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워프'는 스타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모습을 훑어볼 수 있는 엑스포츠뉴스의 코너입니다. 엑스포츠뉴스가 신화의 데뷔 20주년을 맞아 그들의 시간을 되돌아봤습니다. 이번주에는 군입대 전 활약이, 다음주에는 군입대 후 역사를 이어나간 신화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편집자 주>
[엑스포츠뉴스 김미지 기자] '유일무이'라는 단어를 감히 붙일 수 있는 그룹이 있습니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고, 활동하고, 사라져가고 있는 와중에도 신화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한 '유일무이'한 타이틀을 보유해 전설을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데뷔 후 멤버 교체, 탈퇴 없이 20년간 현재진행형인 그룹.'
대한민국에 신화 뿐입니다. 소년들은 어떻게 전설이 되었을까요? 1998년으로 시간을 되돌려보겠습니다.
1998년 IMF가 대한민국을 큰 혼란에 빠트렸을 때, 신화는 '해결사'라는 곡으로 데뷔를 하게 됩니다. 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다소 파격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데뷔한 신화는 야심찬 포부와는 다르게 큰 관심을 받지는 못 했습니다. 아무래도 국가가 전체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때이기에, 연예에 관심이 쏠리기가 힘들었던 시기였죠.
'해결사'의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탈피한 신화는 이후 '으쌰! 으쌰'로 두 번째 활동에 나섰습니다. 시원한 여름을 물놀이와 수박, 친구들과의 캠핑으로 즐기자는 내용의 '으쌰! 으쌰!'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름이면, 길거리에 흘러나와서 내적댄스를 유도하는 흥겨운 곡이기도 하죠.
그러나 '으쌰! 으쌰!'를 발표하고 활동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천재지변인 홍수가 닥쳐왔습니다. 국가적 재난 속에서 차마 물놀이 이야기를 주제로 한 노래로 활동할 수 없던 신화는 두 번째 활동마저 접어야 했습니다.
두 번의 활동 모두 실패를 맛본 신화는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다음의 성공이 없다면, 팀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 도래했던거죠. 이듬해의 2집을 위해 다시 열심히 달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의 신화는 모두 "이번에도 실패하면, 해체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신화는, 희대의 명곡 'T.O.P'로 고대하던 성공지점에 닿았습니다. 데뷔 후 첫 1위를 거머쥐게 한 곡이기도 하죠.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T.O.P'는 멤버 전원이 외모로 리즈 경신을 하면서 많은 소녀팬들을 끌어모았습니다. 'T.O.P'는 아직까지도 명곡으로 회자되면서, 많은 후배 그룹들이 연말 시상식에서 여러번 커버댄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소 진입장벽이 높았던 장발을 탈피한 에릭과, 미소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한 신혜성과 김동완, 꽃미남의 전진과 앤디 그리고 반항아 롤의 이민우까지. 2집의 신화는 '입덕' 하기 좋은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T.O.P'의 성공 이후, 신화는 '악동보고서'라는 부제를 가진 후속곡 'Yo!'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T.O.P' 활동 당시에 미소년 룰을 고수하던 김동완이 일본 록식 화장으로 파격적으로 활동에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없어서 분노한 김동완의 무대 활동 모습)
'Yo!'는 10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뮤직비디오가 흥하기도 했는데, 이민우가 오토바이를 타고 반항아적 이미지를 구축해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의 남주인공 같다는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곤 했습니다.
'T.O.P'와 'Yo!'의 연이은 성공으로 신화는 우려했던 해체 대신 '꽃길'을 걷게 됩니다.
3집 타이틀곡 '온리 원'(Only One)과 후속곡 '올 유어 드림스'(All Your Dreams) 모두 퍼포먼스적 호평을 받으며 팬덤을 키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남성성'을 크게 강조한 신화는 이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귤', '오렌지'로 대표되는 팬클럽 신화창조의 위력도 함께 커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부흥기를 함께 했던 거죠.
3집 이후 SM TOWN 겨울 스페셜 앨범 '기도'까지 흥행에 성공하면서, 신화는 독보적인 입지를 굳혀가기 시작했습니다. KBS 2TV '자유선언 토요일'의 코너 '신화창조 2000'에서 팀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물론, 김동완은 SBS 라디오 '김동완의 텐텐클럽' DJ까지 맡으면서 끝 없는 입담과 예능감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개인 사정으로 활동에 불참했던 막내 앤디를 제외하고 활동에 나섰던 4집. 타이틀곡 '헤이, 컴온!'(Hey, come on!)과 후속곡 '와일드 아이즈'(Wild Eyes)로 신화는 남성적인 매력을 더욱 과시합니다. 신화 퍼포먼스하면 가장 먼저 회자되곤 하는 '의자 춤'이 바로 '와일드 아이즈'의 안무입니다. 이 안무는 이민우가 20분 만에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죠.
'남성성'을 강조한 앨범이기 때문일까요? 신화는 아이돌 그룹 최초 (세미)누드집을 발간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아이돌과 누드집이라니. 지금도 파격적인 작업을, 신화는 무려 17년 전인 2001년에 해냈습니다.
4집 활동 때에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하면서 개개인적인 인지도까지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는 김동완이 출연한 MBC '애정만세' 였죠. NRG 이성진과 함께 '주접 브라더스'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던 김동완은 마지막 상대로까지 선정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예능돌'의 새로운 등장이기도 했죠.
이때 전진은 예능에서 '체육돌'로 활약했는데,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덤블링을 시도하다 맨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큰 수술까지 겪기도 했습니다. 며칠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전진. 당시 멤버들은 담당의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라는 말까지 듣고 비통에 잠겼는데요. 전진은 기적같은 회복 후 4일 만에 '출발드림팀' 왕중왕전 준우승까지 거머쥐어 강철체력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5집 때부터는 다시 막내 앤디가 팀에 합류해 함께 활동했습니다. '퍼펙트 맨'(Perfect man), 'I Pray 4 U' 등의 히트곡을 낸 이후 6집 '너의 결혼식', '중독'까지 퍼펙트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 시기동안 신화는 연기면 연기, 예능이면 예능, 각자 잘 하는 것을 펼치며 개인적인 역량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이 종료됩니다. 모든 아이돌 그룹의 최대 위기가 닥치는 순간이 도래했던 것이죠. 전속계약 만료 시기, 그동안 수많은 아이돌 그룹은 나뉘어지거나, 해체를 택하거나, 일부 멤버가 탈퇴를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신화는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팀을 지켜냅니다. 새로운 기획사에서 6명이 함께,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훗날, 이 시기를 돌아보던 신화는 팀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에 "개인적으로 받았던 제안을 멤버들에게 모두 털어놨다"고 비결을 밝혔습니다.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팀의 미래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았던 거죠.
이후 이민우는 아이돌 최초 그룹 활동 중 솔로앨범을 발표했고, 신혜성은 절친 강타와 이지훈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S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완전체' 신화를 바라고 있을 2003년 겨울, 신화는 '윈터 스토리' 앨범을 발표하며 또 한번의 기이한 행보를 보입니다.
명곡 '영 건즈'(Young gunz)가 수록돼 있는 '윈터 스토리 2003'은 아이돌 최초로 라디오 형식의 앨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MP3가 아닌 CD가 주류였던 시절, 토크와 독특한 광고, 노래까지 수록된 '윈터스토리 2003'은 신화의 소식을 기다렸던 팬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브랜 뉴'(Brand New) 활동이 담긴 7집 앨범이 발매됐습니다. 이때 이미 7년차였던 신화는 여성 댄서들과 환상의 호흡을 선보이며 퍼포먼스 최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돌 그룹 최초로 올라이브 밴드 콘서트를 선보였던 신화답게, 라이브 실력도 완전히 꽃피우게 됐죠. 후속곡 '열병'에서 가창력이 폭발하는 신화의 무대가 많이 발견되곤 했습니다.
신화는 7집 활동 중, SBS '강호동의 연애편지' 시즌1에서 완전체 예능도 완벽하게 소화하게 됩니다. 가수 활동과 더불어 매주 예능 프로그램까지 함께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도 함께 끌어올리게 됐습니다. 당시 주말 황금 시간대에는, 신화가 안 나오는 프로그램이 없었을 정도였죠.
그리고 신화는 그해 개최된 '서울가요대상'에서 데뷔 후 첫 대상을 품에 안게 됩니다. 그동안 '대상'이라는 높은 벽에 번번히 막혀 좌절해야만 했던 신화가 데뷔 7년 만에 소중한 상을 받게 된 것이죠.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름이 불리자, 신화는 박수를 치며 타인의 대상을 축하하다가 MC 신동엽의 확인사살을 받고 그제서야 얼싸안았습니다. 당시 이민우는 "심수봉 선생님의 이름이 불린 줄 알았다"는 말로 믿기지 않았던 수상의 기쁨을 알리기도 했죠. 울지 않았던 멤버가 없었을 만큼, 신화 역사에 있어 의미가 깊은 날이었습니다.
이후 신화는 SBS에서도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대상을 받은 후에도, 신화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8집 '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Once in a lifetime)으로 퍼포먼스 대신 감미로운 발라드로 흥행에 성공했던 신화는 2008년, 9집을 낸 뒤 군복무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십자인대 완전파열로 면제를 받은 신혜성을 제외한 다섯 명의 멤버들이 차례대로 군복무를 거쳤고, 솔로 앨범과 연기, 예능 활동으로 다른 멤버의 공백기를 알차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군복무 공백기 전 발매한 앨범에서 신화는 수록곡 '아직 못다한 이야기'로 팬들에 작별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지금은 잠시 헤어지지만 / 믿어주길 바래 함께하는 날을 / 다시 그날이 오면 꼭 들려 줄게 / 아직 못 다한 이야기' 등의 가사는 무려 4년간이나 지속됐던 신화의 공백기를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이 됐죠.
군복무 공백기도 신화의 현재진행에는 타격을 주지 못 했습니다. 4년 뒤, 약속대로 10집이라는 무시무시한 숫자로 컴백을 했으니까요.
소년이 전설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이제 딱 반 정도 담아냈습니다. 다음주에도 계속될 '타임워프'에서 여전히 계속될 신화의 이야기를 계속 펼쳐보겠습니다.
am8191@xportsnews.com / 사진=SM, 굿엔터, 서울가요대상
김미지 기자 am8191@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