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즐거운 상태에요, 재개봉하는 느낌이네요."
'옥자' 개봉을 이틀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은 "정신 없겠다"는 너스레 섞인 안부 인사에도 "정신 있습니다"라고 또렷하게 얘기하며 개봉을 앞둔 마음을 차분하게 전했다.
29일 넷플릭스 공개와 함께 전국 극장에서 개봉하는 '옥자'는 가까이는 지난 5월 열린 칸국제영화제, 또 더 멀리 내다보면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와 함께 손잡고 만드는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늘 화제의 중심에 자리했던 작품이었다.
그만큼 봉준호 감독의 여정도 길었고, 바빴다. 봉준호 감독은 "제가 오늘 아침에 세 봤거든요. '옥자'로 기자회견을 7번은 넘게 한 느낌이에요. 인터뷰도 100번 넘게 했고요. 칸영화제가 5월이었죠? 그 전에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칸에서도 했고, 런던, LA, 뉴욕, 시드니, 도쿄까지 갔다가 그저께 왔거든요. 좋은 일이죠 뭐. 새로운 출발이에요"라며 웃어보였다.
'옥자'의 탄생부터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등 함께 한 동반자들과의 촬영 과정, 또 칸국제영화제에서 불거진 여러 이슈들, 국내 83개의 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작품을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마음은 늘 그렇듯 가장 기대되고 설레는 순간이다.
"한국에서 100여 개의 스크린이 확보돼서 기뻐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최초로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거든요. 북미와 영국 쪽에서도 10여개 이상 스크린이 있고요. 가늘고 길게 버텨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 주말 GV(관객과의 대화)를 해야 할까 봐요.(웃음)"
앞서 지난 12일 열렸던 '옥자'의 국내 언론시사회는 서울 충무로에 위치한 대한극장에서 열리기도 했다. '옥자'가 전국의 소규모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면서 이들 극장에 대한 관심까지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봉준호 감독 역시 "대한극장은 오랜만에 갔었어요. 이제는 없어진 극장들도 많이 있잖아요. 오래된 극장들에 다시금 가 볼 기회가 생겨서 재미있었죠"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단호한 어조로 "('옥자'가 작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것) 그것은 제가 어떤 운동 차원에서 한 것도 아니고 상황이 흘러서 이렇게 된 것이죠. 명분이나 근사한 운동의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옥자'는 봉준호 감독에게는 '즐거운 부담감'이 함께 했던 작업의 시간들이었다.
"손익분기점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됐다"고 말한 봉준호 감독은 "아무래도 상투적으로 나눠 봤을 때 예술영화 하는 사람이든, 상업영화를 하는 사람이든 손익분기점에 대한 압박이 있어요. 최소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잖아요. 최초로 저는 (이번 영화가) 손익분기점의 개념이 없어서, 그저 영화를 잘 완성하면 되는 것이었죠. 손익분기점에서 해방 돼 있는 상태이니까, 그런 부담이 없이 영화를 만든다는 게 즐거운 기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욕심을 부렸던 부분은 '극장에서도 큰 화면으로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봉준호 감독이 100여 개의 스크린 확보에 다행스럽고 기쁜 마음을 함께 표한 것에는 이런 바탕이 있었다.
'옥자'가 공개된 이후 다양한 평가들이 이어졌다. 봉준호 감독은 "'후반부가 예측 가능하다'처럼 여러 의견들이 있었죠. 그래서 빨리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수의 관람으로 이어졌을 때는 어떤 평가가 나올지 궁금해요. 평은 늘 엇갈렸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고요"라고 웃으며 자신의 이름에 가지는 관객들의 기대치에서 오는 부담감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사실은 영화라는 것이, 아무 사전정보 없이 길을 가다 갑자기 시간이 남아서 극장에 쓱 들어가서 봤는데 재밌었다거나 하는, 그런 것이 가장 순수하고 강렬한 영화적 체험이잖아요. 하지만 제 경우에는 영화가 그렇게 보일 기회가 없죠. 무관심의 고통도 겪어봤었기 때문에 무성한 말들이 행복하긴 한데,(웃음) 이제는 그런 상태가 불가능해졌죠. 물론 행복한 고민이겠지만요."
차분하게,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예를 들어 영상자료원에서 '살인의 추억' 10주년이라고 해서 보면, 이미 그때는 시끌벅적하거나 뜨거웠던 시기는 다 지나가고 장롱에 넣어뒀던 옛날 물건을 다시 꺼내보는 느낌이 되더라고요. 그런 느낌도 좋아요. '옥자'도 '10년 후에 사람들이 봤을 때, (지금까지의) 이런 소란들을 다 걷어내고 재상영할 때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쪽으로 상상하려고 하고 있어요."
차기작으로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기생충(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전작 '설국열차'(2013)에 이어 '옥자' 역시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했지만, 봉준호 감독은 "조용히 살고 싶어요"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다음 작품에서도 논란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기생충'은 '마더'(2009)와 비슷한 아담한 사이즈이고, 한국 회사, 또 한국 스태프들, 한국어 대사로 작업할 거예요. 조용히 찍고 싶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큰 스크린, 극장에서 보여지는 게 좋다"라며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넷플릭스로도 만날 수 있지만, 큰 스크린에서 보셨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바람도 덧붙였다.
"'옥자' 상영을 하지 않기로 한 극장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가 가죠. 대신 허용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큰 스크린에서 할 수 있는 기회를 노력해서 찾고 있는 것이에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되고, 밴쿠버, 시체스영화제 같은 곳에서 '스트리밍만 하는 작품이라도 초청하겠다'는 의사가 계속 있더라고요. 그런 기회는 계속 만들려고 하고 있고,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상영될 수 있게 하려고 해요.(웃음) 아, 넷플릭스 가입자분들은 대형 TV나 프로젝터로 보셨으면 좋겠어요. 스마트폰으로는 보지 않으셨으면 좋겠고요. 제가 쫓아다니면서 막을 수는 없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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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