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11.09 15:43 / 기사수정 2008.11.09 15:43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올 피겨스케이팅 시즌을 앞두고 좋은 전망과 걱정거리가 동시에 존재했었습니다. 좋은 쪽은 '피겨 여왕' 김연아(18, 군포 수리고)가 어느 시즌보다 좋은 몸 상태로 시즌을 시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지난 두 시즌동안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막판에 가서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아픈 경험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은 실로 탄탄했습니다. 김연아의 최고 연기를 완성하는 팀원들 중, 올 시즌부터 김연아의 몸 상태를 철저하게 점검하는 두 명의 물리치료사의 역할이 중요해졌습니다.
이들의 세밀한 점검으로 김연아는 가장 큰 적인 부상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반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연아와 함께 두 번의 세계선수권을 치른 전담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도 지난 시즌의 경험으로 얻은 바가 큽니다.
오서 코치는 김연아를 이끌어주고 방향을 잡아줄 곳을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과 큰 변화는 없지만 김연아의 장점을 최대로 살린 새 프로그램은 그랑프리 1차 대회와 이번 3차 대회를 통해 최고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중국 베이징수도체육관 특설링크에서 벌어진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김연아는 기술요원(스페셜리스트)들의 애매한 롱엣지와 어텐션 지적, 그리고 트리플 러츠 점프의 회전수 부족으로 인한 감점이 없었더라면 여자 싱글 사상 첫 200점고지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김연아에게 있어서 200점 돌파보다는 늘 최상의 연기를 펼친다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이런 의미로 봤을 때, 200점을 운운하는 것은 그리 불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능했던 기록이 석연찮은 판정으로 인해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는 것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우려됐던 걱정거리는 롱엣지를 잡아내는 기준이 완화된 어텐션(! : 점프의 애매함을 뜻함)이 도입됐다는 점입니다. 김연아의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러츠 점프에서 지속적으로 롱엣지 판정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마오에게 한층 유리한 룰이 아니냐는 예측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도 '점프의 정석'이라 불리는 김연아가 이 규정의 덫에 걸려들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지난 몇 년 동안 2점 이상의 가산점을 꾸준하게 받아온 트리플 플립 - 트리플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에 제동을 건 것입니다.
이 점프는 김연아의 전매특허 점프이자 세계 최고 수준의 트리플 -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로 김연아가 자랑하는 최고의 주무기입니다. 그동안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이 점프에 롱엣지 판정을 내린 것은 당사자인 김연아와 오서 코치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피겨 선수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잘하는 기술에 롱엣지 판정이 내려지고 감점이 일어난다면 그로인한 정신적인 타격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고난도의 점프를 성공시킬 때, 랜딩이 조금만 흔들려도 피겨 선수들의 자신감은 위축됩니다. 이런 점을 생각 할 때, 지난 몇 년 동안 높은 가산점을 받은 점프에 갑자기 롱엣지 판정이 내려진 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세계정상권의 선수라 할지라도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고 높은 점수를 챙기는 기술에 정당한 평가가 내려지지 못한다면 위축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아사다 마오가 근래에 들어서 성공률도 떨어지는 트리플 악셀이 롱엣지라는 판정이 매겨진다면 이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자신감 상실은 상당히 큽니다.
다른 기술도 아닌 김연아의 트리플 플립에 롱엣지가 내려졌다는 것은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정신적인 타격을 받기에 상당했습니다. 김연아에겐 정신적인 타격을 얼마나 극복하느냐가 최대 관건이었습니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국내 피겨 환경 속에서 큰 김연아는 좌절도 많이 겪었지만 정신적으로 매우 강인하게 다져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아이들에 비해 유독 경쟁심이 강하고 지기를 싫어했던 김연아였지만 모든 힘든 과정을 어머니인 박미희씨와 함께 땀과 눈물로 쏟은 빙판 위를 걸어온 김연아는 그만큼 강하게 성장해있었습니다.
김연아가 정신적으로 얼마나 강한 선수인가는 선수들이 본격적인 경기를 하기 전에 이루어지는 워밍업 시간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안도 미키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해 위축된 표정과 자세로 빙판의 주변부를 돌며 몸을 풀지만 김연아는 상체를 곧게 편 자세에서 링크 중심을 맴돌며 실전과 같이 몸을 풀고 나옵니다.
워밍업 시간은 피겨선수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입니다. 경기를 앞두고 팽팽한 '기 싸움'이 펼쳐지는데 김연아는 이 싸움에서 한번도 위축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기술과 체력, 그리고 표현력에서도 모두 김연아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앞서지만 강한 정신력을 따져도 김연아를 따라올 선수는 드뭅니다.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가진 아사다 마오도 굉장한 연습벌레에 지독한 근성을 가진 선수입니다.
그러나 늘 김연아가 앞선 무대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펼치면 위축된 모습으로 연기를 펼치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 번 노출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 하지 못한 채, 빙판 위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보였던 아사다 마오와 안도 미키에 비해 김연아가 확실히 우위를 보이는 부분은 바로 '강한 정신력'입니다.
김연아는 트리플 플립을 롱엣지로 규정한 충격을 금세 털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만약 김연아가 롱엣지 오심을 가슴에 품은 채 프리스케이팅에 임했다면 무의식중이라도 위축된 연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부분이 큰 피겨를 생각할 때, 보다 뛰어난 선수가 되려면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합니다.
김연아는 완벽한 트리플 플립을 이번 프리스케이팅에서도 늘 했던 것처럼 어김없이 구사했습니다. 이 부분은 일본의 중계진의 해설가인 이토 미도리(메이저 대회에서 여자피겨스케이팅 최초의 트리플 악셀을 구사했던 선수)조차 플립으로 보인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석연찮은 판정을 이기는 것은 이러한 분위기에 말려들지 않는 강한 정신력과 증거자료를 첨부해서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에서도 플립에 어텐션을 받았습니다. 비록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 우승을 해 좋은 결실을 이루어냈지만 다음 대회를 생각해서라도 플립에 대해서 내려진 부당한 판정은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사진 = 김연아 (C) 김성배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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