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박상진 기자] 스포츠에서 기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스타리그 골든 마우스도, GSL 임재덕 상도, 롤챔스 KDA 수상도 모두 선수들이 걸어온 중요한 기록이라 이를 기념하는 것이다. 기록은 그 종목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은 여러 가지가 있다. 훌륭한 업적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고, 연패 기록 같이 역사로서 의미는 있지만 기록 당하는 입장에서 기분 좋지 않은 기록도 있다. 한편, 성적 고하와 관계없이 가치 있는 기록도 있다.
올해 9년 차 프로게이머가 된 어윤수는 기념비적인, 하지만 그 누구도 쉽게 깰 수 없는 기록을 가진 선수다. 어윤수 자신도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버지에게 최정상을 찍지 못해도 선수 생활을 길게 하라는 덕담 아닌 덕담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자신이 희대의 기록 보유자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윤수의 아버지도 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걸 아쉬워하신다고 하지만, 어윤수 자신은 굵고 긴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윤수는 e스포츠, 아니 모든 스포츠 종목을 포함해도 다시는 나오기 힘든 기록의 소유자다. 바로 동일 리그 4연속 준우승. 2013년 GSL 시즌3에서 백동준, 2014년 GSL 시즌1에서 주성욱, 시즌2에서 같은 팀의 김도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4년 GSL 시즌3에서는 역시 같은 팀의 이신형에게 결승전에서 패배하며 4연속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쉬움이 많은 기억이지만 어윤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낸 결과에 후회는 없다는 듯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2008년 SKT에 입단한 어윤수에게 브루드워 당시 저그전의 달인이던 이재호를 잡아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말했다. 연승을 달리고 있는 이재호를 잡으면서 자신의 알릴 수 있었다고. 하지만 브루드워에서는 4강밖에 오르지 못해 스타크래프트2로 넘어온 게 자신에게 큰 전환점이자 기회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어윤수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의였기에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 변경을 하는 동안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에만 해도 승부욕이 강했던 어윤수는 이미 스타크래프트2를 하던 선수들에과 실력 차이를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그 과정에서 연습 중 상대 선수에게 채팅으로 욕을 한 일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며 곤란를 겪기도 했다.
이때 이야기가 나오자 어윤수는 멋쩍은 듯 웃었다. “아…(웃음) 아…(웃음)… 으하하하. 그때는 어렸어요. 요즘에도 가끔 불 끄고 누우면 생각이 나는데, 그때마다 정말 이불을 걷어차요. 제가 잘못한 거에요. 그래도 변명을 좀 해보자면, 그 시기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특히 자유의 날개는 한 판을 지더라도 정말 화가 나던 시스템이었고, 아무도 모를 줄 알고 게임 내에서 욕을 했는데 다들 알아보셨더라고요.”
어윤수는 그 사건 이후 커뮤니티에서 나온 많은 비난에 은퇴를 생각하기도 했다.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고. 하지만 룸메이트였던 김택용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는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로 했다. 당시 김택용은 어윤수에게 “욕을 많이 먹어봤는데, 그래도 아무렇지 않더라”는 조언을 했고, 어윤수는 김택용의 이야기를 듣고는 부처님처럼 다 받아들이니 아무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임 내에서 욕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오히려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것.
“프로게이머에게 승부욕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고, 지면 화가 나는 거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걸 잘못 풀어냈던 나쁜 예가 바로 저였고요. 화가 나더라도 바로 표출하지 말고 다른 쪽으로 잘 푸는 게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종목을 불문하고 지금 프로게이머이거나, 혹은 프로게이머가 되려는 후배들에게 어윤수가 전하는 이야기였다.
스타크래프트2가 자유의 날개에서 군단의 심장으로 바뀌며 어윤수에게도 드디어 전성기가 찾아왔다. 군단의 심장은 쉴 새 없이 생산하며 전투를 해야 했고, 이러한 플레이 방식가 잘 맞던 어윤수는 군단의 심장 세 번째 시즌 결국 결승에 올랐다. 자유의 날개 시절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밤늦게까지 연습한 결과가 드디어 나오기 시작한 것.
상대는 소울 프로토스 백동준. 4강에서 김민철을 꺾으며 자신감에 차 있었고, 상대인 백동준은 긴장을 많이 할 거로 생각했던 어윤수는 오히려 긴장을 안 했다고 말했다. 방송이나 다른 곳에서 어윤수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프로토스의 벽을 넘지 못한 어윤수는 아쉽게도 준우승에 머물렀다.
kt 프로토스인 주성욱을 만난 2014년 결승까지도 어윤수는 결승에서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킹슬레이어이자 SKT의 재앙이라고 불린 주성욱을 상대로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준비해간 어윤수였지만, 결국 풀 세트 접전 끝에 주성욱에게 패배하며 다시 한 번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어윤수는 2014년 GSL 시즌 2에서 다시 한 번 결승에 올랐다. 이번에는 같은 팀 선수인 김도우였다. 어윤수는 김도우와 벌였던 결승이 가장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결승 직전 벌어진 프로리그에 김도우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어윤수는 출전해야 했고, 그래서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가 감독이라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거에요. 우리는 개인 리그보다 프로리그를 우선해야 하고, 그 상황에서 제가 필요했으니 프로리그에 나가는 게 맞죠. 머리로는 납득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런 상황. 지금은 괜찮지만 당시 그런 상황에서 결승에 나섰으니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았어요. 흔히들 보시는 제가 낙담한 사진도 그때 사진이었고요. 그 아쉬움때문에 은퇴를 정말 심각히 생각했는데, 언젠가 제가 어느 대회에서라도 우승하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갔어요”
세 번 준우승을 한 어윤수는 오히려 네 번째 결승은 가벼운 마음이었다고. 준우승 네 번을 통해 어윤수는 상금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우승이라는 명예를 얻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팬이 생겼고, 많은 관심을 가져주는 팬들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2014년 마지막에 벌어진 드림핵에서도 삼성 강민수에게 패배하며 어윤수에게 아쉬움이 가득했다면, 2015년은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온 어윤수에게 우승이 찾아온 해였다. 케스파 컵 시즌2와 프로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케스파 컵을 우승한 어윤수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팀원들에게 미안함이 들었다고 말했다.
어윤수는 케스파 컵을 우승했지만, 팀원인 박령우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며 자신을 꺾고 우승한 김도우와 이신형의 입장이 되어 보니 그들의 입장이 이해 갔다는 것.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우승을 차지한 케스파 컵은 계속 기억난다는 게 어윤수의 이야기다.
14년 준우승을 차지하며 자신에게 더욱 마음의 부담을 지운 프로리그에서도 SKT가 2015년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 결승에서는 다른 팀원의 패배가 자신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2015년 리빌딩 이후에는 팀원의 승패가 마치 자기의 일 처럼 느껴질 정도로 똘똘 뭉친 SKT는 프로리그에서 우승했다. 이 우승으로 어윤수는 마음의 부담 하나를 더 덜어낼 수 있었다.
2016년 역시 어윤수의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부담이 사라졌다. 첫 스타리그에서 팀 동료인 박령우가 우승을 차지한 것. 2008년 입단 당시부터 어윤수를 따라다니던 ‘T1 저그’라는 타이틀의 부정적인 의미를 박령우가 바꾼 사건이었다. 박령우의 결승을 앞두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T1 저그’라는 꼬리표가 자신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느꼈지만, 그런 이미지를 한 번에 날려버린 박령우의 우승이 어윤수에게는 마치 자신의 우승처럼 기뻤다. 인터뷰에서도 어윤수 자신 때문에 팀이 준우승한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박령우의 이야기에도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2016년 개인 리그에서 어윤수는 GSL 16강이 가장 높은 성적이었다. 윤영서와 자신이 조가 바뀌며 죽음의 조인 B조에 들어갔고, 그러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 “2014년 블리즈컨에서도 윤영서 선수가 자기는 은퇴할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다녀서 저도 마음을 좀 놓았는데, 그것부터 전략이었던 거죠. 그때도 윤영서 선수에게 탈락했고, 이번 조지명식에서도 윤영서 선수의 판짜기에 제가 말려들었던 걸 보면서 밉다는 생각보다는 정말 머리가 좋다고 감탄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리그 내에서도 주목을 받은 어윤수지만, 리그 외적으로도 어윤수는 관심을 받았다. GSL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문규리 아나운서와 인터뷰를 많이 진행한 선수가 어윤수. 처음에는 연예인이 여기 왜 있느냐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검색까지 해 봤던 어윤수지만, 친절하게 잘 대해주는 문규리 아나운서 덕분에 자신도 더 많은 주목을 받아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여전히 좋은 성적을 내는 어윤수였지만, 2016년은 다른 의미로 주목받았다. 어연시(어윤수 연애 시뮬레이션)에 얼떨결에 출연하며 팬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은 것. 어윤수가 개인적인 일로 외출을 한 사이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예능 프로그램 제의가 왔고, 최연성 감독이 연습실에 있던 선수들에게 출연 의사를 물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리고 연습실에 없던 어윤수가 출연자로 확정됐고, 어윤수도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응했다고.
처음에는 간단한 방송이라는 이야기에 알겠다고 하고 나갔는데 점점 스케일이 커지더니 긴 시간 촬영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연애 해본 적은 있지만, 프로의 마음으로 열심히 촬영에 임한 방송이 어윤수가 있던 프로리그 쉬는 시간 넥슨 아레나의 큰 스크린에 재생되자 어윤수는 부스 내로 바로 도망갔다.
“그거 원래 프로리그에서는 안 튼다고 했는데(웃음). 제 얼굴이 보이자 바로 부스로 도망갔어요. 영상이 나오는 동안 부스에 숨어 있었는데, 나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죠. 부스에서 나가니까 넥슨 아레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절 바라보는 거 같더라고요. 다음에는 어느 선수가 출연할지는 미정인 거로 알고 있는데, 촬영도 촬영이지만 촬영 후에도 얼굴에 철판을 까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8년간의 프로게이머 생활에서 자신의 라이벌에 어울리는 선수에 대해서도 어윤수는 주저하다가 kt 롤스터의 주성욱을 꼽았다. 케스파 컵 우승만큼이나 어윤수의 기억에 남는순간이 주성욱과 벌인 결승이었다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참 (주)성욱이와 많이 만나서 저는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욱이가 저번 인터뷰에서 저를 라이벌로 언급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인터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라이벌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 성욱이 이야기를 안하려고 했죠. 근데 성욱이를 빼니 달리 라이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자존심이 상하지만 제 프로게이머 생활의 라이벌은 성욱이라고 이야기 해야 할 거 같아요(웃음).”
이어 자신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조중혁은 스타리그에서 두 번 연속 준우승을, 박령우는 스타리그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이전에 준우승을 계속 차지했고 다른 팀인 CJ 한지원 역시 단기간 준우승 3번이라는 기록아닌 기록을 세웠다.
“(박)령우는 팀에 오래 있는 선수인데, 저한테는 소중한 동생이죠. 말도 잘듣고, 행동도 잘하고. 하지만 다른 것 보다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해요. 저도 연습을 많이 하던 편이었지만, 령우도 만만찮았죠. 우승할만한 선수에요. (조)중혁이는 작년 팀에 합류한 이후 바로 저를 이어 준우승을 이어가더라고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관심을 갖고 친해졌는데, 활발한 성격이에요. 예전 인터뷰에서 연습을 좀 하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 때문에 연습 안 하는 이미지가 박혀서 미안하더라고요. 사실 중혁이 연습 많이 하는 선수에요(웃음).”
각종 커뮤니티에서 가끔 나오는 이야기인 한지원과의 비교에 대해서도 어윤수는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준우승을 여러 번 하며 힘들어 하는 선수를 보면 가족 같아서 감싸주고 싶어요. 한지원 선수도 마찬가지고요. 군단의 심장 중반을 장식한 저그가 저라면, 후반을 대표하는 저그는 한지원 선수일 정도로 정말 잘했는데, 결승에 가서 아쉬워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저를 보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죠. 누가 더 대단한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굳이 답을 하자면 1년을 넘은 제가 더 대단한 거 같아요(웃음).”
어윤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두 가지 인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많이 부족한 선수이지만 오래 저를 응원해주신 팬이나 최근 응원해주시는 팬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못할 때 비난하시는 분도 비난이 아니라 저를 생각해주시는 거라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어윤수는 다음 인사를 이어갔다.
“여러 커뮤니티에서 제가 준우승을 한 거로 사진을 올리시거나 여러 단어로 이야기거리를 만드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이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많은 소스를 제공할 테니 그걸로 저를 더 즐겁게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하지만 제 목표는 개인 리그 우승입니다. 많은 분이 제 이야기를 해주시는 게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저를 자극하고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 아직도 게임에 대한 열정이 여전하니, 계속 스타크래프트2를 지켜봐 주시고, 제가 우승하는 모습까지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 어윤수, 저희 팀 SK텔레콤 T1, 그리고 제가 하는 스타크래프트2를 계속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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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