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30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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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이석훈 감독, 매 순간이 진심이었다 (인터뷰)

기사입력 2016.01.20 07:58 / 기사수정 2016.01.20 08:03


[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흰 종이에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글씨를 눌러쓰는 이석훈 감독의 모습이 눈에 띈다. "왼손잡이냐, 아니면 양손을 다 쓰냐"는 황당할 수 있는 질문에도 그는 "전 왼손만 쓰는데, 황정민 선배님도 왼손잡이고 엄홍길 대장님도 왼손잡이더라. '뭔가 인연이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라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을 건넨다.

이 감독의 말처럼 영화 '히말라야'에서는 인연, 사람의 힘을 유달리 크게 느낄 수 있다. 지난 달 16일 개봉한 '히말라야'는 20일까지 752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히말라야'는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과 명예,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 원정대의 뜨거운 도전을 그린 이야기. 배우 황정민과 정우, 조성하, 김인권, 라미란, 김원해, 이해영, 전배수 등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출연진들이 열연을 펼쳤다.



'히말라야' 개봉을 하루 앞두고 만났던 이 감독은 설렘과 긴장의 줄타기를 하며 두근거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고생하셨다"는 말에 차분한 표정과 여유를 잃지 않으며 "당연히 다 하는 거다. 저야 배우들과 스태프들에 비하면 그래도 가장 편한 사람이지 않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더 고생한 면은 있는데, 좋았다. 남다른 경험을 한 거다"라고 화답한다.

"이 얘기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할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잘 만들려고 고민했고, 마음가짐도 진심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는 이 감독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2014년 11월 22일에 크랭크인을 해서 2015년 5월 2일에 크랭크업을 했다. 후반작업 기간까지 더하면 1년을 '히말라야'와 함께 한 셈인데, 정말 큰 산을 넘은 것 같은 느낌이겠다.

"시나리오 각색 작업부터 해서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까지 계산해보면 20개월 정도가 걸렸다. 이 영화를 만든 것만으로도 '큰 산을 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저희가 목표한 건 관객 분들이 만족할만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80%를 넘었다고 치면 아직 마지막 고비가 남아있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만들어진 산악영화다. 촬영과정을 돌이켜 보면 정말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겸손해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산악영화가 참 만만치 않고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구나'를 느꼈다. 그러면서 또 인생의 수양이 된 것 같다. 정말 좋은 경험이다. 배우들과 스태프들 모두 같이 고생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해야 되겠구나' 싶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어떤 영화를 하게 되든 배우와 스태프가 이렇게 뭉치면 못 할일이 없을 것 같더라. 사실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억지로 하라고 하면 싫고, 하고 싶은 일은 힘들어도 할 수 있는 게 사람이지 않나. 네팔, 히말라야, 몽블랑에서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이번에 저희는 정말로 좋은 화면을 찍어야 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다들 힘들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없던 동지애도 생기는 현장이었을 것 같다. 몸과 마음이 지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정말 거기에선 매 시간이 서로가 서로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었다. 실제로도 우리는 다 한 줄에 묶여서 이동을 했다. 공동 운명체였던 거다. 한 사람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이 잡아줄 수 있는 상황이니까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체력과 정신력 중 굳이 더 힘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정신적인 것이다. 일단 작품의 결과, 흥행에 대해서 확신할 수가 없고, 완성도 면에서도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려운 순간이 계속 온다. 사람들은 보통 감독이 그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감독도 그런 확신은 없다. 다만 어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본인이 고민해왔던 깊이나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판단을 할 뿐이다.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반드시 있어서 그런 게 아닌, 깊은 고민 끝에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이고 또 그런 책임을 지는 자리에 있는 거다."

-불안감,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다만 느낌은 있다. 우리가 옳은 방향으로 가는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 말이다. 그러면서도 하루 내내 정신없이 촬영을 하고 혼자 숙소에 가면 오늘 잘 했는지,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항상 온다. 한국에서 촬영을 할 때는 가족과 같이 있으면서 많이 해소가 된다. 그런데 이번 '히말라야'는 장기간 숙소에서 오래 있고, 해외에서도 혼자 있고 그러니 해소될 틈이 없이 계속 새로운 불안감이 쌓이는 거다. 다행히 가끔 황정민 선배와 저, 다른 스태프들끼리 모여 술 한 잔씩을 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런 시간을 통해 서로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면서 버틸 수 있었다."

-배우, 스태프들과의 유난히 돈독했던 끈끈함이 다시 드러나는 것 같다.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배우, 스태프 분들이 계시기에 저도 많이 의지가 되고, 또 도움을 받길 원한다. 스태프들이 작품에 임하는 순간부터 이 영화가 잘되기를 바라고, 또 감독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지 구현해내려고 열심히 해주시지 않나. 감독이 원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얘기해주면 어떻게든 그걸 해내려는 의지를 다들 갖고 계시기 때문에 일하기가 편했다. 우리나라에 지금까지 산악영화가 없었기 때문에 '히말라야'가 새롭게 개척해서 해 나간 부분도 많았고, 사실 저희도 그러면서 많이 배웠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공부가 많이 됐다."

-'히말라야'는 이미 알려진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어느 부분에 중점을 뒀는지.

"저희가 실존했던 인물과 실존하고 계신 인물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걸 똑같이 묘사할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JFK'(1992·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처럼 실존인물을 다룬 영화에서는 그 인물과 얼마나 비슷하냐가 중요하지만 저희는 그렇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고민했던 것은 관객 분들이 흥미진진하게 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산악인 얘기를 몰라서 낯설어하는 게 아닌, 우리 곁에 있는 친근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많은 유머를 집어넣으려고 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캐릭터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박무택(정우 분), 엄홍길(황정민) 캐릭터가 너무 무겁지 않고 사람냄새 나는 것처럼 보이면서 틈틈이 코믹할 수 있게 유머를 집어넣으려고 했다."

-극 초반 박무택과 박정복(김인권)이 엄홍길 대장과 함께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 등에서 그려진 부분들이 감독님의 유머코드가 구현된 장면들인 것인가.

"각색하면서 추가된 신들이 있다. 어떻게든지 좀 더 사람냄새 나고, 재밌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한 장면들이었다. 저마다의 방식이 있지만 저는 제가 조금 자신 있는 부분이 코믹함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실화의 감동을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해 낼지도 고민이었을 것 같다.

"후반부에서는 감동을 드려야 되는데, 많이 알려진 실화다 보니 그걸 그대로 봤을 때는 관객 분들이 감동을 느낄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조금 더 다른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조금 더 그들의 속마음으로 들어가 보자'고 생각했다. 실제로 엄홍길 대장이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찾고 그 시신을 끝까지 데리고 내려오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고 중간에 무덤을 만들어서 내려오는데, 사실 그 때 엄홍길 대장이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잘 모르지 않나. 하지만 분명 어떻게든 내려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영화적으로 여백을 채워보자고 생각했고, 실화에 설명이 안 돼 있는 부분을 만들다 보니 수영이(정유미)처럼 미망인 캐릭터가 베이스캠프에 오게 되는 장면이 나온 것이다."

-극 중 엄홍길 대장이 박무택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에서의 정우 씨는 2천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들여 정교하게 만든 더미였다. 실제 정우 씨의 얼굴을 본떠서 피부색깔, 주름, 눈썹, 털까지 섬세하게 작업을 했다. 그 외에 박무택의 시신을 끌고 내려오는 장면에서는 이것보다는 덜 정교하게 만든 더미를 썼다. 덜 정교하게 만든 더미는 몽블랑까지 가져가서 촬영을 했었다. 그런데 정교하게 만든 더미는 외국에 데리고 나가려고 하면 조금 문제가 생겼을 거다. 너무 정교해서 사람 시신처럼 오해받을 수 있다 보니까.(웃음) 실제로도 그 장면은 정우 씨가 분장을 하는 것과 더미를 사용하는 방법을 두고 많이 고민했는데, 살아있는 사람에게 가만히 죽어있는 모습을 연기하라고 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교하게 더미를 만들어서 배우들이 진짜 정우 씨처럼 느끼며 연기를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CG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7대3 정도로 CG가 훨씬 많다. CG가 잘 합성되려면 CG팀이 잘 합성할 수 있게 촬영장에서 잘 찍어줘야 된다. 결과물이 잘 나온 것은 CG가 잘 해준 부분이 크다. 그래서 특히 심혈을 기울인 건 특수효과였다. 현장에서 바람이라든지, 날리는 눈을 잘 해야 CG랑 만났을 때 현장감이 생긴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반경 몇 십 미터에 눈이 실제로 있어야 되고, 지형이 다 갖춰져 있어야 된다. 바람과 눈을 다 뿌리면서 촬영한 거고, 합성할 때만 그린스크린을 설치해서 작업했다. 평평한 곳에 그린 스크린을 설치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비탈진 곳에서 배우는 산중턱에 있고, 그 곳까지 그 큰 그린 스크린을 설치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큰 크레인에 그린 스크린을 달아서 뻗어서 대고, 또 그게 흔들흔들하니까 붙잡고 있는 사람만 열 명이 넘고. 이런 식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칸첸중가에서 비박을 하는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 대원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장면도 CG의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엄홍길 대장님을 만나서 칸첸중가에서 비박한 얘기를 실제로 들었었다. 그 어떤 영웅담보다 흥미진진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게 해가 떠오르는 그 순간이었다. '내가 죽었구나' 싶은데 해에서 오는 그 열기가 느껴질 때의 환희, 그런 것을 영화에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공이 해가 떠오를 때 환희를 느끼는 순간에 관객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장면을 만들었다."

-김인권이 연기한 박정복 캐릭터도 실존 인물 故 백준호 대원을 바탕으로 했다. 엄홍길 대장, 박무택 못지않게 눈길이 가는 인물이었다.

"저도 수많은 책을 보면서 그 분에 대해서 언급된 부분을 봤는데 정말 와 닿더라. 보통 엄홍길 대장, 박무택 대원만 많이 주목하지만 책에서도 이 인물이 상당히 훌륭한 인물이라고 묘사하는 걸 봤다. 그래서 저도 이 영화에서 이 부분을 똑같이 언급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엄홍길 대장이 강연하는 장면을 추가로 넣은 거다. 관객들이 의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박정복의 위대한 등반'이라고 얘기를 해놓는다면 이 영화의 후반부에 감정이 잘 잡혀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전작 '해적:바다로 간 산적'(2014)이 크게 성공하면서 차기작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높아졌다.

"항상 잘되길 바란다. 그런데 '히말라야'는 좀 더 다른 의미가 크다. 뭔가 '우리가 해냈다'는 그런 느낌은 있다. 스태프와 배우들까지 그런 공감대는 형성돼있는데, 다만 '조금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한다. '해적'을 866만 명의 관객이 봤다. '그것보다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런 건 아니고, 그 때의 기쁨을 다시 느꼈으면 좋겠다는 그 정도다. 구체적인 수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면 좋겠고.(웃음) 다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계속해서 전작의 이름들이 거론되고, 또 비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묻고 싶다.

"이번에는 그런 게 느껴지더라. 오히려 '해적' 때는 '기대 안했는데 생각보다 재밌네' 이런 반응을 얻으면서 덕을 본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런데 지금은 ''해적'이 잘 됐는데, 저 사람 다음 작품도 잘 하나 보자' 이런 시선이 있는 것 같아서 분명히 부담스러운 점은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기대를 해준다고 하니 그건 또 좋아할만한 상황인거다. 그걸 만족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또 열심히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니까. 그래서 전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느꼈다."

-앞서 말한 것처럼 2년에 가까운 시간을 '히말라야'와 함께 했다. 2015년이 유독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 같은데.

"2014년 말 촬영 중에, 배우 분들과 모여서 술을 마시면서 2015년 신년 소망을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저는 그때 영화가 여름에 개봉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번 겨울에는 영화가 잘돼서 가족들과 함께 두 달 정도 여행을 가고 싶다고 얘길 했었다. 그런데 개봉이 미뤄지면서 무산이 됐다.(웃음) 2015년은 정말로 '히말라야'와 시작과 끝을 함께 한 해였던 거다."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딸에게 유년기의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도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웃음) 사실 '히말라야'를 찍기 전에는 산이라는 단어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존재였다. 딸과 같이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동네 뒷산은 가긴 했지만 그렇게 막 좋아서 즐겨서 가는 사람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딸과 함께 동네 뒷산 정상까지 올라갔었다. 그 전에 집사람과 같이 셋이서 간 적은 있는데, 딸과 단 둘이서 간 건 처음이었다. 시간을 같이 많이 못 보내니까 일부러 그렇게 한 거다. '해적' 속편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 당분간은 쉬면서 여러 가지로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김한준 기자, CJ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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