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김유진 기자] 영화 '사도'가 관객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준익 감독이 있다. '사도'는 영조와 사도세자,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이야기. 9월 16일 개봉 후 순항을 이어가며 6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사도'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이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개봉 전 열린 제작보고회와 언론시사회 등을 통해 "영화에 대한 기대치를 낮춰 달라"고 너스레를 떨던 이 감독은 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리며 "시사회를 하기 전의 여진이 아직도 식지가 않는다"며 여전히 떨리는 마음을 드러냈다.
▲ "'사도', 관객의 상처 치유할 수 있는 작품 되길"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많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이야기다. 이 감독은 '사도'를 "심리와 감정으로 이어진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영조(송강호 분)와 사도세자(유아인), 정조(소지섭)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56년간의 역사가 두 시간에 압축돼 스크린에 담겨졌다. 시작부터 강렬함과 웅장함을 내뿜는 '사도'는 125분의 러닝타임 내내 쉴 틈 없는 감정의 흐름을 이어가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 감독은 처음부터 '사도' 이외에 다른 제목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사도'라는 제목이 관객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대상으로 그 가치를 부여 받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사도가 뒤주에 갇혀 죽기까지 8일간의 이야기가 '사도' 흐름의 중심축이다. 시간 순서로 나열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한 이야기이기에, 이 감독은 8일이라는 시간을 8개의 시퀀스로 나누고 그 사이사이에 과거의 이야기를 넣는 구성을 취했다.
영화는 '왜 영조는 자기의 아들을 뒤주 안에 가둬 굶겨 죽였을까, 그리고 그 후에 왜 이율배반적으로 '너를 생각하며 슬퍼한다'는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을까'라는 이 감독의 궁금증과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이 감독은 "흔히 사람들은 '사도의 불행은 비극이다'라는 결말을 놓고 사도라는 말을 단정지어버린다. 사도가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어느 순간 무언가가 엇나간 이유, 사도의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영조라는 사람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에 대한 과정을 영화 속에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영조가 처해 있던 왕으로서의 정치적인 입장에 대한 곤란함, 다음 세대에 대한 불안함, 과거의 자신에 대한 불만 등 복잡했던 감정의 표현은 송강호라는 배우에 의해 섬세하게 다듬어졌다. 사도세자 역시 온전히 그 감정에 집중하고 몰입한 유아인의 연기에 의해 관객들에게 더욱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었다.
'사도'는 송강호 뿐만이 아닌 유아인, 문근영, 김해숙, 전혜진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 이 감독은 "이렇게 (배우들이) 자리매김이 된 것은 예측도, 상상도 안 된다"며 "촬영 현장에서도 특별히 디렉션을 내린 것이 없었다"고 배우들의 호연에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 "결말, 불행과 비극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사도'는 큰 기교 없이 묵직하고 우직하게 흘러간다. 여기에는 작품을 일정한 톤으로 끌고 가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 쓴 이 감독의 노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감독은 "굳이 디렉션을 한다면 특정 장면 한 두개에서 그렇게 하고, 톤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데 신경을 쓰는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배우는 자기가 나오는 신의 톤은 건너 건너 조율을 하지만 자기가 나오지 않는, 다음 신의 다른 배우가 나오는 신을 설계할 수는 없지 않나. 배우가 갖고 있는 역할의 한정성이라든가 다른 배우가 나오는 그 다음 신의 톤은 배우가 설계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걸 책임져야 하는 것이 감독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이 생각하는 감독과 배우간의 신뢰 문제 역시 이런 흐름과 이어져있다.
이 감독은 "배우들은 '내가 나오는 신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지만 내가 나오지 않는, 다른 배우가 나오는 신은 감독님이 책임지십시오'라고 나에게 의무를 주는 거다. 그럼 나는 '네가 나오지 않는 그 다음 신, 네가 나오지 않았던 그 전 신에 대해 이렇게 책임을 져왔으니 네가 나오는 그 신에선 이런 톤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하고 의견을 준다. 거기서 배우가 '맞다'고 설득이 되면 그대로 가는 거고, '감독님 말하는 게 앞뒤가 안 맞네'란 생각이 들면 의심이 생기면서 그렇게 믿음이 깨지는 거다. 그럼 일정한 톤의 영화가 나올 수 없다"며 감독으로 가지는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사도'는 이처럼 250년 전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이는 이야기에 90%의 사실과 10%의 상상력을 더한 이 감독의 표현이 합쳐지며 완성됐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사도세자가 그린 용 그림으로 만들어진 부채가 극 중에서는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이 부채는 정조에게 전해지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 감독은 "사도의 행복했던 순간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도가 28년 살아있는 내내 비극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손이 태어났을 때 사도는 누구보다 기뻐했었다. 뒤주 안에서 부채에 자신의 소변을 받아먹은 사도세자가 부채 속 그림을 보며 오열하는 모습이 나온 뒤 정조가 태어나는 장면이 도치법으로 그려진다. 가장 큰 행복은 가장 큰 비극과 맞닿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행복과 불행이 종잇장 하나 차이로, 부채 하나 사이로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상상력을 더한 사연을 전했다.
사도세자는 결국 자신의 아들인 정조에게 불행과 비극을 이어줬지만, 정조는 이를 배움으로 승화시켰고 결국 이는 아버지의 불행이 아들에게 원동력을 주는 메시지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이 감독의 선택에 의한 결정이었고, 결과이다.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온,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인 그이지만 "관객들이 아쉬워한다면 그건 내 불찰이 큰 것이다"라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결말 부분에 대해서도 "사랑이 없이 어떻게 미움이 있겠나. 불행과 비극으로 영화를 끝내는 것이 아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업을 복으로 정화시키고 승화시키고 끝내고 싶은 것이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사도'는 이 감독의 진가를 재확인시켜 준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호평 받으며 순항 중이다. 최근에는 11월 12일 개막을 앞둔 제35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초청받으며 세계의 팬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사도'를 통해 10년 전 대한민국에 사극 열풍을 몰고 왔던 그의 작품 '왕의 남자' 역시 끊임없이 함께 회자되고 있다. 지나온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 감독에게도 기쁘고, 아프고, 또 고민해야 했던 수많은 일들이 자리했었다. 적어도 지금의 '사도'는, 그 동안 이 감독의 시간이 채워준 선물 같은 존재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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