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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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인사이드] 베일에 가려진 김연아의 세헤라자데는?

기사입력 2008.07.16 10:09 / 기사수정 2008.07.16 10:09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지난 11일, 많은 관심을 모았던 김연아(18, 군포수리고)의 새 시즌 곡들이 발표됐습니다. 

롱프로그램 곡으로는 대부분의 팬들이 예상한 림스키 코르샤코프의 발레곡인 ‘세헤라자데(Scheherazade)’가 선정됐지만 쇼트프로그램 곡으로는 많은 이들이 예상치 못한 생상의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가 선택되었습니다. ‘죽음의 무도’가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 곡으로 지정된데 대해서 많은 팬들은 ‘대반전’이 일어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록산느의 탱고'를 통해 표출된 강렬함은 ‘죽음의 무도’로 이어진다

어둡고 근엄한 느낌이 드는 ‘죽음의 무도’는 곡의 제목과는 달리 시종일관 다이내믹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곡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느낌을 표출해 내야하는 쇼트프로그램의 특징을 생각했을 때, 김연아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곡도 드물 것입니다.

김연아가 2007 세계선수권에서 쇼트프로그램 신기록을 작성케 했던 곡인 ‘록산느의 탱고’가 준 역동적인 느낌은 ‘죽음의 무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지난 시즌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 곡이었던 요한스트라우스의 ‘박쥐의 서곡’이 여성적인 섬세함과 경쾌함을 강조했다면 ‘죽음의 무도’는 ‘록산느의 탱고’처럼 다이내믹하고 강렬한 분위기를 가진 곡입니다.

김연아가 우아하고 여성적인 섬세한 연기에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남성적이고 파워 풀한 연기에도 능통한 것이 김연아의 또 다른 장점입니다. ‘록산느의 탱고’를 통해 나타났던 김연아의 파워 풀한 연기는 충분히 표출되었으며 곡 중후반부에서 이루어진 김연아만의 경쾌하고 빠른 스텝과 동작이 크면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손동작은 ‘강렬한 연기’에도 장점을 가진 김연아의 모습이 나타난 순간이었습니다.

이미 김연아와 오서코치는 ‘죽음의 무도’를 통해 나타날 김연아의 표정연기에 대해 언급했었습니다. '록산느의 탱고'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팬들에게 ‘죽음의 무도’의 프로그램 구성은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김연아 스스로가 꿈꾸던 모습. 천일야화의 주인공 '세헤라자데'

세헤라자데는 김연아에 앞서 적지 않은 선수들이 자신의 연기 곡으로 선택한 곡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미셀 콴(미국)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자신의 롱프로그램 음악으로 사용했으며 안도 미키(일본)도 2006 시즌과 2008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 곡으로 이 음악을 선택했었습니다.

데이비드 윌슨은 “세헤라자데는 다른 피겨 선수들도 이미 사용했던 적이 많을 만큼 인기 있는 곡이다. 다만 문제점은 45분에 달하는 긴 곡을 4분 10초로 적절하게 편곡하는 것이었는데 김연아만의 장점을 살려서 최상의 곡으로 편곡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곡은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했던 곡이었는데 김연아도 이 곡을 선호해서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됐다.”라고 세헤라자데를 선택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세헤라자데’의 특징은 장엄함과 엄숙, 그리고 애잔함과 경쾌함 등을 동시에 표출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피겨선수들 중에서도 표현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아니면 이 곡을 제대로 소화하기가 힘든데 표현력에서 누구보다 뛰어났던 선수라 일컬어졌던 미셀 콴도 이 곡을 훌륭하게 소화했었습니다.

미셀 콴은 세계선수권을 무려 5번이나 정복했지만 올림픽금메달과는 인연이 없던 ‘불운의 스케이터’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피겨 팬들은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됐던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타라 리핀스키(미국)나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이변을 일으킨 금메달리스트 사라 휴즈(미국)보다 미셀 콴을 더욱 각별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미셀 콴이 피겨를 통해 나타나는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해낸 스케이터였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셀 콴은 2002 동계올림픽에서 ‘세헤라자데’를 통해 트리플 루프, 트리플 토룹+더블 토룹, 트리플 러츠+더블 룹, 더블 악셀, 트리플 러츠 등의 점프와 그녀의 장기였던 스파이럴을 훌륭하게 성공시켰지만 트리플 플립에서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를 범했고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연속적으로 성공시킨 사라 휴즈의 기세에 눌려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김동성의 쇼트트랙 스캔들로 떠들썩했던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은 각종 종목에서 오심 논란으로 물든 올림픽이었습니다. 점프의 정석적인 규정이 강화된 지금의 상황에서 사라 휴즈의 경기를 다시 보면, 표면적으로 볼 땐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나타나지만 점프 하나하나가 온통 규정에서 어긋난 치팅(속임수)으로 뒤범벅이 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사라 휴즈는 올림픽챔피언이기는 했지만 2002 동계올림픽을 제외하면 다른 대회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또한, 팬들에게도 미셀 콴과 러시아의 이리나 슬로츠카야처럼 특별한 선수로 기억되지 않고 있습니다.

미셀 콴은 ‘세헤라자데’를 통해서 초반엔 우아함을 나타냈고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애잔함과 역동성을 동시에 표출했습니다. 안도 미키는 비록 짧은 쇼트프로그램에서 이 곡을 연기했지만 분위기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세헤라자데’는 롱프로그램으로 연기하게엔 상당히 힘든 곡인 것이 사실입니다.

세헤라자데가 천일야화의 왕에게 천개의 이야기를 들려준 만큼, 다양한 표현력을 일관적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이 바로 ‘세헤라자데’가 지니는 특징입니다.

표현력의 대가였던 미셀 콴이 이 곡을 제대로 소화했듯이 현역 피겨선수들 중, 최고의 표현력을 지닌 김연아도 1000개 이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연기력으로 보여줄 가능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2005년 주니어선수권부터 나타난 김연아만의 장점은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피겨의 기술요소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점이었습니다.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표현력을 필요로 하는 이 곡의 특징을 생각할 때, 김연아는 천개의 다양한 이야기를 피겨로 완성시키는 ‘은반 위의 세헤라자데’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사진 = 김연아 (C) 엑스포츠뉴스 전현진 기자]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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