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강대호 기자] 2004년 유럽선수권 우승의 그리스(10위), 유럽선수권 준우승(2004)/2006년 월드컵 4위의 포르투갈(8위) 중 굳이 현재 우열을 가린다면 포르투갈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양국의 기틀이 잡힌 2003년 이후 전적을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리스의 3승 1무 우위, 이 중 3경기가 포르투갈/1경기가 중립지역, 유로 2004 본선에서 2연승 등의 사실은 그리스에 ‘포르투갈 천적’이란 표현을 할 만하다.
3월 26일, 독일의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평가전에도 그리스는 미드필더 기오르기오스 카라구니스(리그 20경기 1골, 파나시나이코스FC)의 직접프리킥 2골로 공격수 누누 고메스(리그 16경기 6골, SL벤피카)의 1골 만회에 그친 포르투갈에 2-1로 승리했다.
카라구니스는 태클/기본기가 좋고 그리스에선 모든 것이 가능한 미드필더로 평가되지만 1995년 프로데뷔 후 빅리그 경력은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탈리아/2003-05/리그 32경기 3골) 시절이 전부다. 물론 만회골을 넣은 고메스도 ACF 피오렌티나(이탈리아/2000-02/리그 50경기 19골) 경력이 유일한 빅리그 경험임에도 주장을 맡고 있지만 3대 리그 소속이 8명(골키퍼 1/수비수 3/미드필더 2/공격수 2)인 포르투갈이 3명(수비수 1/미드필더 2)에 불과한 그리스에 최근 4연속 무승(1997년 이후로는 2무 3패)이라는 것은 우연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범위를 이번 평가전으로 한정한다면 포르투갈의 변명은 가능하다. 카라구니스가 “소속팀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의 프리킥 2골은 “잘 찼다.”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재밌는 것은 대표팀에서 프리킥권한을 인정받는 카라구니스가 파나시나이코스에선 그러지 않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이번 명단 중 핵심인 미드필더 데쿠(리그 15경기 1골 5도움, FC바르셀로나),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리그 28경기 26골 6도움)/나니(리그 23경기 3골 6도움, 이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그리스전에 결장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포르투갈의 강함은 2000년 이후 브라질(세계 2위)에 2승 1무로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이 중 2경기가 홈이긴 하나 카라구니스가 3월 27일 유럽축구연맹(UEFA) 공식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브라질에 2연승 한 포르투갈을 이겨서 기쁘다.”라고 표현한 것만 봐도 이는 근거로 충분하다.
그리스의 이번 승리가 행운이 가미된 프리킥 2골과 포르투갈의 전력약화 덕이라 해도 앞서 언급처럼 최근 3승 1무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리스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리스의 빅리거 중 한 명인 미드필더 스텔리오스 기안나코풀로스(본명 스틸리아노스, 리그 13경기 1골/볼턴 원더러스)는 그리스의 장점으로 조직력/이타주의/감독의 역량을 들었다. 기안나코풀로스는 측면 미드필더로 득점력/문전쇄도/정교한 중장거리 슛이 좋다.
그리스는 유로 2004 우승/유로 2008 예선의 선전으로 세계 10강에 들었지만 메이저대회 본선 출전은 4회(월드컵 1/유럽선수권 3)에 불과할 정도로 전통의 강호와는 거리가 멀다. 현재도 선수만 본다면 이는 마찬가지로 이번 평가전에 결장한 포르투갈의 데쿠/호날두/나니 같은 개인능력의 소유자는 그리스에 없다.
개인이 뛰어나지 못함에도 개성이 강한 국민성을 반영, 협동/조직력과는 거리가 있던 그리스 축구를 변화시킨 것이 바로 오토 레하겔(2001-현재, 독일) 감독이다. 1938년생으로 현역 시절 독일의 로트바이스 에센(1960-63)/헤르타 베를린(리그 53경기 6골, 1963-65)/1.FC카이저슬라우테른(리그 148경기 16골, 1965-72)에서 활약했던 레하겔은 거칠고 냉정한 수비수였고 이는 지도자 성향으로 그대로 반영된다.
1974년부터 독일의 키케르스 오펜바흐(1974-75)/베르더 브레멘(1976, 1981-85)/보루시아 도르트문트(1976-78)/아르미니아 빌레펠트(1978-79)/포르투나 뒤셀도르프(1979-80)/바이에른 뮌헨(1995-96)/카이저슬라우테른(1996-2000)을 지도하며 유럽 컵위너스컵(1993)/독일리그(1988, 1993, 1998)/독일FA컵(1980, 1991, 1994) 우승을 경험한 레하겔은 그리스 감독으로 유로 2004 우승을 하면서 그리스 올해의 인물(2004, 외국인 최초)/독일연방 십자훈장(2005)/<라우로이스 세계스포츠상> 선정 최우수팀(그리스대표팀, 2005)의 영예를 얻으며 독일축구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러나 레하겔의 축구는 현재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각자의 위치에서 팀을 위해 온 힘을 다한다.’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여기에는 자유보다는 통제,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이고 정신력을 강조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는 다재다능한 선수보다 특정 위치에서 잘할 수 있는가를 따진다. 심지어 ‘신체조건이 재능을 능가할 수 있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가령 중앙 수비수/공격수로는 제공권이 우선이다. 특히 중앙 수비에는 최근 보편적인 2명이 아니라 3명을 배치하는 것도 마다치 않으며 신체조건을 더욱 중시한다. 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수비진의 기술부족이나 공수전환의 둔탁함을 만회하고자 90년대 이후 보기 드문 스위퍼/리베로 기용에도 주저함이 없다. 중앙수비수 2명-스위퍼/리베로 1명의 구성은 물론이고 80년대 이전의 방식인 중앙수비수 3명-스위퍼/리베로 1명을 현대축구에서 구사하는 것이 바로 레하겔이다.
제공권이 좋은 중앙공격수를 활용하고자 측면공격을 장려한다. 측면 돌파-크로스-중앙 공격수로 이어지는 고전적이나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레하겔의 축구다. 이를 극대화하고자 기초를 강조하고 부분/세부전술로 선수를 통제하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팀을 위해 온 힘을 다한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레하겔이 경험을 중시하고 심지어는 전성기가 지난 선수의 부활에 능한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그럼에도, 연령을 불문하고 재능은 있으나 무명인 선수 발굴에도 뛰어나다. 그러나 겉으로는 상반된 듯한 이러한 재주도 현대축구에선 빛을 보기 어려운 단순능력의 소유자도 중용될 수 있는 레하겔의 철학과 연관되는 것이다.
팀을 통제하려면 클럽/대표팀 소유주/축구협회/정부기관의 외압에 단호한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최근에는 레하겔과 조제 모리뉴(전 FC포르투/첼시FC 감독)를 비교하곤 한다. 그러나 레하겔/모리뉴의 축구가 시대착오적/최첨단이란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 것이 재밌다. 레하겔이 “성공과 상관없이 난 언제나 축구의 이단자다.”라고 공언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레하겔이 오기 전 그리스대표팀은 역대 최저인 세계 66위(1998년 9월), 61위(2001년 9월)로 추락하며 막다른 처지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2월부터 올라있는 세계 10위라는 위치는 단연 역대 최고다. 2002/2006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가 아쉽긴 하지만 기안나코풀로스가 “레하겔은 현 대표팀을 그리스 역대 최고로 만들었다.”라고 호평한 것도 당연하다.
포르투갈전 승리로 유로 2008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은 선수뿐이 아니다. 레하겔은 “(우리 역시) 포르투갈전에서 유로 2008 본선을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실험을 했었다. 대회 전까지 핵심 수비수 트라이아노스 델라스(AEK아테네)의 부상이 완치되고 다른 이들이 건강을 유지하길 바란다.”라며 여유를 보였다. 포르투갈이 핵심 선수가 빠져 완벽한 전력이 아녔다는 말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유로 2004의 아픔에 이어 평가전에도 패하여 약이 오를 만도 한 포르투갈대표팀의 명장 루이스 스콜라리(2002월드컵 우승/유로 2004 2위/2006월드컵 4위)도 “이번 경기에서 그리스는 우리보다 뛰어났다. 점유율은 대등했지만 프리킥 2골이란 매우 효율적인 득점이 승패를 갈랐다.”라며 패배를 인정했다.
만회골을 넣은 고메스도 “우리는 전반전, 그리스를 통제하지 못했다. 그리스는 경험이 풍부하고 주요위치에 백전노장들이 있어 경기를 조정한다. 물론 직접프리킥으로 2골을 넣은 것은 다분히 행운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한대로 경기를 못한 것도 사실이다. 패배를 교훈 삼아 본선을 준비해야 한다.”라며 감독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리스는 5월, 유로 2008 예선 탈락팀인 키프로스(63위)/헝가리(51위)와 평가전으로 몸을 푼 후 6월 10일부터 스웨덴(24위)/러시아(21위)/에스파냐(4위)를 상대로 16강 조별리그를 갖는다. 이미 유로 2004에서 러시아/에스파냐와 한 조에 속했던 것도 내심 이번 대회 호성적을 기대하는 이유다. 그리스엔 상대적으로 껄끄러운 스웨덴/러시아전이 준준결승행의 변수가 될 것이다. 유로 2004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1-2 승)/에스파냐(1-1 무)에 1승 1무를 거둔 후 3차전에서 러시아에 2-1로 패한 것이 좋은 예다.
강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