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8.06 12:20 / 기사수정 2008.08.06 12:20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서울의 동북중이 8월 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IBK 기업은행 제44회 추계 한국중등(U-15)축구연맹전 그룹별 결승전에서 인천의 부평동중을 연장 접전 끝에 2-1로 꺾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여기까진 그저 단순한 아마추어 축구대회의 결과이지만, 사실 이 경기는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역전승으로 기억되는 98/99 UEFA 챔피언스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바이에른 뮌헨의 결승전, 혹은 2002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만큼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였다.
최고의 명승부
중등부 축구대회는 선수들의 체력 안배 문제를 이유로 전후반 70분으로 치러진다. 이날 동북중은 전반 35분 내내 슈팅 수 12 대 6, 코너킥 5 대 0 등 부평동중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전반 22분 오히려 홍순관에게 그림 같은 중거리 슈팅을 얻어맞으며 선취골을 내주고 말았다.
이후 동북중은 공격수 이근호와 박준경을 앞세워 후반 내내 상대를 몰아붙이며 동점골을 노렸다. 그러나 전반에 이어 슈팅은 번번이 골키퍼 정면을 향하거나 골대를 맞았고, 심지어는 골키퍼가 없는 상황에서 찬 공이 골문 앞에 서있던 수비수에게 막히는 불운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대로 경기가 끝날 것 같던 후반 34분, 팀 동료의 패스를 받은 동북중 이경창이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찬 슈팅이 골대 구석으로 꽂히며 도저히 열릴 것 같지 않던 부평동중의 골문을 열어 젖혔다. 수십 번의 슈팅 끝에 얻은 동점골이었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동북중 선수들의 학부모와 친구들은 열광했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후 곧바로 휘슬이 울리며 경기는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눈앞에서 우승을 놓친 부평동중 선수들은 지쳐보였고, 마치 9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맨유 테디 셰링엄에게 후반 45분 동점골을 얻어맞은 뮌헨 선수들과 같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승리의 기운은 순식간에 동북중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연장 시작 휘슬이 울린 뒤 30초 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같은 이름의 올림픽대표 선수보다 8살 어리지만 머리 스타일도 비슷한 이근호가 상대 수비가 허술한 틈을 타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고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골키퍼 조석희의 키를 넘겨 네트를 뒤흔들었다.
관중석은 일순간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고, 골을 기록한 이근호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결국, 이 한 골을 끝까지 지켜낸 동북중은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어린 선수들이 축구를 통해 선사한 최고의 감동
이날 경기엔 4만 3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의 한 면조차도 채우지 못하는 관중이 들었지만 그 열기와 감동의 크기만큼은 월드컵이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못지않았다.
승리한 동북중에게 모든 찬사와 기쁨이 돌아갔지만, 패배한 부평동중 역시 전후반 내내 승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역전을 당한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기에 많은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이처럼 U-15나 U-18 같은 유소년축구 대회에서는 비록 성인 축구의 뛰어난 기량을 보기는 힘들지만 그들을 능가하는 열정과 투지, 승리를 향한 순수한 열망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축구팬들에게 흥미롭고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는 K-리그는 물론이고 각급 대표팀들 역시 본받아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날 결승전은 승리를 거둔 동북중 선수들에게도, 패배한 부평동중 선수들에게도 앞으로의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에 큰 경험과 의미를 줄 수 있는 경기였다. 또한, 축구가 왜 재미있는 경기인지, 왜 우리가 축구를 보고 감동을 받는지를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명경기였다는 점에서 이 경기를 본 것은 축구팬으로서 큰 영광이었다.
혹시라도 유소년축구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놓치지 말고 보기를 바란다.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뜨거운 열정이 넘치는 축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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