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내가 살인범이다'(2012)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정병길 감독의 복귀는 화려했다. 김옥빈과 신하균, 성준, 김서형 등이 함께 한 '악녀'는 제70회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며 존재감을 알렸다.
'액션 마스터'로 불리는 정병길 감독의 신선한 연출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여기에 김옥빈이라는 배우가 만들어 낸 화려한 액션은 완성도를 더했다. '여태까지 보지 않았던 영상을 만들어내겠다'는 감독과 배우의 시너지가 더해져 '악녀'를 완성시켰다.
'악녀'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정병길 감독을 만났다.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김옥빈 분)가 수십 명의 적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가는 강렬한 오프닝으로 시작부터 시선을 강탈한 액션 영화를 진두지휘한 감독이라는 사실에 고개 갸웃해질 정도로 맑은 미소와 천진난만함을 자랑했다.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서 아날로그적인 삶을 꿈꾼다는 이야기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지난 해 10월 16일 크랭크인 해 올해 2월 12일 촬영을 마쳤고, 후반 작업을 거쳐 5월 칸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6월 8일 개봉까지, 정병길 감독은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칸 영화제에서 선보였던 10여 분의 오프닝 시퀀스는 좀 더 속도감 있게 편집해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편집된 버전은 마음에 들어요"라고 웃어 보인 정병길 감독은 "작업이 다 끝났어요. 개봉만 남았네요. 요즘 하루하루는, 기뻤다가 슬펐다가 기복이 있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정신없이 달렸던 시간들이었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어려움도 있었고,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아쉬움도 자리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커서, 8년 동안 끊었던 담배를 '악녀'를 작업하며 다시 피우게 됐다.
"보통은 술을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데, 촬영을 마치면 너무 피곤하니까 술을 못 마셨어요. 그러니까 스트레스 안 풀리잖아요? 그래서 끊었던 담배를 피웠죠. 담배를 피우게 한 '악녀'에요.(웃음) 서른 살에 담배를 끊었었거든요. 그리고 8년 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됐고, 이번에 칸에서 바다를 보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피우고 끊었죠."
25살 시절, 영화를 하고 싶던 청년은 '스턴트맨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서울액션스쿨을 찾고, 6개월간의 수련을 거친 끝에 스턴트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예체능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겠다는 생각은 확실했다.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어릴 때는 연예인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보여주는 모습은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한국 액션 영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우린 액션배우다'(2008)를 통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하며 정병길표 액션 세계를 차곡차곡 구축해나가기 시작한다.
하나를 향해 꾸준히 달려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만든 칸 영화제에서의 시간을 빼놓을 수 없다. 평소 바다를 좋아한다는 정병길 감독은 3박5일, 칸에서의 짧은 일정 동안 숙소 인근의 칸 해변가에서 수영을 한 이야기를 전하며 해맑게 웃어보였다.
정병길 감독은 "바다에서 살고 싶어요. 바닷가 앞에서요. 그래서 예전에 '내가 살인범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 핑계로 제주도 바닷가 앞의 펜션을 빌려서 두 달 반 동안 살았죠"라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바람을 내비쳤다.
여러 외신들로부터 극찬 받았던 호평도 떠올렸다. 정병길 감독은 "외신 기자 분들이 "한국 영화가 '악녀'를 통해서 더 발전하고 좋아질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기분 좋았거든요. 낯 뜨거울 정도로요"라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내가 살인범이다'를 선보였던 2012년, 해외에 자신을 알릴 기회의 물꼬를 텄다면, 이번 '악녀'를 통해서는 그 그림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나갈 수 있게 됐다.
정병길 감독은 "실제로 할리우드 에이전트에서 연락이 왔어요. 다시 미팅을 하기로 했죠"라며 "서로를 좀 더 알아가면서 조율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할리우드가 하루아침에 작업이 진전되는 게 아니라,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연락을 주고받기도 하니까요. 특히 한국 감독일 경우에는 더 그럴 것이고요.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제가 한국에서 더 성장해서 인지도를 쌓길 원하겠죠. 이 사람이 메리트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요. '내가 살인범이다'로 약간 물꼬가 있었고, 이번에 그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시한 것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해요. 저도 앞으로 쉬지 않고 영화 찍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소식을 전했다.
칸에서의 경험은 좋은 자극제가 됐다. 정병길 감독은 "하루에 1~2시간 정도 자면서 일정을 소화했는데, 또 밤에는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이 생각이 들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영화감독이 돼서 칸영화제를 한 번도 못가는 사람이 훨씬 많잖아요. 그런 터라 어떻게 보면 영광스러운 일이죠. 저도 제가 갔다 온 게 실감이 안 나고 그러니까요"라고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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