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11-0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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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태의 눈] 한국 축구가 대형 공격수를 키우지 못한 이유

기사입력 2015.06.03 07:22 / 기사수정 2015.06.03 07:22

이은경 기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난 1일 축구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대표팀 명단 발표 때마다 나오는 주제가 ‘공격수’다. 한국 축구는 대형 원톱 공격수의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공격수(센터포워드) 자원을 찾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해묵은 주제다. 그리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하고 입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주제다.
 
필자는 지난 18년 여 동안 포천축구센터를 운영하면서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 선수부터 20세 전후의 성인 선수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선수들을 지도했다. 현장에서 느낀 것 중 가장 안타까운 점을 꼽자면, 한국 축구에서는 어린 선수들이 ‘공을 오랜 시간 다룰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공격수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우리 현실에선 어린 선수들도 ‘이기는 축구’가 지상과제다. 최근의 초등학교 리그 경기를 봐도, 우승하는 팀은 선수의 개인기가 아닌 콤비네이션 플레이에 집중한다. 어린 선수들인데도 기술보다 체력 훈련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 중요한 건, 이기는 게 아니라 공과 친해지는 훈련이다. 어린 선수들이 11대 11 경기 보다 4대 4, 혹은 5대 5의 미니 게임을 자주 해야 하는 이유다. 게임 규모가 작아질 수록 공을 갖고 있는 시간, 공을 다루는 시간이 늘어난다. 공과 재미있게 놀아야 한다. 또 어릴 때는 체력보다 개인기 훈련을 더 많이 하는 게 좋다.
 
한국에선 ‘공을 다룰 줄 아는 유소년 선수’만 부족한 게 아니다. 중-고-대학-프로까지 이어지는 시스템 안에서는 ‘신참’이 경기를 뛸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유럽 축구강국의 시스템을 보면, 연령대별로 묶어서 팀을 만든다. 이승우(바르셀로나 유스팀)처럼 특별히 잘 하는 선수들이 ‘월반’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자기보다 나이 많은 선수들과 섞이는 바람에 기회를 빼앗기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한국은 중학교(1, 2, 3학년)-고등학교(1, 2, 3학년)-대학교(1, 2, 3, 4학년)의 시스템이 굳어져 있다. 웬만큼 잘 하는 선수도 1, 2학년 때는 주전을 꿰차기가 어렵다. 최근에 대학축구에서 1, 2학년만 참가하는 대회를 만들긴 했지만, 경기 수가 많지 않다. 제아무리 잘 하는 선수라도 실전에서 뛸 기회가 없으면 실력이 죽는다. 한국의 시스템이 멀쩡한 선수들의 가능성을 짓누르는 셈이다.
 
실전에서 주전으로 뛴다는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훈련 효과가 있는지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겠다. 유명 프로팀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던 스무 살 선수들이 작년에 우리 센터로 왔다. 어릴 때는 유망주 소리를 들었던 선수들이다. 이들에게 하부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센터에서 개인 훈련을 추가로 더 시켰더니 올해는 다른 K리그 팀, 혹은 유럽 하부리그 팀의 주전으로 나갔다.
 
또 한 가지, 한국축구 교육 시스템이 ‘이기는 축구’에만 집착하다가 ‘템포’를 놓쳤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슈틸리케 감독 인터뷰를 보니까 공격수를 뽑는 기준으로 “전방에서 수비에 함께 가담할 수 있는 선수”를 꼽았다고 하더라.
 
이건 단순히 공격수가 수비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공수전환의 속도 문제다. 현대 축구는 스피드다. 공을 잡으면 바로 공격이고, 빼앗기면 바로 수비를 해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한국축구는 유소년 때부터 빠른 공수전환에 익숙하지가 않다. 공격수 대부분이 스피디한 공수전환에 습관이 들지 않은 채 프로 선수가 된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한국 공격수들이 손흥민(레버쿠젠) 정도를 제외하곤 유럽에서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박주영(FC서울)을 보자. 박주영이 공격에서 기술이 없나? 아니다.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공수 전환이 빨라야 한다. 대부분의 선수가 다 그렇다. 박주영의 플레이를 보면, 호흡을 다 가다듬고 힘을 비축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백발백중으로 골을 넣곤 한다. 하지만 빠르게 공수전환이 이어질 때, 호흡이 가쁠 때는 찬스가 와도 놓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비단 박주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시스템 안에서 자란 선수들이 자꾸 이런 문제를 노출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공격수 대부분이 빠른 공수전환에 익숙하지가 않기 때문에 외국의 강팀과 경기할 때는 힘겨워하고, 그래서 자꾸 ‘공격수 가뭄’ 이야기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K리그 빅클럽의 주전 공격수 자리조차 대부분 외국인선수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현실적으로 성인 공격수가 설 자리도 적다. 악순환이 이어지는 구조다.
 
학원스포츠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조심스럽다. 나도 현직 지도자들 앞에서 “아이들이 볼 많이 갖고 놀게 하라. 성적에만 연연하지 말라”는 직언을 할 수가 없다. 성적에 따라 그 사람들의 생업이 걸려있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이런 문제점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이야기하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복잡한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만 늘 안타까운 마음은 나도 어쩔 수가 없기에 평소 생각을 풀어놓았다. 한국축구 시스템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큰 그림을 그리는 축구협회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쳐가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못하면 한국축구가 선진 축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적어진다.
 


 

[사진=슈틸리케 감독 ⓒ 대한축구협회 제공]

 

이은경 기자 kyong@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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