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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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김연아의 등장, 그러나 한국피겨스케이팅의 현주소는?

기사입력 2008.10.25 05:38 / 기사수정 2008.10.25 05:38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 = 조영준 기자] 바야흐로 김연아(18, 군포 수리고)의 시즌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많은 세인들에게 '피겨스케이팅'이란 종목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동계스포츠의 꽃이자 북미와 유럽에서 아이스하키와 함께 가장 대중적인 빙상종목으로 사랑받고 있는 피겨스케이팅은 빙상 스포츠의 불모지인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비인기종목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한국빙상스포츠가 대중들의 관심을 그나마 끌기 시작한건 쇼트트랙에서 강세를 보이며 동계올림픽의 효자종목으로 급부상하면서부터입니다. 쇼트트랙에서 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딸 종목은 거의 전무했었습니다.

동계올림픽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것은 언제나 피겨스케이팅 결승전과 아이스하키 결승전이었습니다. 피겨스케이팅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와 동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김연아란 세계최고의 선수가 배출되면서 한국에서도 피겨스케이팅의 인기는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연아의 존재로 불붙기 시작한 피겨스케이팅 붐, 그러나 아직도 열악하기 만한 현실

김연아가 단순히 세계정상권의 선수이지만 연기 자체와 점프 기술 등에서 세인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지 못했었다면 피겨스케이팅이란 종목의 매력에 빠져든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김연아는 풍부한 표현력과 난이도 높은 점프 기술 등으로 많은 이들을 흥분시켰으며 피겨스케이팅이란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습니다. 피겨의 점프기술 등에 관해 아무런 지식도 없었어도 한번쯤은 김연아의 연기에 감탄을 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국민적인 스포츠 선수로 부상한 김연아의 존재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에 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김연아와 동시대에 선수생활을 했던 최지은(20, 고려대), 신예지(19, 서울여대), 신나희(18, 대구경명여고) 등과 곽민정(14, 평촌중), 김현정(16, 군포 수리고), 그리고 윤예지(14, 과천중)등의 유망주들까지 덩달아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피겨의 대중화는 서서히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상으로도 피겨스케이팅의 커뮤니티 사이트는 몰라지게 많아졌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정 사이트의 실시간 접속자 수는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인 야구와 축구 사이트보다 오히려 앞서나가는 정도입니다.

김연아의 효과와 유망주들의 성장으로 인해 피겨스케이팅의 문을 두드리는 지망생들은 많지만 2년 이상을 꿋꿋하게 버티며 계속 스케이트를 타는 꿈나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피겨스케이팅이 다른 종목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돈이 많이 드는데다가 훈련과정도 힘겹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연아와 같이 세계정상급 선수가 되지 못하면 스폰서가 붙지 않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피겨를 계속 할 여유가 남아나지 않습니다.

또한, 결정적인 원인은 길어야 20대 중반까지 가는 짧은 선수 생명력에 있습니다. 그나마 여자선수들 같은 경우는 몸 관리만 잘하면 지속적으로 연습에 임할 수 있지만 남자선수들은 군대문제에 결려서 입대하게 된다면 조금만 쉬어도 감각을 잃기 쉬운 특성을 가진 피겨를 생각할 때, 선수생명이 끝나고 맙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피겨스케이팅의 선수는 남자선수보다 여자 선수들의 수가 월등히 많습니다. 그러나 국내 같은 경우는 현재 제대로 활약하고 있는 시니어, 주니어 남자선수들의 수가 10명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싱글은 어느 정도 저변이 있지만 아이스 댄싱과 페어 부분에서 활약하는 선수는 거의 보이질 않습니다. 그랑프리 파이널 2연패에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모두 세계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선수를 배출한 국가의 현실은 이 정도로 초라합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국내 피겨스케이팅의 현주소

24일 오전, 미국 워싱턴 주 에버렛에 도착한 김연아는 올 시즌에 선보일 새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를 공개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난이도 높은 여러 기술들이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이 프로그램은 한 마디로 현역 여자 피겨선수들 가운데 김연아가 아니면 그 누구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어려운 프로그램입니다.

한 치의 숨도 쉴 틈이 없이 움직이는 스텝에 다양한 안무, 그리고 3-3 점프와 고난도의 스핀, 스파이럴 등이 엮어져 있는 이 프로그램을 한국의 선수가 소화해낸다는 것이 자랑스럽지만 막상 국내 안의 현실을 살펴보면 김연아와 같은 선수가 배출된 것이 기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연아도 그랬지만 그 뒤를 잇는 어린 유망주들도 아직까지 링크장의 대관시간에 맞춰서 훈련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낮 시간동안 일반인들에게 링크 장을 대여해주고 나머지 시간은 쇼트트랙 선수들과 아이스하키 선수들과 함께 시간을 쪼개서 링크장을 사용해야 합니다.

실제로 필자가 과천, 목동, 그리고 롯데월드 링크장 등 피겨선수들의 훈련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가보면 대관시간 문제 때문에 밤 11시에서 12시가 되도록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내온도가 그나마 좋은 롯데월드링크장을 제외하고는 다른 링크장은 낮은 온도와 한기 때문에 아직 성장 중인 어린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 염려스러웠습니다. 피겨선수들만이 맘을 놓고 훈련할 수 있는 전용링크장이 단 한 개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힘겨운 현실 속에서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망주들에 대한 지원 육성책이 전혀 없기 때문에 피겨를 계속하려면 선수 부모님들의 등골이 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열악한 국내환경을 벗어나서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오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좋은 기술과 안무를 배워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려면 천만원대에 이르는 돈을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부담을 할 수 없는 집안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자녀를 두고 있다고 해도 지속적으로 피겨를 시키기가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올 초에 선수들을 후원하는 모기업 회사가 창단되었지만 아직도 피겨를 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빠듯한 살림을 추려가면서 선수생활을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와중 속에서도 김연아 못지않은 비범한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아주 이른 나이에 더블 악셀을 성공시켰고 김연아 이후로 10대 초반의 나이에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익힌 '피겨 신동' 이동원(12, 과천초)과 이번 달 초에 벌어진 피겨스케이팅 꿈나무대회에서 10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며 4급 부분 우승을 차지한 '종합선물세트' 박소연(10, 전남 나주초)같은 선수들은 먼 미래에 국제대회에서 메달 권 수상이 가능할 정도의 재능이 확인됐습니다.

이러한 유망주들이 김연아의 뒤를 이어서 그랑프리 대회와 세계선수권, 그리고 동계올림픽 같은 큰 무대에 도전시킬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체계적인 지원 육성정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제무대에서 경쟁할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육성책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재정력과 인력 부분에서 많은 고충이 있는 빙상연맹은 이러한 과제들이 아직까지는 버겁기만 합니다.

그랑프리 시리즈를 마감하게 될 ‘왕중왕전’인 그랑프리 파이널은 한국에서 개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큰 실내 빙상경기를 치를 마땅한 경기장마저 없는 국내의 현실과 대한빙상연맹과 고양시 빙상연맹의 준비과정은 많은 피겨 팬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김연아란 화려한 모습을 보고 피겨스케이팅에 뛰어들었지만 상상치 못했던 훈련비용과 미래가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 때문에 한국피겨의 발전은 급제동이 걸리고 있습니다.

필자가 피겨 훈련현장들을 돌아다닐 때, 빙판에서 손을 호호 불어가며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과 코치들의 열정은 빙판을 녹일 정도로 뜨거웠습니다. 현장에서 매일 구슬땀을 흘리는 코치와 선수들, 그리고 학부모들만의 노력으로는 한국피겨의 미래가 밝아질 수 없습니다.

국내피겨의 저변을 넓히고 유망주들에 대한 체계적인 양성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김연아의 등장으로 인해 나타난 환희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순간적으로 끝날지 모릅니다.

[사진 = 김연아 (C) 전현진 기자, 이동원, 박소연 (C) 조영준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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