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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부산, 아이파크가 가지고 싶은 그 이름

기사입력 2008.05.28 22:28 / 기사수정 2008.05.28 22:28

김경주 기자



[엑스포츠뉴스=김경주 기자] 실로 오랜만의 부산 원정 길이었습니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는지라 한번 가봐야지 하고도 워낙 먼 거리인지라 쉽사리 원정 취재를 떠나지 못했었습니다. 결국, 굳은 마음을 먹고 떠난 부산 원정 길에서 겪은 일들은 여러 가지로 충격이었습니다. 연일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뜨거운 롯데의 열기와 그 속에서 고군분투 중인 부산 아이파크의 눈물겨운 노력, 모든 것이 놀라움이더군요.

반기를 드실 분도 계시겠지만, 부산은 구도라고 불리는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구(球)의 의미는 축 '구'보다는 야 '구'가 훨~씬 큽니다. 부산 사람들의 야구 사랑이 어제오늘 일이겠습니까 만, 실제로 겪으니 실로 엄청나다는 소리가 절로 나더군요.

아시아드에 도착했을 때 그 옆 사직 구장에서는 한창 롯데 경기를 위해 입장을 준비하는 관중으로 북적였습니다. 노점상도 많았고, 손을 잡은 연인이나 아이를 데려온 가족 등 관중의 모습도 제각각이었죠. 야구 티켓 매표를 위해 서있는 줄을 본 원정 버스 안에서는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두꺼운 줄이 하염없이 이어져 있더군요. 저 사람들이 전부 다 경기전에 입장할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의문 또한 생겼습니다.

그 많은 인원을 뒤로하고 들어선 아시아드는 조금 전 그 열기가 '무색해질'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적막감마저 감돌더군요. 기자가 출입구를 찾지 못해 그 큰 운동장을 네 바퀴나 돌 동안에도 별다르게 누군가를 만나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출입구를 찾으며 바라본 운동장 안은 바깥과 다를 것 없이 조용한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옆인데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기자는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정해진 축구와 달리 야구는 9회가 끝나야 경기가 마무리됩니다. 당연히 축구보다 경기 시각이 길어질 수밖에 없죠. 경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은 기자는 무심결에 창밖을 내다봤고, 시야에는 아직 경기 중인 사직 야구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이는 곳은 꼭대기 뿐이었지만 대단하더군요. 새카맸습니다. 사람의 머리로요. 꽉 찼다는 반증이겠죠. 조금 더 보이는 맞은편에도 관중은 가득했습니다.

조금 얘기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네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롯데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산 아이파크의 모습이죠.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 가 보신 적이 있는지요. 


축구만을 위해 지은 경기장이 아니다 보니 크고, 트랙도 넓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축구를 보기에 좋은 시야는 아니죠. 경기장이 워낙 크다 보니 웬만큼 사람이 와서는 차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흥미가 떨어져 점점 관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한때 부산을 맡았던 에글리 감독은 직접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부산 시민들에게 경기 티켓을 나눠주면서 직접 홍보에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순서가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이제 부산 구단에서 직접 나섰습니다. 두 가지 타개책을 내 놓았는데요. 하나가 가변좌석, 그리고 또 하나가 초등학생 관중을 상대로 한 출석 이벤트입니다.

 부산은 올 시즌 시작과 함께 가변좌석을 설치했습니다. 설치와 해체에 3일이 걸리는 이 간이 관중석은 상당히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단 부산 서포터석과 일반 관중석인 동편, 두 쪽에 가변좌석을 설치했는데, 그동안 항상 문제였던 시야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죠.

이 가변좌석에 앉은 부산 관중, 홈 편향성이 엄청납니다. 기자가 앞에 출구 밖에서 바라본 경기장이 참 조용했더라고 했는데, 경기장 안에 들어와 가변좌석 근처로 이동하니, 아까 경기장 밖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그 예의 걸쭉한 사투리로 부산 선수들을 독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군요. 공격권과 그에 이어진 골 문제로 잠시 경기가 중단됐을 때 가변좌석에 있던 관중이 성남에 대한 항의 표시로 전부 다 발을 굴렀습니다. 흡사 탱크가 굴러가는 듯한 큰 소리가 들려왔고, 기자는 주변 하늘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줄 알고 하늘을 쳐다보기까지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 소리가 주는 위압감은 생각보다 큽니다.

발 구르는 소리도 소리지만, 그 행동을 모두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정말 분노에 차 발을 구르고 있는 관중도 있었지만 남이 하니까, 재밌어 보여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관중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경기장에 와서 즐거운 일이 생긴다면 다음에도 또 경기장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생길 테니까요. 어쨌든 돈을 지불하고 경기장을 찾는 것은 즐겁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트랙 때문에 멀리 떨어진 관중석이 아닌, 코앞에서 선수들을 볼 수 있고 그 선수들을 바라보며 플레이 하나하나에 작은 반응이라도 내보일 수 있는 즐거움은 '직접' 관람하는 데 있어 큰 메리트가 아닐 수 없겠죠. 

혹시, 어릴 적 무언가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 있으신가요?  한때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모으는 어린이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어린이들에겐 무언가 ‘모은다는 것’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는 합니다. 그래서 나온 부산의 두 번째 타개책이 초등학생을 상대로 나눠주는 입장 카드인데요.

목걸이 형식으로 된 이 입장카드는 어린이의 이름과, 학교명 그리고 그 카드를 발급받은 날짜를 쓸 수 있는 앞면과 홈경기 일정표가 있는 뒷면으로 되어 있는데 이 뒷면 일정표에는 경기를 보러 온 날 출입구에서 스티커를 부착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 날 부산과 성남 경기에서 이 카드를 발급받은 한 어린 팬의 카드에는 부산 vs 성남에 우승이(부산의 마스코트) 스티커가 붙어있었습니다.

스티커를 붙여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6경기를 보면 핸드폰 클리너, 12경기는 부산 엠블럼 패치, 18경기를 모두 관람하면 사인볼을 상품으로 주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가변좌석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던 것도, 그리고 목에 이 카드를 많이 걸고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그러나 이 마케팅이 비단 어린이들만을 상대로 이뤄진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입니다. 


보통, 어린 아이 혼자 경기장을 보내는 일은 흔치 않죠. 카드를 발급받은 아이가 일정표를 확인하고 경기장을 가자고 부모님을 조르게 되면, 자연스레 부모도 경기에 함께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두 경기씩 경기장을 찾다 보면 어느새 주말은 가족끼리 축구장 가는 날로 굳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어린 아이가 그렇게 경기장을 찾아가며 자라면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어서도 경기장을 찾게 될 것이고,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아이의 손을 잡고 경기장을 찾아올 것이고요. 그렇게 된다면, 부산의 마케팅은 성공을 거두는 것이겠죠.

갈 길이 멀기는 합니다. 이러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부산하면 축구보다는 야구가 먼저 떠오를 테니까요. 그러나 이제 시작입니다. 비록 야구장의 그 수보다는 적었지만, 그 열기만은 뜨거웠으니까요. 조금씩 물들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변좌석이 아닌 아시아드 전체가 술렁거릴 날도 오겠죠. 그날까지 부산 아이파크의 노력이 멈추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언젠가가, ‘곧’이 되길 바라봅니다. 다시 부산을 찾았을 땐 아시아드 주변도 북적거리길 빌면서 말이죠. 

구도 부산, 부산 아이파크에도 썩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요.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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