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드디어 김현수(27)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 신고 선수로 입단해 '타격기계'와 '금강불괴' 그리고 메이저리거가 되기까지 정확히 10년이 걸렸다.
볼티모어는 24일(이하 한국시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김현수와 2년 700만달러(약 82억원) 계약을 맺었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 연습생 신화에서 화수분 야구의 황태자로
김현수는 두산에게 상징적인 의미인 '화수분 야구'의 시발점이었다. 여전히 그의 신고선수 입단 배경을 두고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김현수는 신고선수 신분으로 두산과 계약을 맺어 입단했다. 첫 해였던 2006년에는 단 한 타석만 소화하면서 말 그대로 '맛'만 봤고, 2007년부터 김경문 감독의 신뢰를 받으며 입지를 넓혔다.
두산이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2000년대 후반 '화수분 야구'가 기점이 됐다. 외부 대형 영입 대신 유망주들을 직접 길러내 대비하지 못한 출혈이 생겨도 훌륭히 막아낸다는 전략이었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김현수의 경우 고교 재학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받으며 가능성은 인정받았지만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그러나 프로에서 무섭게 빠른 속도로 적응력을 보이며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자리 잡았다.
▶ 사못쓰? '타격기계' 김현수의 성장
김현수가 사람들의 뇌리에 확실히 각인됐던 시즌은 2008년. 그때 나이 스물한살 때였다. 베이징올림픽 공백이 있었지만 그해 김현수는 126경기를 뛰면서 172안타 9홈런 89타점 타율 3할5푼7리로 타율 1위, 최다 안타 1위, 최다 2루타 1위, 볼넷 1위, 출루율 1위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리고 생애 첫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2008년을 '김현수의 해'로 만들었다.
2008년 활약으로 억대 연봉에 진입한 김현수는 계속해서 승승장구 했다. 2009년부터는 장타력에 공을 들여 홈런 갯수를 20개 이상으로 부쩍 늘렸다. 김현수가 3할을 치지 못한 시즌은 2012년(0.291) 뿐이다. 통산 타율 3할1푼8리 142홈런 771타점 출루율 0.406으로 커리어를 쌓아갔다.
2008년과 2009년, 약속이나 한듯 2년 연속 타율 3할5푼7리를 기록한 김현수에게 팬들은 '사못쓰(사할도 못치는 쓰레기)'라는 별명을 붙였다. 타율 4할은 프로 원년 백인천 이후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어려운 기록이다. 그만큼 김현수에게 3할은 당연시됐고, 4할까지 칠 수 있는 타격 능력을 고려한 애정이 담겨있는 별명이었다.
4할은 달성하지 못했어도 김현수의 최대 장점은 꾸준함이었다. 부상도, 결장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두산은 1년전 겨울 FA를 1년 앞둔 김현수와 2015시즌 연봉 7억 5000만원에 재계약을 마쳤다. 비FA 선수 최고 연봉을 안긴 것은 FA 이적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김현수라는 선수의 상징성도 함께 포함된 것이다.
▶ 국제 대회에서도 강한 심장
김현수의 성인 국가대표팀 첫 경험은 프로에서도 꽃을 피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었다. 한국 대표팀이 드라마틱한 명승부를 매 경기 만들어내며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던 베이징올림픽에서 김현수는 대회 19타수 8안타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21살의 나이로 참가한 올림픽서 병역 면제는 보너스였다.
이후 김현수는 '단골' 국가대표가 된다. 준우승을 차지했던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주축 타자로 나서서 28타수 11안타로 한국 대표팀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남겼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대표팀의 금메달을 견인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3개의 국제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 출전한 프리미어12에서도 대회 전체 MVP를 수상했다. 33타수 11안타 타율 3할3푼3리 13타점으로 대표팀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컨디션이었다.
김현수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급물살을 탄 것도 프리미어12 대회가 결정적이었다.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열리는 국제 대회인만큼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총집결했고, 그중 김현수를 인상적으로 본 구단들이 많았다.
-한국시리즈의 한(恨) 풀고 미국 간다
국제 대회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는 강심장을 지닌 김현수지만, 딱 한가지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바로 한국시리즈와 병살타의 연관 관계였다. 두산이 그간 몇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김현수는 팀의 중심 타자였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 김현수답지 않은 타격으로 물러나면서 팬들도 울고, 김현수도 울었다. 2008년 SK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 끝내기 찬스 상황에서 나온 병살타는 김현수 개인에게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공교롭게도 김현수는 FA전 마지막 해인 2015시즌 드디어 두산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한을 풀게 됐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남아서 계속 우승을 함께하자"고 프로포즈 했지만, 김현수는 이제 두산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채 또다른 꿈의 길을 걷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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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