을 위해서 말이다.
역대 프로토스 중 가장 뛰어난 '다전제 판짜기'를 지녔다는 김택용의 재능을 재확인한 것 이상으로 이번 허영무를 상대로 한 곰 클래식 2차 리그 우승이 가치있는 건, 김택용이 다시는 소소한 패배와 실수에 마음과 눈빛이 쉬이 무너지지 않고 어른스럽게 자신의 목표를 잡아당겨 간다는 사실이다.
'클래식'은 아직 OSL-MSL이란 양대 메이저의 위상을 가지는 대회는 아니다. 다만, 김택용이 우승함으로써 리그의 가치가 더해질 것이다. 08년 하반기 인크루트OSL-클럽데이MSL 시즌에 4강 이상에 오른 프로토스를 기념하고 토스의 전성기를 기념해서 만든 수식인 육룡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룡중에서 가장 화려하며 공고한 위업을 쌓은 김택용의 이름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TG삼보 클래식 1차-2차 우승자 간의 파이널 매치에선 저그원탑 이제동이 기다린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경기를 기다린다.
또다시 다른 도전과 다른 혁명과 다른 즐거움이 기다린다. 김택용에게 환호하라.
단 한마디를 하기 위한 사설이 너무 길었다. "TG삼보배 클래식 2차 시즌 우승을 축하합니다. 김택용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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