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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칼럼] 누구도 김병현을 비난할 수 없다

기사입력 2008.04.26 10:23 / 기사수정 2008.04.26 10:23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김병현이 스스로 은퇴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이 식었으며 다른 길을 선택할 생각도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김병현이 마침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아직 29살인 나이를 생각하면 그의 은퇴는 너무 이른 감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투수로서 노련미가 서서히 쌓여가고 타자의 성향과 흐름을 본격적으로 간파해나가는 무렵에 발언한 것이어서 아쉬움이 더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은퇴표명을 한 것은 아니지만 김병현은 현재 어떠한 훈련도 하고 있지 않으며 MLB의 재입성이나 혹은 우리 히어로즈와의 계약 협상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곧 은퇴를 대비하는 선수의 모습입니다.

김병현은 성균관대학교 시절, 20대가 되기도 전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스카우트되어 어린 나이에 메이저리거가 됐습니다. 일찍 빅리그에 입성한 만큼 성장 속도도 빨랐습니다. 초고속으로 마이너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해, 뉴욕 메츠와의 시합에서 마무리로 나와 첫 데뷔 무대에서 강타자인 마이크 피아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세이브를 기록한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김병현은 당시 애리조나의 선발진인 랜디 존슨과 커트 실링이란 최고의 원투 펀치의 뒤를 이어주는 불펜 투수로 성장해 갔습니다. 특히나 삼진 구사율은 메이저리그 불편 투수들 가운데 가장 높아서 유명한 그의 명칭인 ‘BK'가 생겨나게 됩니다.

가장 믿음직스런 불펜투수로 낙인찍혔던 김병현은 그 당시 애리조나의 마무리 투수였던 맷 맨타이가 부상인 것을 기회로 삼아 팀의 주전 마무리 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이브를 챙겨나가기 시작한 2001년 시즌엔 19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나이 어린 마무리 투수였던 김병현은 애리조나가 뉴욕 양키스와 함께 월드시리즈에 오르자 비로소 미국 전역에 걸친 관심사를 얻어냅니다. 그러나 초고속으로 성장한 선수의 신고식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월드시리즈 4차전과 5차전에서 연속적으로 등판한 김병현은 두 번의 등판에서 모두 블론 세이브를 기록하며 4차전에는 데릭 지터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았고 5차전에선 당시 양키스의 3루수였던 스캇 브로시어스에게 통한의 동점 투런 홈런을 얻어맞았습니다.

당시 22살에 불과했던 김병현은 감당하기 힘든 상처였습니다. 비록 애리조나의 기적 같은 역전승이 김병현의 부진을 덮어줬지만 적지 않은 마무리 투수들이 통한의 한 방을 맞고 그 충격을 극복하지 못해 조루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김병현이 과연 재기를 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올랐었습니다.

그러나 김병현에게 가장 뜻 깊었던 해는 바로 애리조나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다음 시즌인 2002년이었습니다. 과연 마무리 투수로서 다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겠는 가란 의문을 무시하기라도 한 듯이 김병현은 2002년 시즌에 최고의 피칭을 구사했습니다.

김병현의 2002시즌 기록은 총 72경기에 등판해 84이닝 동안 기록한 방어율이 2.04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 뽑혔고 그해에 36세이브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시즌을 보낸 2002년 이후로 김병현은 서서히 침체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가 그토록 열망한 선발투수로 뛰게 됐지만 성적은 마무리 투수였던 시절에 비하면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애리조나 시절에 보였던 날카로운 슬러이더와 2002년에 새롭게 정착한 체인지업의 위력도 점차 떨어져 갔으며 언더핸드 투수로서는 상당히 빨랐던 패스트 볼 역시 속도가 저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피츠버그 파라이어츠에서 방출될 때까지의 김병현은 더 이상 애리조나 시절의 전성기를 되찾지 못했습니다. 김병현을 평가할 때 흔히 나오는 말은 정신적인 성숙이 부족하다는 점과 주변 코칭스태프들과의 이견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팀 동료와의 인간관계에서도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면들에서 김병현이 부족해 일찍부터 여물었던 자신의 재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나가지 못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며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점은 김병현이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계속 마무리 투수로 뛰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결과가 오지 않았을 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김병현은 빅리그에서 오랫동안 생존하려면 선발투수보다 마무리가 더 어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갈망한 선발 투수가 되기 위해 선택한 자신의 길에 김병현은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선수로서 자신의 의지를 꺾을 때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길을 후회 없이 시도해 보는 점은 결코 비난받을 처사가 아닙니다.

김병현이 너무나 어린 나이에 일찍 성장한 것이 한편으로는 불안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병현은 자신이 빅리그에 머물렀던 10년 동안 웬만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이룩하지 못했던 것을 많이 이룩했습니다.

무엇보다 월드시리즈 챔피언 반지를 두 개(2001년 애리조나,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나 가지고 있으며 2002년엔 올스타전에 초청이 되었었고, 그해엔 36세이브를 올려 당시 역대 애리조나 마무리 투수들 중 가장 많은 세이브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때만 해도 김병현이 과연 메이저리그에서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도 나왔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병현은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 노력해왔고, 서른이 되기 전에 은퇴를 표명하고 있지만 그가 어린 나이에 이룩했던 성과는 한국 야구계에서 두고두고 인정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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