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지난 4년간 오늘만 기다려 왔다' 네덜란드 빙속 대표팀의 '에이스' 스벤 크라머는 이승훈과의 맞대결을 말 그대로 지난 4년간 기다려왔을 것이다.
지난 2010년 동계올림픽이 펼쳐진 캐나다 밴쿠버. 스피드스케이팅 남자부 10,000m 금메달 유력 후보는 단언컨대 스벤 크라머(네덜란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빙속 장거리 세계 랭킹 1위였던 크라머를 견제할 수 있는 후보로는 밥 데용(네덜란드) 정도 뿐이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10,000m는 태어나서 두 번만 완주해봤다"는 쇼트트랙 선수 출신 이승훈(대한항공)이 12분58초55의 올림픽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당시 크라머는 기록상으로는 이승훈보다 4초 빨리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레이스 도중 코치의 실수로 아웃코스를 타야할 차례에 인코스로 진입해 실격처리 됐다.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는 명언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누구도 크라머의 금메달을 의심하지 않았던 경기에서, 그것도 장거리에서 올림픽 메달을 한 차례도 획득하지 못했던 아시아계 선수가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뉴스였다. 크라머는 자신의 실격 사실을 확인한 직후 고글을 집어 던지며 절망스러운 심경을 드러냈다.
그 후로 4년이 흘렀다. 크라머는 여전히 빙속 강국 네덜란드 대표팀의 중심에 선 선수로 실력을 유지해왔고, 이승훈 역시 그를 위협할 수 있는 선수 중 한명이다.
현재 크라머는 10,000m 금메달을 가장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이미 지난 8일에 치른 5000m에서 6분10초76의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출전이 예정되어 있던 1500m 레이스를 기권하며 10,000m 레이스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는 세계 선수권을 '올킬'하며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지만 유독 올림픽 10,000m에서만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도 7위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밴쿠버에서도 올림픽신기록이 예상됐으나 다시 무관에 그치자 소치에서 10,000m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
크라머는 지난해 소치에서 펼쳐진 세계선수권에서 12분59초71로 10,000m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이승훈은 13분14초02로 4위에 올랐다. 크라머의 10,000m 올 시즌 최고 기록은 12분45초09다. 2007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세운 자신의 최고 기록인 12분41초69에는 4초나 뒤지는 기록이지만 여전히 10,000m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질주하는 사나이다.
10,000m 세계 랭킹 3위인 이승훈 역시 차곡차곡 준비를 잘해왔다. 5000m에서 다소 아쉬운 성적표를 받아들였지만, 10,000m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레이스를 펼치기 위해 컨디션 조절에 힘썼다.
설욕을 노리는 크라머가 이승훈을 비롯한 경쟁자들을 뛰어 넘고 '10,000m의 제왕'에 등극할 수 있을까. 세계인의 시선이 그의 발끝을 향해 있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스벤 크라머(위), 이승훈(아래) ⓒ 스벤 크라머 공식 홈페이지,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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