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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피겨유망주 박소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기사입력 2008.11.03 03:33 / 기사수정 2008.11.03 03:33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어울림누리 얼음마루 빙상장에서 벌어진 2008 회장배 전국 피겨스케이팅대회에는 '피겨 여왕' 김연아를 제외한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선수들이 참가한 대회였습니다.

여자부와 남자부를 각각 1그룹과 2그룹으로 나누어서 경기를 치렀는데 2그룹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13세 미만의 어린 선수들이었습니다. 시니어와 주니어선수들이 경쟁하는 1그룹의 점수경쟁도 치열했지만 2그룹의 경합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노비스로 분류되는 13세 미만의 선수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더블 악셀 점프만 구사해도 최고 수준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블 악셀을 구사하는 선수들이 많이 늘어났고 스핀과 스파이럴은 주니어 선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국내의 어린 선수들이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과 비교해보면 결코 수준을 상위권으로 치기 힘듭니다. 피겨에 대한 지원 육성책과 투자가 가장 적극적이고 치밀하게 이루어지는 일본은 이미 올 주니어 대회에 데뷔한 무라카미 카나코(14세)와 후지사와 유키코(13세)등이 주니어 그랑프리 셰필드시리즈에서 1, 2위를 기록하며 주니어 무대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이들 선수들의 기량은 무궁무진하며 아직도 어린 점을 감안하면 장래에 대한 비전도 상당히 밝습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성장한 유망주들은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가지게 되며 그 국가의 피겨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세대가 됩니다.

국내에도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재능과 노력을 겸비한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치밀한 관리 하에 육성되는 선수들이 없다는 점은 아쉽기만 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최고의 선수인 김연아(18, 군포 수리고)가 배출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인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비범한 재능을 보였던 김연아 이후, 많은 피겨 관계자들과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선수가 나타났습니다.

여자 2그룹에서 우승을 차지한 박소연(11, 전남 나주초)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 특별했습니다. 김연아 이후로 한국 피겨스케이팅 무대에 나타난 최고의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재능을 가진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보다 '현재'이다

한국에서는 여러 분야에 걸쳐서 어린 시절에 비범한 재능을 가졌지만 순식간에 사라지는 안타까운 경우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창의적으로 육성하지 못하고 결과에 연연하는 획일적인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습니다.

최고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김연아도 어머니인 박미희 씨의 열정과 깨어있는 지도자들의 탄탄한 기본기 훈련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김연아가 없었을 것입니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에게 가장 쏠리는 관심은 '미래의 금메달 감' 혹은 '미래의 세계 챔피언 감'이라고 낙인을 찍기 만하는 그릇된 처사입니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과정'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재능이 많고 노력을 많이 하는 아이들일 수록 먼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세워두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구체적인 계획이 훨씬 필요합니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마냥 발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아무리 질이 좋은 캔버스가 있다고 해도 그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물감과 붓이 좋지 못하면 훌륭한 그림이 나오기 힘듭니다.

박소연은 무용과 스케이트를 어려서부터 병행했지만 현재의 지도자인 지현정 코치를 만나기 이전에는 완전히 백지에 가까운 초보자였습니다. 지 코치의 조련 하에 박소연이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한 것은 이제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박소연은 더블 악셀을 비롯한 모든 2회전 점프들을 마스터했고 스핀과 스파이럴도 뛰어나며 음악을 해석하고 연기하는 표현력까지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트리플 토룹과 살코 점프까지 익히고 있습니다.

먼 미래에 높은 목표를 잡아두고 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재 완성해야할 단계들을 차근차근하게 생각하며 탄탄한 과정을 완성해 간다면 좋은 결과는 반드시 뒤따라옵니다.

현재 박소연은 이러한 계획 하에서 지 코치와 어머니인 김정숙 씨의 조련을 체계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인재가 나오면 너무 앞서나가는 경향을 보이며 먼 미래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이렇게 과정의 단계를 무시하고 결과에 집착한다면 결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박소연을 바라보는 시선도 매우 중요합니다. 벌써부터 '제2의 김연아'라는 명칭을 붙이면서 선수본인과 주변인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것보다 비전 있는 '오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미래에 기대되는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에게 막연한 기대감만을 갖다 줘서는 안 됩니다. 그저 '재능이 저렇게 뛰어나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길을 열어주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또 다시 귀중한 인재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언제나 웃는 아이, 밝고 긍정적인 천성에서 나오는 힘

박소연이란 어린 선수를 만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시종일관 잃지 않는 미소입니다. 아직 많이 어린 선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소연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인 김정숙 씨는 "소연이는 코치 선생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아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선생님에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다가가 인사를 하고 말을 걸 만큼 밝은 성격을 지녔다. 항상 낙천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천성이 경기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필자가 경기 전에 박소연을 만났을 때에도 긴장하는 기색이 그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에도 항상 웃고 있는 박소연에게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피겨스케이팅을 대체적으로 즐거워하는데 박소연은 피겨 자체를 너무나 즐기고 있었습니다. 스케이트를 타는 것이 마냥 재미있고 즐겁다는 박소연은 빙판에 들어설 때, 진정으로 자신이 있을 곳이 어디인지를 스스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천성적으로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에서 오는 점도 있겠지만 박소연의 표정과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피겨를 너무나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러다보니 시합에 들어갈 때 긴장감과 부담감을 이기면서 본인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랭킹전에서 발견한 박소연의 특별함

박소연은 피겨 팬들로부터 '토털 패키지'란 명칭을 얻었습니다. 이 명칭은 실로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피겨 여왕' 김연아가 듣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피겨와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뛰어나다는 의미를 가졌는데 실제로 박소연은 김연아와 같이 점프와 체력, 스피드, 여기에 타고난 '끼'까지 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피트니스 전문가인 어머니 김 씨의 체계적인 교육 아래에서 성장한 박소연은 어릴 때부터 철저한 근력 운동과 기초 체력을 병행해왔습니다. 박소연은 점프를 뛸 때, 탄력을 주는 파워를 겸비했고 여기에 유연성마저 갖췄습니다.

그리고 유의할 점은 점프를 할 때, 스피드가 급격하게 죽지 않고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김연아가 세계 최고 수준의 트리플 점프를 구사하는 것도 전광석화 같은 스피드에서 오는 탄력 때문입니다. 점프에 자신감을 잃는다면 도약을 시작하기 전에 스피드가 급격히 줄어들고 빙판을 차고 올라가는 시간도 길어지게 됩니다.

또한, 프리스케이팅 후반에 가서도 박소연은 좀처럼 지쳐있지 않았습니다. 워낙 체력이 좋다보니 경기 후반에 가서도 흔들리지 않고 집중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박소연이 랭킹전에서 얻은 점수는 98.29였습니다. 여자 2그룹 2위와는 9점차였고 훨씬 나이가 많은 선배들이 모인 여자 1그룹에서도 전체 9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점수였습니다. 만약, 더블 악셀 랜딩이 깔끔했다면 100점대도 노려볼 만 했습니다.

여자 2그룹 경기가 모두 끝난 뒤, 필자가 선수 대기실로 박소연을 만나러 갔을 때, 스케이트를 보고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소연의 스케이트는 상당히 낡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박소연이 스케이트를 벗으면서 발목 부분에 칭칭 감은 테이프를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스케이트는 무너져 있었고 피겨 선수의 생명과 마찬가지인 부츠를 거의 무너져 내린 것을 신고 이 정도의 연기를 펼친 게 쉽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지현정 코치도 "이 정도로 무너져 내린 부츠를 신고 오늘 같은 점수를 받은 것은 매우 잘했다고 생각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다음대회부터 새 부츠로 교체하고 경기에 임할 것이라고 밝힌 박소연은 오늘 경기에 만족하냐는 필자의 질문에 해맑게 웃으면서 "아니요, 아쉬워요"라고 답변했습니다.

열악한 한국피겨, 그러나 최소한의 투자와 관심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피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불과 2년 만에 자신이 가진 재능을 분출하고 있는 박소연은 분명 한국피겨의 미래이자 김연아는 물론, 곽민정(14, 평촌중)과 윤예지(14, 과천중)등의 주니어 선수들의 뒤를 이어 한국을 대표하게 될 유망주 중 한 명입니다.

이 땅에 이 정도의 재능을 가진 선수가 출연했다면 남은 것은 투자와 지원입니다. 지 코치도 박소연에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투자’라고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열악한 국내 피겨 계를 생각했을 때, 일본과 같은 치밀하고 체계적인 지원과 투자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수가 성장해야 할 최소한의 배려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와 경쟁을 하듯, 박소연도 성장하면 무라카미 카나코와 후지사와 유키코와 같은 일본선수들과 국제대회에서 경쟁할 확률이 큽니다. 먼 미래에 대한 목표를 정해놓았다면 그 다음부터는 ‘오늘’에 대한 충실한 대비입니다.

한국피겨스케이팅이 마냥 열악하다고 체념하는 그릇된 태도는 버려져야 합니다. 김연아로 만족하지 말고 세계무대에서 꾸준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유망주들을 키워내려면 지금부터라도 아주 최소한의 방침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난 피겨 유망주들을 우리가 아니면 과연 누가 ‘행복한 스케이터’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사진 = 박소연 (C) 오규만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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