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배우 박해일은 눈빛 하나만으로도 관객을 스크린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2000년 연극 '청춘예찬' 으로 데뷔 이후 16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과 악, 강약을 오가는 넓은 스펙트럼의 연기는 '국화꽃 향기'(2003), '질투는 나의 힘'(2003), '살인의 추억'(2003), '연애의 목적'(2005), '괴물'(2006), '최종병기 활'(2011), '은교'(2012) 등 셀 수 없는 그의 대표작들 속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끝없이 변주해왔다.
그가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로 다시 관객 앞에 나섰다. 일본으로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에서 박해일은 덕혜옹주를 고국으로 데려가려는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으로 분했다.
▲ "'덕혜옹주', 그 시대의 발자취를 다시 살필 수 있는 작품"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은 실제와 영화적인 설정이 더해진 복합적인 캐릭터다. 타이틀롤인 덕혜옹주를 배우 손예진이 연기한 가운데, 박해일은 극 속에서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덕혜옹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김장한 역을 통해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덕혜옹주'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박해일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했던 2008년 출연작 '모던보이'를 언급하며 "이 시대에 좀 더 진중하게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허진호 감독님의 제안을 받았다. 김장한이라는 캐릭터 안에 서사가 있지 않나. 장르도 마찬가지고, 그 인물이 갖고 있는 나이 대에서 나오는 풍부한 감정들을 그동안 제가 해 왔던 필모(그래피) 속 노하우들과 잘 녹여내서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전했다.
영화 속에서 극을 이끌어가는 김장한은 어린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아역 이효재, 여회현과 함께 타이틀롤 덕혜옹주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원래 옹주님보다 주변이 바쁘지 않냐"고 너스레를 떤 박해일은 "김장한이라는 캐릭터만 놓고 얘기했을 때, (이효재, 여회현 두 친구가) 포문을 잘 열어줬던 것 같다. 실제 이효재 군이 촬영할 때는 제가 현장에 직접 있었는데, '잘 해보자'고 악수도 하고 날씨가 추워서 담요도 깔아주고 했었다. 잘 해내더라"고 웃었다.
이어 "그래서 김장한 캐릭터를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숙제가 생겼던 것 같다. 덕혜옹주가 영화적인 인물이라고 한다면, 김장한은 내레이션 같은 것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덕혜옹주를 조명하는 역할이라고 본다. 원래 고종이 김장한과 덕혜옹주를 약혼시키려 하지 않았나. 그게 김장한에게는 어떤 동력이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끝까지 덕혜옹주를 귀국시키려고 했던 힘이 아닐까. 또 독립군 역할이다 보니 덕혜옹주와 상황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잘 이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은 감독님과 얘기하면서 살을 붙이고, 캐릭터를 확장시켜 나갔다. 영친왕 망명작전이라는 이야기가 생긴 것도 영화적인 스케일을 감안해서 그렇게 만들어졌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부드러움과 결연함을 겸비한 그만의 고유한 눈빛은 어린 시절 이후 덕혜옹주와 다시 재회하고, 함께 하는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덕혜옹주를 향한 애틋하면서도 절제된 김장한의 면면은 처음으로 연기했다는 군인 역할과 함께 그에게도, 보는 이들에게도 새롭게 다가갔다.
"군인을 연기해 본 건 처음인데…"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 박해일은 "덕혜옹주 앞에서도 사심을 절제해야 하는데, 절도 있는 이런 모습은 군인을 연기하면서 처음 가져가 본 것 같다. 또 안내상, 정상훈, 고수, 김대명 씨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들의 작전을 진행하는 그런 드라마도 처음이었으니 남달랐다. 역사적인 시대와 맞붙어 있는 상황이다 보니까, 그 때 상황들을 다시 한 번 어림잡아 느껴보고 생각할 수 있어서 제게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덕혜옹주'를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손예진과 정상훈 등 동료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과 아낌없는 칭찬도 더해졌다.
촬영 내내 덕혜옹주 캐릭터에 몰입해 있었던 손예진을 떠올린 박해일은 "스태프들과 농담도 하고 그러다가도 촬영이 시작되면 무섭게 집중하더라. 집중과 릴랙스를 반복하면서 감정을 쏟아내는데, 제가 덕혜왕자였으면 저도 빠져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또 정상훈에 대해서는 "정상훈이라는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저라면 감정이 잘 안 나왔을 상황인데도, 정말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고 덧붙였다.
박해일은 "덕혜옹주를 본 것을 계기로 아마 그 시대의 발자취를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덕혜옹주'는 그런 의미가 있을 작품이 아닐까"라고 작품의 의미를 정리했다.
▲ "아직은 영화에 집중하고 싶어"…박해일의 시선
'덕혜옹주'는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터널'과 더불어 올 여름 4대 기대작으로 꼽혔던 작품 중 하나다. 박해일도 '덕혜옹주' 간담회 등을 통해 "오랜만에 여름 영화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2014년 개봉한 '나의 독재자'와 '제보자' 이후 지난 해 박해일의 모습은 '경주', '필름시대사랑' 등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덕혜옹주'는 박해일의 스크린 컴백은 물론, 블록버스터급 장르의 영화들이 주목받는 여름 시장에서 잔잔한 울림을 주는 스토리로 출사표를 던져 더욱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박해일은 "사실 '여름시장에 나오는 영화는 어떤 영화여야 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커피 말고도 과일주스, 녹차, 한방차 같은 것들이 있는 것처럼 여러 방향들이 한 데 묶여서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더 좋지 않나 생각한다. 다양성이라는 표현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풍의 영화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에서 말씀드린 것이고, 그런 면에서 '덕혜옹주'가 그런 지점에 있는 것 같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소견이다"라고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작품 사이의 공백기를 떠올리며 "시간이 좀 필요했었다. 그런 도중에 '필름시대사랑' 같은 작품을 했었던 것이다"라고 설명한 박해일은 "좋은 블록버스터의 제안이 들어온다면 분명히 할 생각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연극으로 데뷔 후 줄곧 영화에만 출연해 온 그이기에 브라운관을 통해 그의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은 것이 팬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박해일은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도 기회가 닿으면 할 수 있고, 연극 무대에 설 날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영화를 하고 있다 보니, 좀 더 이 방향을 갖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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