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배우 조재현이 영화 '파리의 한국남자'(감독 전수일)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달 28일 개봉한 '파리의 한국남자'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아내를 찾기 위해 파리로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극 중 조재현은 신혼여행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남자 상호를 연기했다.
드라마와 연극, 또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는 조재현은 '콘돌을 날아간다', '내 안에 우는 바람'에 이어 전수일 감독과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파리의 한국남자'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재현은 촬영 당시 파리에서 노숙을 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런 경험을 언제 해 볼 수 있겠느냐"며 미소를 보였다.
조재현은 "전수일 감독과는 워낙 친분이 두텁다. 이 작품을 같이 하자고 제안이 왔을 때 처음에는 거절을 했는데, 노숙자 경험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묘한 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기자로서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그 역할을 간접적으로 체험했을 때가 아닌가. 프랑스 세느강 곳곳이 내가 누워있던 장소였는데,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영화 출연을 마음먹게 된 계기를 함께 전했다.
'파리의 한국남자'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에서 조재현은 아내를 잃기 전 깔끔했던 과거부터, 덥수룩한 스타일의 현재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아내를 잃은 상호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쉽지 않았다"고 촬영 당시를 회상한 조재현은 "실제 세느강 다리 밑에 누워서 촬영을 했다. 그런데 그 주변에서 지린내가 진동을 하는 거다. 해가 막 뜨는 새벽에 촬영을 해야 할 때는 숙소에서 잠을 자고 나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라 커튼 같은 천을 덮고 바닥에 누워서 두세 시간 눈을 붙이기도 했다. 습기가 올라오긴 했지만 괜찮더라. 돈을 아끼려고 그 곳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도 먹곤 했었다"고 유쾌한 미소로 설명을 더했다.
촬영 의상에 얽힌 에피소드도 있다.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옷이었다"고 웃어 보인 조재현은 "실제 노숙자 옷을 구해서 입자고 제안했는데 막상 구해보니까 별로인거다. 그래서 새 옷을 사서 저렴하게 보이려고 엄청 많이 탈색하고 문지르고 했다. 노숙자가 된 이후에는 옷을 한 벌만 입는데, 아마 보통의 상업영화였다면 여분의 옷이 두 세 벌은 더 있었겠지만 여기선 정말 이것 딱 한 벌 뿐이었다"고 말을 이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이어지는 불편할 법한 상황들. 조재현은 "전혀 힘들거나 짜증나지는 않았다. 그건 잘못된 생각 같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은 뒤 "히말라야에 등반을 하러 가서 '이렇게 손이 시린데 왜 난로를 안 갖고 왔어'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애초부터 모든 게 최소한의 인원으로 시작한 상황이었다"라고 강조했다.
'파리의 한국남자'는 많지 않은 대사로도 관객들에게 주인공의 감정과 느낌을 충실히 전달한다. 조재현은 이에 대해 "작가주의 영화는 정확하게 내용을 이해하기보다는 그 상황으로 각자 들어가서 받아들이면 되는 것 같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연기해야겠다'는 것을 정하지 않고, 느낌만 갖고 연기할 때가 많았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었다"고 덧붙였다.
엔딩에 대해서도 조재현은 "정답은 없다"며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엔딩을 던진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것 역시 어떤 것이 맞고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보는 관객들이 느끼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파리의 한국남자'가 수학공식처럼 답이 떨어지는 영화는 아니다"라고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특유의 유연함은 조재현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이어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이에 조재현은 "이 사람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며 "다른 것을 인정해줘야지, 만약 따지고 들려고 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뚜렷한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독립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녹여내며 다양함에 대한 갈증도 함께 녹여냈다. "드라마, 상업영화, 저예산 독립영화를 할 때마다 매번 마음가짐이 다르다"고 말문을 연 조재현은 "드라마나 상업영화의 기자간담회나 인터뷰를 하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그 뜻이 관객들에게 바로 전달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독립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독립영화를 '파도가 치는 바다에 쌓은 모래성 같다'고 표현한 조재현은 "홍보를 해도 관객들에게 전달될 것 같지 않아 안타깝다. 파도 한 번에 사라지거나 무너지는 모래성 같으니 오래 두고 볼 수도 없다. 만약 파도가 치지 않는 양지바른 곳에 모래성을 계속 쌓는다면 많은 분들이 봐주실까"라고 되뇌었다.
그에게 늘 수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연기'라는 존재. 그럼에도 조재현은 그 안에서 항상 자유롭기 위해 매 순간 애쓰고 있다.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유롭고 싶어서 연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어떤 현실 안에 들어가서 딱 갇히게 되면 정말 슬플 것 같다. 난 슬플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 면에서는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운 것 같다"며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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