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2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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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의 체육시간] 월드컵 16강, 한국 여자축구의 ‘댄스 댄스 댄스’

기사입력 2015.06.13 07:00 / 기사수정 2015.06.18 11:48

이은경 기자


 
 
[엑스포츠뉴스=이은경 기자] 한국 여자축구가 두 번째 도전 만에 월드컵 16강 무대를 밟게 됐다. 스페인의 마지막 슈팅이 크로스바를 강타하면서 짜릿한 16강행이 확정된 순간, 12년 전 미국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이 떠올랐다. 한국 여자축구의 첫 월드컵 도전 무대 말이다.

당시 현장을 취재하면서 느꼈던 건,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한국의 여자 선수들은 5만 여 명이 들어가는 거대한 경기장이 낯설었다. 미국은 급하게 대회를 개최하느라 NFL(미 프로풋볼) 홈경기장을 사용해서 여자월드컵을 치렀다. NFL 경기장의 위압감은, 실업리그조차 변변하지 않았던 한국 선수들에겐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한국 선수들에겐 여자축구 경기에 많은 팬이 찾아와서 응원하는 장면이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미국 대회 평균관중은 2만525명이었다). 덩치 큰 외국 선수들이 탄탄한 기본기와 팀워크로 경기를 하는데, 한국 선수들은 몸이 바짝 경직돼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결과는 3패. 1득점 11실점,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이후 12년이 지났다. 2015년 대회에서 기어이 16강 토너먼트행에 성공한 한국 여자축구는 참 질겼다. 약한 것 같았지만, 절대로 그렇진 않았다. 12년 동안 한국 여자축구는 무엇이 가장 달라졌을까. 일단 2003년에 직접 봤던 미국팀 이야기를 해야 겠다.

2003년 대회에서 미국이 첫 경기를 치른 다음 날, 미국의 전국지 USA투데이는 경기 전날의 미국여자대표팀 이야기를 전했다. 미국팀에는 당시로선 한국 기자들에게도 생소한 ‘심리전담 치료사’가 있었다. 심리치료사는 홈팀으로서 부담이 큰 미국 선수들에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려면, 발 밑을 보지 말고 춤추듯 즐겨라”고 충고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 당일. 미국의 주장 줄리 파우디는 라커룸 칠판에 이렇게 써놓았다.

 
경기장에선 이 세 가지를 명심할 것.
 
Dance.
Dance.
Dance.

 
미국 선수들은 정말 춤을 추듯 경기를 했다. 경기 후에도 춤을 추듯 스포트라이트를 즐겼다.
그때 이 기사를 보면서, 마치 경기에서 막강한 상대에게 대패한 것 같은 좌절감 같은 걸 느꼈다. 우리와 세계 여자축구 강국의 차이가 까마득한 절벽 같아서였다. 한국 선수들이 긴장해서 우왕좌왕할 때, 미국은 ‘춤을 추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한국은 조별리그 첫 경기였던 브라질전(0-2 패)에서 패했고, 두 번째 경기 코스타리카전에서는 막판 통한의 동점골을 내줘 2-2로 비겼다. 아아, 여기까지구나, 생각했을 때 한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스페인을 잡고 16강에 올랐다. 한국 여자축구 선수들이 놀랍게도 벼랑 끝에 몰려 있을 때 나에게 보란 듯이 ‘댄스’를 보여준 것이다.

‘강한 정신력’은 반드시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악물고 뛰는 ‘헝그리 정신’을 뜻하는 건 아니다.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고, 즐기고, 자신이 가진 것을 경기장에서 다 뽑아낼 수 있는 게 진짜 ‘멘탈’이다. 한국 여자축는 18일 스페인전에서,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가진 걸 보여줄 수 있다는 강인함을 증명했다. 한국의 여자 아이들이 16강 이후에도 그라운드에서 웃으며 춤을 추고 돌아오기 바란다.  
 
스포츠팀장  kyong@xportsnews.com 

[사진  AFPBBNews=NEWS1]



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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