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강대호 기자] 일명 ‘400전 무패의 사나이’로 불리는 힉송 그라시이(11승)에 대한 한국의 종합격투기 팬의 인식은 그리 좋지 못하다. 지금처럼 종합격투기가 정립되기 이전, 발리투두(무규칙 무제한이종격투기) 시절의 강자였을 뿐 지금도 통한다는 보장은 없다고 보는 사람이 대다수다.
‘400전 무패’도 상대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다며 폄하되는 것이 보통이다. 2000년 5월 26일을 끝으로 종합격투기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있음에도 종합격투기 헤비급 강자와 대결도 자신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그의 발언도 반감을 사고 있다.
힉송 그라시이의 체격은 현재 종합격투기 기준으로는 미들급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입식타격을 제외한 다양한 유형의 경기에서 400승 이상을 거둔 그에 업적에 대해 국내의 진지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역이 아님에도 자신에 찬 발언을 하는 힉송에 대해 현대 종합격투기의 수준을 들어 비판하기 이전에 당시 그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를 아는 것이 먼저다.
1958년 11월 21일 브라질에서 태어난 힉송 그라시이는 지우짓수의 중시조인 엘리우 그라시이의 아들이다. 미국 종합격투기단체 UFC의 창설자 중 한 명인 호리옹 그라시이(지우짓수 9단)의 친동생이며 UFC 토너먼트 3회 우승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호이시 그라시이(14승 3무 3패), 실전레슬링 세계선수권 역사상 유일한 3연속 우승자인 호일레르 그라시이(5승 1무 4패)의 이복형이기도 하다.
흔히 말하는 ‘400전 무패’의 신화는 지우짓수·자유형 레슬링·삼보·발리투두 등 입식타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형의 경기를 포괄한다. 근 20년간 지우짓수 세계선수권의 -85kg와 무제한급의 우승을 놓치지 않았고 자유형레슬링 브라질챔피언 2회, 삼보대회 우승 경력도 있다. 1994, 1995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발리투두대회에 출전하여 1일 3경기를 모두 이겨 우승을 차지했다.
힉송의 공식적인 종합격투기 전적은 11전 11승이다. 판정승은 한 번도 없으며 조르기로 7회, 팔 관절 공격으로 2회, 그라운드 상황에서 주먹공격으로 거둔 승리가 2번이다. 후나키 마사카쓰(38승 1무 13패)와 다카다 노부히코(2승 2무 6패), 나카이 유키(8승 2패)와 레이 줄루(1승 6패)에게 이겼다.
사실 힉송이 ‘400전 무패’를 적극적으로 공언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지우짓수 수련 초기에 패배를 경험한 것을 절대 부인하지 않는다. 게다가 당대 최강자로 명성을 얻은 후에도 1패를 당한 바 있다. 그럼에도, 현재 힉송의 ‘400전 무패’란 수식어는 역으로 그의 자신감을 비꼬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사실이다.
힉송에게 유일한(?) 승리를 거둔 사람은 현재 미국유도협회장인 론 트립이다. 1953년생인 트립은 1993년 삼보 미국선수권에서 45초 만에 허벅다리 한 판으로 힉송을 이겼다. 패배 후 힉송은 “던지기에 의한 한판이 있음을 알았다면 방어를 했을 것이다.”라며 주최 측이 사전에 규칙을 잘못 알려줬다고 항의했다. ‘무패 전설’이 깨진 것을 믿기 어려웠는지 일각에서는 힉송이 후일 트립과 별도로 2차전을 가져 팔 관절 공격으로 패배를 설욕했다는 소문을 퍼트렸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만약 힉송을 이긴 트립이 별볼일없는 사람이었다면 패배는 치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트립 역시 당대 최고의 그래플러 중 한 명이었다. 1970년부터 1994년까지 유도·삼보·레슬링 경기에 모두 2,000회 이상을 출전했고 집계가 시작된 1982년부터 전적은 900승 4패다.
1990년 지우짓수 범미선수권 결승에는 히강 마샤두(지우짓수 8단)에게 48초 만에 서브미션으로 승리했다. 당연하겠지만 힉송과 히강 마샤두란 당대 손꼽히는 유술가 두 명에게 모두 승리한 사람은 트립이 유일하다. 1995년에는 삼보 10단, 2006년에는 유도 6단을 받았다.
힉송은 무술뿐 아니라 요가에도 조예가 깊다. 태극권 등의 요소를 도입한 독창적인 요가의 연습장면이 방송으로 여러차례 방영되었다. 최근까지도 힉송에게 가르침을 받은 현역 종합격투기 선수나 유술가 등이 공통으로 증언하는 것이 바로 건재한 체력이다.
지우짓수가 유도(柔道)가 아닌 유술(柔術)로 정신적인 부분보다는 기술과 실전성을 강조한다고 하지만 대표적인 유술가 중 한 명인 힉송의 자기관리는 어느 무도인 못지 않다. 실전 최강자의 호전성과 어울리지 않게 평상시 힉송은 일반적인 포르투갈어권 사람과 달리 말이 빠르지 않고 작위보다는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한다고 한다.
물론 힉송의 과거 업적과 건재한 체력이 현재 종합격투기 기량을 보증하진 않는다. 과거처럼 체급을 초월한 강함은 고사하고 미들급 세계 10강에 포함되는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가장 최근의 종합격투기 경기로부터 벌써 2,905일이 지났고 지금도 인정할만한 강자를 이기지도 않았다.
종합격투기가 정립되고 발전하면서 다재다능함이 강자의 덕목이 됐지만, 한가지 특기가 압도적이라면 강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다. 힉송의 그래플링은 아직도 상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종합격투기 선수로도 잘할 수 있을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근거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힉송이 현재의 종합격투기 강자와 대결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승리를 확신하는 힉송의 발언은 부정적으로 보기에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위 ‘한물간’ 인물이 자부심과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격투기의 특성상 자신감을 ‘증명’해야 한다는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설 자체에 대한 부정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대중뿐 아니라 언론도 ‘이종격투기’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종합격투기의 정립으로 기량은 평준화되고 기술은 다양해졌지만, 이종격투기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발전은 불가능했다. 힉송이 설령 몸소 입증하지 않더라도 그의 자신감을 헛소리로만 보기보다는 과거 업적을 궁금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힉송 그라시이
생년월일: 1958년 11월 21일 (만 49세)
신체조건: 178cm 84kg
국적: 브라질
기본기: 지우짓수 7단
종합: 11승 / 주요승리 - 후나키 마사카쓰, 다카다 노부히코, 나카이 유키, 레이 줄루
주요경력: 지우짓수·자유형레슬링·삼보·발리투두(무제한이종격투기)·실전 합계 400+승, 자유형레슬링 브라질 챔피언 2회, 삼보대회 우승, 지우짓수 세계선수권 -85kg·무제한급을 근 20여 년간 제패, 발리투두(무제한무규칙이종격투기) 일본대회 2연속 우승(1994-95)
비고: ① 힉송은 지우짓수 중시조인 엘리우 그라시이의 아들이다. ② 힉송은 UFC 창설자 중 한 명인 호리옹 그라시이(지우짓수 9단)의 친동생이다. ③ 힉송은 UFC 토너먼트 3회 우승자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호이시 그라시이(14승 3무 3패), 실전레슬링 세계선수권 역대 유일의 3연속 우승자인 호일레르 그라시이(5승 1무 4패)의 이복형이다. ④ 힉송은 1993년 삼보 미국선수권에서 론 트립(현 미국유도협회장)에게 45초 만에 허벅다리 한 판으로 패했다. 패배 후 힉송은 주최 측이 사전에 규칙을 잘못 알려줬다고 항의했다. ⑤ 힉송에게 1패를 안긴 트립은 1970년부터 1994년까지 유도·삼보·레슬링 경기를 모두 2,000회 이상을 했으며 집계가 시작된 1982년부터 전적은 900승 4패이다. 1990년 지우짓수 범미선수권 결승에는 히강 마샤두(지우짓수 8단)에게 48초 만에 서브미션으로 승리했다. 1995년 삼보 10단, 2006년 유도 6단을 받았다. ⑥ 힉송은 태극권 등의 요소를 도입한 독창적인 요가에 능하여 연습장면이 방송으로 여러 차례 방영되었다.
참고: 이 글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과 현지시각을 반영했다.
[사진=힉송 그라시이 (C) 힉송 그라시이 공식홈페이지 (rickson.com)]
강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