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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윤원일, ’완전한 성공’을 꿈꾸며

기사입력 2007.05.15 16:12 / 기사수정 2007.05.15 16:12

이상규 기자



엑스포츠뉴스는 '예.스.(예비스타) 인터뷰'와 함께 [Yes,K리거]를 통해 매주 화요일마다 내일의 슈퍼스타를 꿈꾸는 선수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엑스포츠뉴스=이상규 기자] '성공의 끈, 놓치지 않았다.'

인천의 풀백 윤원일(24)은 포철공고를 중퇴하고 FC쾰른(독일)에서 축구 유학을 했던 특이한 경력을 지녔다. 하지만 권집(전북)과 더불어 독일 유학파 출신 선수였다는 것은 축구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K리그에 처음으로 발을 내딘 팀은 다름 아닌 '수원'이었다.

때는 2003년 7월 수원과 안양(현 FC서울)의 2군 경기가 벌어진 날이었다. 그라운드 바깥 구석에서 몸을 푸는 선수들 중에서 삭발 머리를 했던 앳된 유망주가 한 명 있었다. 그 영건이 바로 윤원일이었다.

윤원일은 2002년 수원에 입단했으나 그저 오랫동안 철저한 2군 선수로만 머물렀다. 그리고 2군서도 종종 후반 막판 투입되었지만 별다른 활약 없이 경기를 마쳤을 뿐, 인상깊은 활약을 심어주지 못했다. 때문에 수원 1군 경기는 물론, 단 1초라도 K리그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듬해 대구로 이적하면서 수원에서 초라하게 느껴지던 자신의 입지가 180도 달라졌다.

윤원일은 2004년 4월 24일 인천전에서 교체 투입된 지 3분 만에 골을 넣더니 나중에는 1도움까지 추가해 팀의 5:0 승리를 이끌면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상대팀은 공교롭게도 자신의 현 소속팀인 인천.

대구에서 주전 자리를 꿰찬 윤원일은 왼쪽 윙어를 맡아 빠른 발을 이용한 거침없는 측면 침투로 상대팀 진영을 파고들었고, 그 해 23경기에 출전해 K리그의 떠오르는 별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힘들게 얻은 자리인 만큼, 더 잘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앞섰을까. 이듬해 그의 움직임은 어딘가 많이 흐트러졌고, 이는 부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그는 다시 6경기 출전에 그쳤다.

그곳이 수원이었다면 다시 2군행을 통보받으면 그만이었지만, 시민구단 대구는 그를 무리해서 붙잡을 여력이 안됐다. 결국, 그에게 찾아온 것은 방출 통보의 아픔뿐이었다.

그런 윤원일을 받아준 팀이 평소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장외룡 감독의 인천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는 인천에서 그는 재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래서 지난해  다시 18경기에 출전해  K리그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장외룡 감독이 잠시 해외 연수를 떠난 올 시즌. 인천의 임시 사령탑 박이천 감독 대행이 지휘봉을 잡자 윤원일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인천의 포백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팀의 오른쪽 풀백 자리에서 상대팀의 공세를 철저히 봉쇄하는 수비력에, 측면에서 빠른 공격력을 갖춘 윤원일이 바로 적격이던 셈. 결국, 그는 올 시즌에는 벌써 15경기에 출전해 오랜 목표였던 붙박이 주전을 굳히는 데 성공했고, 묵묵히 제 기량을 발휘하여 팀의 하우젠컵 A조 2위 도약을 공헌하고 있다.

윤원일은 한때 삭발 헤어스타일과 앳된 모습이 눈에 띄었던 2군 선수였으나 지금은 이렇듯 20대 중반의 프로축구 선수로 훌쩍 성장했다.

'극과 극'을 오가며 전형적인 '반짝 선수'로 팬들에게 잊힐 뻔했지만,  그는 이제 인천에서  K리그에서의 '완전한 성공'을 꿈꾸고 있다.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많은 축구팬에게 알려지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오랜 2군 생활, 그리고 방출의 아픔.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멋진 선수다. 윤원일의 활약을 주목해보자.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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