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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김나영, 팬들 덕에 나도 ‘행복한 스케이터’

기사입력 2008.11.21 05:12 / 기사수정 2008.11.21 05:12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피겨가 깊은 그늘 속에서 벗어난 가장 큰 이유는 '피겨 여왕' 김연아(18, 군포 수리고)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연아 이외에 어느 선수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정 국가에서 세계대회를 제패하는 선수가 나온다면 당연히 그 선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주 잘하는 선수' 뿐만이 아닌, '가능성 있고 열심히 하는 선수'에 대한 시선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ISU(국제빙상연맹)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2위와 국내랭킹 1위에 김연아가 올라있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내랭킹 2위에 오른 선수를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김연아의 빛에 가려 '국내 2인자'란 명칭을 들었던 김나영(18, 연수여고)은 분명히 세계정상급에 오른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김연아와 함께 국제시니어대회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이렇게 국제 시니어 무대에서 참가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이 선수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따라야합니다.

김나영은 한국 시간으로 21일 늦은 저녁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그랑프리 5차대회인 'Cup of Russia'에 참가하게 됩니다. 태극마크가 그려진 유니폼 점퍼를 입은 모습은 김연아가 친숙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니폼 점퍼를 김나영이 입은 모습을 봤을 때, 남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 그리고 나카노 유카리 등의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고서 나란히 등장하는 모습은 매우 부러운 현상입니다. 이런 점을 볼 때, 김연아를 제외한 다른 한국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랭킹 2위이자 세계랭킹 34위인 김나영은 국제무대에서 충분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지난 3월 달에 있었던 스웨덴 에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김나영은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시니어 그랑프리 무대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김나영은 원래 2008 그랑프리 시리즈 중, 마지막 6차 대회인 일본 'NHK Trophy'에서만 공식 초청을 받았었습니다. 이번 달 초에 있었던 국내랭킹전에서 종합 1위에 오른 김나영은 모든 컨디션 조절을 이 대회에 맞춰왔었습니다.

그런데 팬들의 도움으로 'Cup of Russia'의 초청권을 받게 뙜습니다. 후보 선수로 등록이 된 김나영은 러시아빙상연맹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두 명의 선수가 불참을 선언하자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대한빙상연맹은 "후보 선수가 공식 초청을 받으려면 그 대회가 열리는 국가의 빙상연맹으로부터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라는 소극적인 자세를 가졌습니다. 김나영이 그랑프리 대회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이들은 팬들이었습니다.

자국의 선수가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이 생긴다면 그 기회를 열어줘야 합니다. 러시아빙상연맹에 문의해 자국에 있는 후보 선수가 참가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묻는 전화 한통은 대한빙상연맹이 아닌, 팬들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대한빙상연맹 측은 "김나영의 그랑프리 5차 대회에 참가 결정이 이루어진 것은 팬들이 전화를 걸기 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일"이라며 "그랑프리 시리즈는 대회가 열리는 국가에서 초청을 받아야 참가할 수 있는 대회이다. 규정이 이렇기 때문에 초청 제안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입장을 밝혔었습니다.

그러나 자국의 선수가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할 가능성이 보였고, 여기에 팬들의 제보까지 이어졌다면 이 문제를 러시아빙상연맹에 문의해보는 전화 한통 정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빙상연맹이 업무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사이, 그 일을 팬들이 하게 된 점은 어디에서도 좀처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찌 보면 국내랭킹전에서 우승을 하는 선수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국제대회에 참가하게 된 점은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그러나 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두 번의 그랑프리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김나영은 너무나 행복해보였습니다.

김나영을 지도하는 신혜숙 코치는 러시아로 출국하기 전, "나영이 본인은 물론, 어머님과 나 역시 팬들의 열정과 깊은 관심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번 대회 출전은 여러모로 반갑지만 문제는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인 만큼 스케줄을 새롭게 짜야한다는 점이다"라며 "지난 토요일에 나영이는 무릎에 주사를 맞았었다. 조질적인 퇴행성관절염의 부상 때문인데 사실, 이 주사를 맞는 것도 그랑프리 6차 NHK대회에 맞춰서 예정된 것이었다. 컨디션 조절과 점프의 연습 등, 모든 것을 NHK에 맞춰서 진행해왔었는데 훈련 과정을 앞당겨야 하는 부분이 힘들다. 그러나 정말 특별하게 찾아온 기회인만큼 팬들의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김나영은 김연아와 함께 트리플 플립과 러츠를 구사할 수 있는 기량을 가졌습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만 없었다면 지금보다 나은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도 지녔습니다. 김연아와 함께 동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 중, 국내피겨계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재능을 미처 피지 못하고 고생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한 때, 김연아의 라이벌이었던 최지은(20, 고려대)은 일찍부터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익혔지만 뜻하지 않은 부상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김나영도 부상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점프를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가 부상으로 고생한 사연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들 선수들은 모두 시베리아벌판같이 춥고 좋지 않은 빙질 속에서 불규칙적으로 훈련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지은은 경기 중, 부상의 엄청난 통증 때문에 눈물을 흘려가면서 가까스로 연기를 마친 적도 있었습니다. 김연아 역시, 철저하게 스트레칭과 몸 풀기를 하며 부상을 방지했지만 국내의 열악한 환경이 주는 악몽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김나영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퇴행성관절염을 치료해가면서 국내랭킹 2위까지 힘겹게 걸어왔습니다. 척박한 훈련환경과 무관심 속에서 설움을 당해야했지만 팬들의 성원이 있었기에 김나영은 ‘행복한 스케이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로 출국하기 하루 전인 18일은 김나영의 생일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이번 그랑프리 대회에 자신이 참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팬들도 함께 자리를 가졌습니다. 27일부터 일본에서 개최되는 그랑프리 6차 'NHK TROPHY' 에 스케줄을 맞춰온 김나영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김나영은 그 어느 때보다 정신적으로 큰 힘을 얻고 있었습니다. 팬들의 도움으로 처음 밟게 된 첫 그랑프리대회에서 자신의 최고 점수를 갱신하는 것이 김나영의 목표입니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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