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신태성 기자] 드디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이뤄졌다. 3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서 토트넘 홋스퍼가 첼시를 상대로 승점 3점을 얻지 못하면서 레스터는 자동적으로 창단 132년 만에 첫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돌풍이라고도 하고, 기적이라고도 부른다. 레스터의 기막힌 우승 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레스터가 프리미어리그 정상에 오르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자.
모든 일은 비차이로부터 시작됐다
지금의 레스터를 만든 사람은 비차이 스리바다나프라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국 면세점 기업 ‘킹파워’의 회장인 비차이는 2010년 10월 당시 잉글랜드 2부 리그 챔피언십에 있던 레스터를 사들였다. 비차이는 부임 직후 1승2무6패로 리그 최하위에 머물러있던 레스터에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다. 우선 파울로 소우사 감독을 성적 부진의 이유로 경질하고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 스벤 고란 에릭손을 그 자리에 앉혔다.
에릭손은 레스터를 리그 10위로 올려놓고 다음 시즌 팀을 떠났고, 후임 감독으로 2010년 여름까지 팀을 지휘했던 나이젤 피어슨이 돌아온다. 피어슨은 2012~2013시즌 레스터를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진출시키지만 왓포드에 무릎 꿇으며 프리미어리그 입성을 다음 시즌으로 미뤘다.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레스터의 2013~2014시즌 성적은 1위, 승점은 102점이다. 레스터는 승격 첫 시즌 14위로 잔류에 성공하고, 2015~2016 클라우디오 라니에리를 새 사령탑에 임명한 뒤 우승에 이르렀다.
비차이 하면 선수 영입도 빼놓을 수 없다. 부임 첫 해 전 잉글랜드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다리우스 바셀을 자유 계약으로 영입하고, 첼시의 제프리 브루마와 파트리크 판 안홀트를 임대해왔다. 2년차 여름에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카스퍼 슈마이켈, 잉글랜드 국가대표 출신 데이비드 누젠트와 폴 콘체스키, 가나의 베테랑 수비수 존 판트실을 영입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지금의 핵심 자원인 대니 드링크워터와 웨스 모건을 데려왔고, 2012~2013시즌 개막 전 레스터는 7부 리그 플랫우드 타운에서 제이미 바디를 영입한다. 겨울에는 맨유의 제시 린가드를 단기로, 토트넘 홋스퍼의 해리 케인을 시즌 끝날 때까지 임대해 전력을 강화했다. 이번 시즌 득점왕 경쟁을 펼치고 있는 바디와 케인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레스터의 마법사’로 사랑받고 있는 리야드 마레즈는 2014년 1월, 레스터에 도착했다. 프리미어리그 입성 후 마크 올브라이튼, 레오나르도 우조아, 대니 심슨, 로베르트 후트, 그리고 모두를 놀라게 한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레스터 행이 결정된다.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는 크리스티안 푸흐스, 은골로 캉테, 괴칸 인러 등을 선수단에 추가했고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로 마인츠05의 오카자키 신지를 데려왔다.
비차이는 기업가의 수완으로 갖가지 마케팅도 벌였다. 경기장을 찾는 관중에게 무료로 맥주와 도넛을 제공하는가 하면, 리그 순위에 따른 성과금을 지급하기로 해 선수단의 동기부여를 유도했다. 이러한 노력과 레스터의 선전 덕분에 비차이의 고향 태국에서는 레스터의 유니폼이 없어서 못 팔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유니폼 판매 기록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차이는 2016 잉글랜드프로축구협회(PFA) 시상식에 헬기를 보내는 퍼포먼스로 인기를 더했다. 레스터의 이번 우승 파티는 비차이의 지원 아래 라스베가스에서 성대하게 치러질 전망이다.
레스터, 더 큰 목표를 바라보다
비차이 구단주의 업적은 선수 영입뿐만이 아니었다. 2부 리그에 있던 2011년 여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마요르카,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 등 유명 팀들과 친선 경기를 가지며 나중에 있을 큰 무대를 준비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레스터는 강팀들과의 경기로 좁은 울타리 너머 더 높은 곳을 꿈꾸게 됐다.
프리미어리그 경험이 많은 데이비드 누젠트와 명실상부한 스타플레이어 에스테반 캄비아소는 레스터 발전에 기반을 닦은 인물들이다. 누젠트는 이적 후 두 시즌 동안 팀 내 최다 득점자로 등극하며 레스터의 승격을 이끌었고, 캄비아소는 승격 첫 해 ‘레스터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등 핵심적인 역할로 팀의 강등을 막았다. 두 선수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는 레스터 선수단 전원에게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게 했다.
‘미생’들의 집합소, 레스터
레스터에 모인 선수들은 사실 성공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레스터의 골키퍼 슈마이켈은 맨체스터 시티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피터 슈마이켈의 아들로 유명세를 탔던 카스퍼 슈마이켈은 맨시티의 ‘No.1’ 자리를 조 하트에게 빼앗기고 한동안 프리미어리그 무대와 멀어졌다. 노츠 카운티, 리즈 유나이티드를 전전하며 하부 리그 생활을 이어갔던 슈마이켈은 2011년 레스터와 계약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슈마이켈은 챔피언십에서 전 경기 출장하며 레스터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기여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슈마이켈은 주전으로 활약해 결국 우승팀의 수문장이 됐다.
심슨과 드링크워터도 성공한 선수는 아니었다. 맨유의 유소년 팀에서 자란 둘은 1군에서 자리를 잡는 데 실패했다. 긴 임대생 세월을 지나 드링크워터는 2012년, 심슨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퀸스 파크 레인저스를 거친 뒤 2014년에 레스터에 합류했다. 이들은 레스터에서 팀의 중추로 발돋움해 이번 시즌 친정팀 맨유와 경기를 마지막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국가대표와 무관했던 프랑스 리게1 중위권 팀의 캉테도, 첼시에서 실패를 맛보고 그저 그런 선수로 살아가던 후트도 모두 ‘미생’들이었다.
레스터 시티? 그거 럭비 팀 아니야?
레스터의 ‘에이스’ 바디와 마레즈는 얼마 전까지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특히 ‘주포’ 바디의 이야기는 아주 유명하다. ‘공장에서 일하던 8부 리거’에서 국가대표에 승선하기까지 바디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레스터에서도 1선과 2선 사이에 위치했던 피어슨 감독 시절과 달리 최전방 공격수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경쟁을 펼친 이번 시즌은 바디의 주가를 치솟게 만들었다. 바디의 인생역전 이야기는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이정도로 설명하고 넘어가도록 한다.
마레즈는 ‘2016 P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현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다. 그러한 마레즈의 레스터 입단 과정에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 프랑스 2부 리그 리게2 소속 르 아브르에서 뛰던 마레즈는 2013~2014시즌 팀의 승격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2014년 겨울 레스터는 마레즈에게 관심을 나타냈다. 마레즈는 당시 챔피언십에 있던 레스터 시티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마레즈는 잉글랜드 축구 전문지 ‘포포투’와 인터뷰에서 “레스터 시티가 나에게 관심 있다고 해서 나는 왜 럭비팀이 나를 부르나 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레스터 시티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레스터에는 ‘레스터 타이거스’라는 이름의 럭비 팀이 존재한다. 얼핏 들으면 웃기지만 그만큼 레스터의 인지도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픈 해프닝이기도 하다. 그런 굴욕적인 순간들을 거쳤기에 지금의 레스터와 마레즈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인종차별 논란, 극과 극의 결과
레스터는 최근 인종차별과 연관된 적이 두 번 있다. 하나는 나이젤 피어슨 감독과 관련돼있다. 2015~2016시즌을 준비하며 레스터는 구단주의 고향 태국 투어에 나섰다. 문제는 투어 도중 발생했다. 투어 기간 중 레스터의 선수 아담 스미스, 톰 하퍼, 제임스 피어슨이 현지 매춘부를 불러들였을 때 찍힌 동영상이 유출된 것이다. ‘섹스 스캔들’만 해도 골치 아픈데 더 큰 일이 있었다. 해당 동영상에서 제임스 피어슨이 매춘부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제임스 피어슨은 나이젤 피어슨 감독의 아들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레스터는 세 선수들을 방출했고, 곧이어 나이젤 피어슨 감독과도 결별했다. 레스터 구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나이젤 피어슨의 사임은 구단 미래에 대한 시각 차이 때문”이라고 발표했지만, 피어슨 부자가 구단주의 신경을 건드리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의 시각이었다.
또 다른 인종차별 논란은 제이미 바디가 주인공이었다. 바디는 2015년 7월 잉글랜드 언론 ‘더선’이 게재한 동영상에 등장해 어떤 카지노에서 한 동양인에게 ‘JAP’이라는 단어를 세 번에 걸쳐 외치고 욕도 퍼부었다. ‘JAP’은 ‘Japanese(일본인)’와 ‘Ape(원숭이)’의 뜻을 포함하는 단어로, 일본인을 비하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디의 인종차별 동영상은 당연히 구설에 올랐고 바디는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그러나 피어슨 부자와 달리 바디는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바디는 공식 성명을 통해 “내가 저지른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한다. 엄청나게 후회했고 나에 대한 실망으로 잠도 이룰 수 없었다”라고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당시 레스터로 갓 이적해온 일본인 오카자키 신지에 대해서도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직접 그 친구를 만나 내가 바보 같고 멍청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서로 대화한 뒤 악수로 화해했다”라고 말했다. 오카자키 역시 레스터 지역지 ‘레스터 머큐리’에서 “바디는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 이 사건은 여기서 끝내고 축구에 집중하고 싶다”라고 인터뷰하며 대인배의 면모를 보였다.
같은 잘못이었지만 결과는 상반되게 나타났다. 피어슨 부자는 자신의 잘못에도 큰 뉘우침 없이 태도를 유지했다. 그로 인해 팀에서 떠나게 되면서 레스터의 이번 시즌 영광을 함께하지 못했다. 바디는 빠르게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이미 경기장 외 난투극으로 전자 발찌를 착용한 전과도 있던 터라 여론의 용서를 받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심어린 사과에는 힘이 있었다. 결국 오카자키가 인종차별 피해자들의 대표로 용서하며 바디는 이번 시즌 레스터 우승의 주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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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