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5.21 14:58 / 기사수정 2008.05.21 14:58
[엑스포츠뉴스=전성호 기자] 지난 시즌 포항의 우승은 K-리그 팬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됨과 동시에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 중 가장 뜨거웠던 논란은 '정규리그 5위 팀이 시즌 챔피언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 과연 옳으냐'란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포항의 우승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회의 규정은 이미 시즌 시작 전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고, 그 규정에 맞게 시즌을 가장 잘 치른 팀이 우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 정규리그 5위의 '시즌 챔피언 등극'은 그 극적임 만큼이나 커다란 플레이오프 제도에 대한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서울대가 수능 100%로 입시를 한다면 서울대에 가고 싶은 학생은 수능을 준비해야지, 고교 3년 내내 내신에만 치중하다가 수능 못 봐서 떨어져 놓고 '3년간의 노력은 왜 인정 안 하냐'라고 반박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정규시즌 1, 2위를 하여 플레이오프에서 기다리는 동안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이 겁난다면 일부러 전략적으로 3~6위를 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3~6위를 하기 위해 일부러 져야 된다는 걸까? 이 대목에서 현행 플레이오프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많은 팬은 현행 6강 플레이오프가 마라톤에서 1~6등한 선수들을 모아놓고 100m 달리기를 시켜 등수를 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고, 시즌내내 K리그 최강팀으로서 군림한 성남은 포항에 패배하며 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도 실패했다. 물론 6강 플레이오프는 막판 포항, 서울, 전북, 대전의 치열한 순위싸움을 통해 성남이 일찌감치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팬들의 리그 집중도를 높인 점에서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굳이 플레이오프의 대상으로 시즌 챔피언의 타이틀을 걸어야만 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여러 가지 생각 끝에 나온 고육지책이지만 지금의 이 체계는 앞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승강제를 도입하려는 리그의 계획과 유럽축구의 리그 방식에 익숙해져 가는 축구팬들에게 적합하지도 않고, 매력적이 지도 않다. 6강뿐 아니라 기존의 전후기 체제나 4강 체제에서도 얼마든지 리그 결과의 역전이 가능했다. 축구팬들은 이제 리그 한 경기 한 경기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어하며 같은 의미에서 이런 가치가 축적된 장기 레이스의 승리자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여기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플레이오프를 폐지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아직 K-리그는 승강제와 같이 끝까지 리그에 팬들이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가 없다. 즉, 화제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런 장치는 리그 차원의 마케팅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야, 뉴스에도 한번 더 나와 사람들에게 리그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보여주고, 사람들 입에도 한번 더 오르내리게 될 수 있으니까. 한국의 평범한 남자들이 평소엔 프로야구 패넌트레이스에 큰 관심이 없다가 플레이오프 시즌에만 가면 시간 날 때마다 그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공중파가 정규방송 관계없이 중계까지 해준다!)
의외의 변수에 의해 생각치도 못한 결과가 나오는 초단기전이 주는 매력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K리그는 리그와 플레이오프라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이다. 유지하려니 정규리그의 매력이 반감되고, 없애자니 플레이오프의 매력이 너무 아깝고….
리그컵은 찬밥신세
이에 못지않게 K-리그 팬들에게 회자되는 것이 리그컵이다. 2001 시즌 토너먼트컵 폐지 이후 컵대회는 상반기, 정규리그는 하반기에 열리며 차별화가 이루어졌지만, 2003시즌에는 정규리그가 4라운드 풀리그로 열리며 폐지되었었고, 2004년 부활했을 때는 정규시즌과 병행하여 1라운드 풀리그로 열렸다. 이때부터 컵대회는 차별화가 되지 않았고, 그런 상태로 2007년부터 J리그 컵처럼 AFC챔피언스리그 진출팀은 조별리그를 면제시켜주는 지금의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행 리그 컵은 FA컵처럼 모든 각급 팀들이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우승에도 1억원의 상금을 제외하면 아무런 혜택이 없다. 때문에 팬들은 물론이고 K-리그 팀들에게서조차 그 가치가 무시당하여 현재는 신진급이나 1.5군 선수들이 자주 출전하는 대회가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주중에 열린다는 단점으로 인해 더더욱 팬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하지만, 리그컵을 폐지할 수도 없는 것이, 리그컵이 폐지되면 K-리그는 상반기의 주중경기(수요일)가 없어져 버린다. 열성팬들에게 주중 경기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고, 리그 차원에서도 1주일에 두 번 뉴스에 실리는 것도 중요하다. (야구는 일주일에 6번 신문에 실린다.)
그렇다고 2003년처럼 컵대회 없이 4라운드 풀리그를 진행하면 한 시즌에 무려 팀당 46경기를 치러야하므로 체력적, 재정적으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7, 8월의 폭염기에도 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더 나아가 창단이 추진 중인 강원도, 광주 등의 신생팀이 생기면 경기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15팀이 되면 50경기, 16팀이 되면 54경기다.
그 때 되면 다시 바꾸면 된다고? 팬들은 이제 1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리그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그런 식으로 리그 경기수를 조절할 바에는 차라리 리그컵의 내실화를 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 두 가지의 해법은?
▲ 3가지 대회의 권위를 모두 새울 수 있는 방법은 AFC 챔피언스리그 출전권과 P/O 제도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내년부터 획기적으로 강화되는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찾을 수 있다. AFC는 지난 20일 발표를 통해 내년부터 개편되는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우리나라에 4장의 본선 티켓을 부여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이 4장의 티켓을 플레이오프와 리그컵에 연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AFC챔피언스리그가 이전과 동일한 대회라면 이런 주장을 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AFC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은 리그 우승이나 FA컵 우승의 동의어였을 뿐 한 팀이 대회 우승과는 별개로 '시즌의 목표점'으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유럽리그의 팀들이 우승이 아닌 '유럽대회 진출권'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더군다나 자칫 리그 경기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에 가지 못하면 금전적인 이득마저 거의 없는 대회 출전권의 값어치가 높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AFC 챔피언스리그는 내년부터 상금을 대폭 올리고 참가팀을 늘리면서 대회 참여의 매력을 한껏 높였다. 우승상금은 최대 250만 달러(약 25억). 준우승 상금도 100만 달러(약 10억)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승할 경우 세계클럽선수권대회 출전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때는 최하위를 기록해도 참가비로 100만 달러(약 10억)를 받는다. 우승하면 500만 달러(50억)! 즉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할 경우 최소한 35억 원에 가까운 '상금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웬만한 K-리그팀의 한 해 예산이 100억 원 내외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설사 결승진출을 못하더라도 예선전부터 누적되어 지급되는 '승리수당'은 본선에 오를 경우 최소한 3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K-리그 우승상금이 겨우(?) 3억(약 30만달러)이란 점을 감안하면 꽤 쏠쏠한 수입이 될 확률이 높다. 더군다나 이전에는 원정 지원금이 2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내년부터는 참가 비용이 별도로 지급됨으로써 클럽의 부담도 훨씬 줄어들었고 대회참가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졌다.
유럽의 팀들 역시 이러한 유럽대회 상금에 의해 팀의 운영비나 이적자금을 많이 얻어내는데, AFC 챔피언스리그의 강화(혹은 돈 잔치?)는 K-리그 팀들에게도 이러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K리그 팀들에게 매우 솔깃한 이야기다. 따라서 AFC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은 (UEFA챔피언스리그처럼) 리그의 우승만큼이나 중요한 목표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팬들 사이에선 FA컵 우승팀의 AFC 챔피언스리그 참가자격에 대해 설왕설래하지만, 일단 FA컵 우승팀의 출전자격은 없어지기 힘들것으로 보인다. AFC챔피언스리그가 태생적으로 아시아 컵위너스컵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엔 컵위너스컵이 UEFA컵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FA컵이나 리그컵 우승팀이 UEFA컵에 참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FA컵 우승팀들의 AFC챔피언스리그 부진으로 야기된 일부 팬들의 주장과는 달리 FA컵 우승팀의 AFC챔피언스리그 참가자격을 없애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정규리그를 통한 AFC챔피언스리그 티켓은 3장이 남는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된다. 우선 정규리그 1위를 리그의 우승팀으로 정하고, 챔스리그 티켓은 정규리그 기준 1,2위에게 부여한다. 물론 정규리그 1위팀은 A3 챔피언스컵 출전권 또한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3,4,5,6위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치게 하고, 이 플레이오프의 우승팀에게 챔스리그 티켓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약 4팀 중에 FA컵 우승팀이 있다면 7위에게 그 기회를 부여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K-리그 중위권 팀들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낼 수 있어, 리그 전체의 관심도 또한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보다 더 좋은 것 중 하나는 6위 대신에 '리그 컵 우승팀'을 참가시키는 것이다. 리그컵 우승팀에게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부여하고 정규리그 3,4,5위팀과 플레이오프를 하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리그컵 우승팀이 3,4,5위중 하나인 경우 6위에게 기회를 부여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AFC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 컵위너스컵을 흡수했던 대회이므로 리그컵 우승팀이 AFC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은 오히려 리그 3,4,5위보다도 정당성이 있다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팬들은 정규리그의 가치와 컵대회의 가치를 알게 되고, 더 나아가 AFC챔피언스리그의 가치까지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규리그와 FA컵, 리그컵, 플레이오프를 통해 팬들도 인정하는 K-리그 최고의 팀들만이 AFC 챔피언스리그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AFC 챔피언스리그에는 이전과는 다른 큰 권위와 의미가 생기고 팬들도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여러 국내 리그 대회들의 권위를 세움과 동시에 UEFA챔피언스리그라는 국가별 최강클럽대항리그의 재미를 안방 TV로밖에 볼 수 없었던 아시아 팬들의 아쉬움을 직접 AFC챔피언스리그를 통해 즐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마치면서
K-리그는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리그의 체계 등은 팬들의 혼란과 무관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AFC챔피언스리그의 강화는 분명 리그에 새로운 흥밋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리그가 기존의 플레이오프제도와 컵대회를 잘 활용하여 이제 수십 년의 전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K-리그'만의 체계를 갖춰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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