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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진의 e스토리] '극복', 이승원 해설이 스타크래프트2와 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기사입력 2015.09.08 04:53 / 기사수정 2015.09.08 04:53

박상진 기자


[엑스포츠뉴스=박상진 기자] 2012년 1월 31일. e스포츠 팬이라면 잊기 힘든 날이다. 10년을 넘어 20년이 되어가는 e스포츠 역사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저 날 만큼 충격적인 날도 없을 것이다. 2012년 1월 31일은 온게임넷(현 OGN)과 양대 e스포츠 방송사였던 MBC 게임이 폐국된 날이었다. '아듀! MBC 게임' 방송이 끝나며 MBC 게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MSL을 위시한 e스포츠 리그와 스타 무한도전으로 대표되던 e스포츠 예능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MBC 게임에 소속된 중계진들도 흩어져 각자 갈 길을 걷게 되었다. MBC 게임의 대표 해설가였던 이승원 해설 역시 폐국 이후 온게임넷으로 옮겨 프로리그를 진행했고, 이후 스포티비 게임즈로 자리를 옮겨 도타2 리그와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스타크래프트2 스타리그를 창설하고 성승헌 캐스터와 고인규 해설, 그리고 이승원 해설이 중계진으로 합류한다는 소식에 많은 e스포츠 팬들이 환호했고, 지금까지 세 시즌이 진행된 스타리그는 GSL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크래프트2 리그로 자리잡았다.

MBC 게임 폐국 이후 스타크래프트 개인 리그 해설 자리를 떠난 후 약 4년 만에 다시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 리그로 돌아온 이승원 해설. 최근 이승원 해설은 선수의 내면까지 비춰내는 해설을 들려주며 전성기의 해설 기량을 회복한 모습을 보였다.

그간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서 한 걸음 떨어져 지내다 다시 돌아온 이승원 해설은 그간 어떻게 지내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까.


작년 말 스포티비 게임즈를 통해 스타크래프트2 스타리그로 오랜만에 개인 리그에 복귀했다.

스타리그 시즌 1과 2를 담당한 전덕규 PD와 친한 사이였다. 과거 MBC 게임 시절부터 알던 사이인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스타크래프트2로 개인 리그를 개최하려 하는데 같이 방송을 하자고 제안했다.

내가 개인 리그를 마지막으로 방송한 게 2011년이었다. 지금은 문을 닫은 방송사에서 MSL 예선전까지 진행한 후 온게임넷으로 옮겨 프로리그를 진행했다. 당시에도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와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를 병행하던 시절 중계를 맡아 반쪽짜리 경험을 하긴 했어도 내겐 스타크래프트2는 새로운 게임이었다.

제안을 받고 한동안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익숙한 스텝들과 같이 방송하면 잘할 수 있을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고인규, 그리고 성승헌과 스타리그를 같이 중계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인규는 스타크래프트2 중계를 오랫동안 했기에 스타크래프트2에 대해서는 나에게 선배나 다름없었고, 워낙 게임을 잘 알기에 게임 내적인 측면의 부담은 덜했다. 그리고 승헌이도 온게임넷 프로리그 시절부터 호흡을 맞춰온 친구라 마음이 편했다.



도타2 방송이 스포티비 게임즈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로 알고 있는데, 도타2가 아닌 스타크래프트2를 중계하게 되니 기분이 어땠는가.

어떻게 되든 나는 전략 시뮬레이션 중계를 하게 될 운명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스타크래프트2가 처음 나왔을 때, 그리고 해설 제안을 받기 전까지 스타크래프트2와 나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MBC 게임에서도 스타크래프트2는 한 적이 없었고,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중계를 맡지 못했었다. 그러니 스타크래프트2는 나와 인연이 없는 게임이라는 생각이었다. 

고민 끝에 중계 제의를 승낙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스타크래프트2 플레이도 했지만, 브루드 워 때처럼 경기 중계를 많이 봤다. 그리고 선수들이 플레이할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 팬들 입장에선 어떤 느낌일지 생각하고 기억을 했다.

게임 안에서의 기술 쪽 해설은 인규가 잘하니 나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잡아내서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이 유닛을 사용하는 선수의 심리는 이렇고, 이게 성공하면 큰 틀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거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해설과 스타크래프트2 군단의 심장을 모두 중계했는데, 해설가로서 어떤 차이를 느끼는가.

이 둘은 내 입장에선 완전 다른 게임이다. 이기는 방식과 유닛도 분명히 다르다. 브루드 워는 내 인생을 바친 게임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 내적이나 외적, 혹은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잡아내어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군단의 심장을 처음 중계할 시기에는 자신감보다 걱정이 앞섰다.

내가 중계를 쉬는 동안 스타크래프트2에서 데뷔한 선수를 중계한 적이 있다. 그 선수의 스타일이나 장점, 그리고 단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중계를 하며 내가 스타크래프트 2에 너무 늦게 들어왔구나 하며 막막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브루드 워 시절에도 초반에 비슷한 문제로 고민했었지만 결국 시간이 걸려도 팬들에게 인정받았던 경험이 있기에 군단의 심장으로 중계하는 지금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최근 선수들의 내면 심리까지 읽어내는 해설로 팬들이 '역시 이승원 해설이다'라는 칭찬을 한다.

종목을 불문하고 오랜 세월 해설을 하면서 정말 많은 선수를 만났고, 선수들의 중계를 전달하다 보니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이 어떤 생각일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그 경기를 보는 관객의 심정도 느껴졌다.

왜냐면 나는 어떤 해설가보다 관객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그 상황에 존재하는 것들을 그 상황에 어울리는 표현으로 실체화해서 드러내는 것도 해설의 영역이라고 본다.

e스포츠 선수들, 그리고 팬과 오랫동안 만나고 중계하는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생긴 유대감 덕분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2011년 마지막 개인 리그 중계 이후 2015년 스타리그를 통해 다시 만난 선수의 반응은 어떻던가.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해 준 선수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브루드 워 시절 한 주에 몇 번이고 본 사람이 어느 날 화면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는데 많은 선수가 반가워해 줬다. 그러고 첫 방송 시작 전 중계석에 앉으니 여기가 내가 앉아있던 자리고, 지금 앉아있어야 하는 자리고, 앞으로도 앉아 있을 자리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내가 알던 선수, 그리고 모르던 선수를 중계로 만났다. 새로 알게 된 선수 중 SK텔레콤 T1 테란 조중혁이 인상 깊었다. 조중혁은 은퇴의 기로에서 새로운 팀으로 옮겨 준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했다. 만약 은퇴했으면 그저 그런 테란으로 기억됐겠지만, 그 과정을 극복하고 모두가 기억할 선수가 되었다. 나 역시 스타리그 중계 초반 어려움을 느낄 때 조중혁을 보면서 에너지를 얻었다. 플레이 스타일도 재미있는 선수다.

스타리그 중계를 시작하고 만난 선수 중 한지원이 활약하는 것을 보고 나도 기뻤다. 브루드 워 시절 프로리그에서 한지원의 경기를 몇 경기 중계하면서 알게 된 선수다. 한지원이 스타크래프트2로 종목을 바꾸면서 많은 마음고생을 했다. 재능도 있고 잘하는 선수지만 마음이 여리고 걱정이 많은 선수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마음도 강해지며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면서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게임을 포기할까, 팀을 옮길까 고민하던 시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선수가 힘든 상황을 극복하고 준우승까지 차지한 걸 보니 대견했다.



브루드 워부터 군단의 심장까지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이영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평가보다는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이영호를 보니 내 모습이 비치더라. 이영호, 그리고 내가 활약하던 브루드 워 시절과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상황이 너무나도 크게 변해버렸고, 낙차 폭이 커서 이영호가 추스르고 받아들이고 일어서는데 다른 사람보다 오래 걸릴 뿐이라고 생각한다. 공허의 유산에선 어느정도 예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브루드 워 시절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기를 중계하더라도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만족할만한 해설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MBC 게임이 문을 닫고 브루드 워 리그가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게임을 중계하면서, 예전만큼 기회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게임이든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시간이 다른 해설보다 오래 걸리는 타입이라 만족할 만한 해설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2012년 이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와 동시에 해설가로 전성기가 브루드 워와 함께 지났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힘들었고, 해설가로서 경력을 이어가는 게 팬들이나 방송국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최근까지 들었다..

하지만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있어도 나처럼 하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선수와 팬들 옆에서 오래 머무르고 있는 나이든 해설가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계속 해설에 도전할 것이다.


GSL에서 활동하는 박진영 해설이 처음 중계를 준비할 때 이승원 해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했다.

진영이가 처음 해설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연락을 하더라. 프로게이머 출신 해설가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인 게임을 잘 이해하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에 대해 같이 고민했고, 박진영이라는 사람이 따로 갖고 있는 장점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선배가 할 수 있는 조언을 했다.

다른 리그이지만 착실히 사랑받는 해설로 성장하는 진영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기쁨을 느낀다.


역시 선수 출신 해설인 고인규 해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인규 역시 진영이와 마찬가지로 프로게이머 출신이고, 그래서 게임도 잘 안다. 하지만 인규의 장점은 게임을 잘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리그에서 다양한 중계진과 해설을 해도 위화감이 없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본다. 상황을 잘 파악하고 심리적인 장벽을 세우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인규의 장점은 오래 여러 다양한 사람과 일해본 사람이 판단하기에 아주 좋은 방송 재능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스타리그 시즌 3에 들며 담당 PD가 바뀌고 변화가 있었다.

시즌 1과 시즌 2를 담당한 전덕규 PD는 무난하고 안정감 있게 방송을 진행한다. 리그를 시작하고 안정시키는 데 최고의 실력가라 생각한다. 스타리그 해설 초창기에 방송과 리그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때 전덕규 PD가 잘 달래주고 편안하게 해줘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예전부터 같이 일했고, 내 스타일이 어떤지 잘 알고 있고 잘 이해해 준 PD다.

시즌 3 피디인 (김)하늘이는 스타일리시한 PD다.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영상과 리그를 만든다는 모습이 내겐 가장 매력적인 PD다. 스포티비에서 만나기 전 다른 게임을 하다가 우연하게 만났는데, 프로그램을 같이 하지 않을때도 친하게 지내면서 많은 일들을 같이 겪다 보니 그 사람에 대한 신뢰도도 높다.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 전덕규 PD라면, 방송에 다시 재미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 김하늘 PD다. 요즘은 둘이 만나면 스타2가 진짜 재밌는 게임인거 같다고 다시금 감탄하며 지낸다.


그래서인지 최근 브루드 워 시절 해설의 능숙한 해설을 다시 듣는다는 팬들이 많다.

내 해설에 만족하는 날도, 만족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가 들쭉날쭉한데, 이러다가 일정한 만족도를 찾는다. 그때가 돼서야 나 자신도 예전 해설 실력을 찾았다고 느끼고, 팬들의 반응이 과분하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다.

아직은 그 편차가 크고 방송을 더 하면서 평균을 잡아가야 하는 시기인거 같다. 해설은 중계하면서 실력이 늘어간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같은 주 1회 상황이면 정말 쉽지 않은 환경이다. 출전 기회에 따라 성장이 달라지고 성적이 달라지는 게이머와 다르지 않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해설을 했는데,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로 진행된 리그를 지켜보며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많은 리그를 진행하고, 많은 선수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느끼고 말하고 전달하며 얻은 한 가지 단어라면 역시 '극복'이다.

그런 역전의 스토리에서 카타르시스를 많이 느꼈다. 그리고 재 능없는 나 자신이 항상 되뇌이는 말이기도 하다. 모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은 선수를 보며 나도 선수와 같은 벅찬 감정을 느낀다.

1대 1 종목인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서 특히나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매번 좌절하던 선수가 자신의 인내심으로 이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결과를 만들어 가는 스토리에 많은 팬이 아직 스타크래프트를 사랑하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표현하는 단어라면 극복이라는 단어가 드라마틱하게 어울린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시청자들과 이승원 해설의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내 최종 목표는 누구보다 오랫동안 중계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기억에 남는 거다, 그러기 위해 예전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해서 가끔 힘이 부칠때도 있지만,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 오래 머무르면서 세월을 보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이야기가 반드시 있을거 라는 믿음으로 목표를 향해 끝까지 노력하겠다.

다른 사람보다 천천히 깨우치고 따라가는 발걸음은 느리지만, 중계라는 일을 중심으로 시간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든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을 테니 계속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vallen@xportsnews.com

박상진 기자 vallen@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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