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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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칼럼] '행복한 스케이터' 김연아

기사입력 2008.03.22 13:12 / 기사수정 2008.03.22 13:12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뜨거운 관심을 모은 김연아의 세계선수권 출전은 3위 입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여전히 뒤끝이 좋지 않습니다. 세계 각지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일관성 없는 심판 진들의 채점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지속적으로 다시 봐도 PCS에서 그 정도의 점수가 나온 것은 여전히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정석적인 점프를 구사하는 김연아에게 오히려 가산점이 그리 추가되지 않은 점과 그에 비해 성장은 했지만 아직까지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 은메달리스트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에게 주어진 PCS와 가산점은 다른 선수들의 점수와 비교해 봤을 때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한, 1위를 기록한 아사다 마오(일본)의 PCS에도 의문점은 많습니다. 비록 트리플 악셀 실수 이후에 나름대로 빼어난 연기를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도약 에지와 여전히 규정에 어긋난 착지 등은 미진해 보였고 새로운 규정이 제법 원칙적으로 매겨졌던 작년과는 달리 일관성이 없는 이번 대회의 채점 방식은 2008 세계선수권 대회의 큰 오점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김연아도 그렇지만 이렇게 원칙적이지 못하고 일관성도 없는 채점 때문에 당황한 선수들과 코치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물론 김연아도 스스로 이번 대회에서 채점이 예상보다 너무 낮게 나온 것에 대해 당황했다고 밝혔지만 크게 연연하지 않은 모습은 여전히 그녀다웠습니다.

그동안 김연아에게 있어 항상 넘어야 할 가장 큰 적은 아사다 마오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녀 스스로의 일관된 발언을 통해서도 나타났지만 마오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발언한 적은 없었습니다. 물론 외부의 경쟁 선수들은 언제나 눈에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경쟁자들이 얼마나 발전했고 새로운 테크닉을 정착했으며 현재의 몸 상태가 어떠한지는 반드시 신경 써야할 부분입니다.

그러나 피겨스케이팅의 특성은 철저하게 상대를 분석해서 들어가 그 상대방을 물리치는 전형적인 대결구도의 스포츠가 아닙니다. 넓은 빙판 위에서 2분, 혹은 5분 가까이 동안 자신이 준비해갔던 연기와 기술을 실수 없이 펼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김연아는 타고난 피겨스케이터답게 이런 종목의 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피겨선수에게 있어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 해야 할 것을 스스로 못하겠다고 발버둥치는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을 김연아는 늘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피겨의 이해도와 지금까지 싸워 이겨온 자기 자신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는 이번 심판들의 채점에 있어서도 그녀는 결코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행복한 스케이터'가 되기 위한 조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연아는 대회에 참가할 때, 항상 우승을 하겠다는 말보다는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겠다는 말을 남기게 많습니다. 그리고 우승을 이룩한 후에도 꼭 1등을 해서 좋다는 소감보다는 오늘 펼친 연기 자체가 맘에 들었다는 성숙한 말을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비해 늘 성숙하고 겸손한 김연아의 이러한 발언은 사전 교육이나 인터뷰용 발언으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꼭 1등을 하고 싶어서 피겨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마오를 이기려고 피겨를 하는 것도 아닌, 그저 피겨를 즐겁게 하려는 바램이 크다는 그녀의 발언은 진정으로 그녀가 빙판 위에 서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김연아는 이번 쇼트프로그램을 앞두고선 기자들에게 ‘실수를 하더라도 비난보다는 성원을 부탁드리고 저도 최대한 실수를 안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스포츠 선수들이 자신감을 당당히 표출하는 방식은 그저 ‘반드시 승리하겠다.’ 혹은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그녀의 말은 다른 선수들의 발언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결코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자기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코, 감당하기 쉬운 통증이 아닌 고관절 부상을 안고 대회에 참가한데다가 대회를 앞두고 2주간 쉰 것은 거의 대회 입상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여기에 피겨 선수들을 위한 변변찮은 전용링크마저 없어서 일반 대중들을 위해 영업하는 놀이공원 링크에서 한정된 시간 동안 훈련해야 하는 고충을 겪었습니다.

아무리 세계신기록 보유자이고 그랑프리 파이널대회 2연패의 세계 챔피언이라지만 이런 악조건 속에서 3위권 내의 입상을 바라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김연아가 이겼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줬던 김연아의 연기는 현재의 상태에서 그녀가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였습니다. 만약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채점이 이루어졌다면 김연아가 세계선수권자로 등극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겠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이미 김연아는 세계선수권에 참가한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김연아의 전담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와 안무가인 데이비드 윌슨은 한결같이 김연아를 ‘행복한 스케이터’로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김연아가 스스로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은 바로 그동안 수차례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면서 얻은 스케이터로서의 행복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김연아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더 창창한 선수입니다.

그리고 이번 세계선수권 대회는 지나쳐간 정거장 중 몸소 깨달은 경험의 장이었습니다. 그녀가 프리스케이팅에서 연기한 ‘미스 사이공’은 평소보다 다소 힘은 떨어져 보였지만 잔잔하게 울리는 감동은 어느 대회보다도 더 했습니다.

 



조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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