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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서의 삐딱하게] '겨울왕국', 더이상 '왕자의 키스'따윈 필요 없어

기사입력 2014.02.09 02:24 / 기사수정 2014.02.27 16:56

정희서 기자


▲ 겨울왕국

[엑스포츠뉴스=정희서 기자] '겨울왕국'의 흥행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달 16일 개봉한 '겨울왕국'은 8일, 개봉 24일 만에 누적관객수 728만 2756명을 넘어서며 애니메이션 흥행 역사에 신기록을 세웠다. 기존에는 '쿵푸팬더2'(506만 2720명)이 최고 기록이었다. 이런 열기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어서 천만명 돌파도 거뜬할 것으로 보인다. 배경음악인 'Let it go'가 열풍을 일으키는 등 '겨울왕국'의 인기는 가히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하다.

'겨울왕국'이 거둔 성과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주의 상(이미지)'을 바꾸었다는 점이다. 수동적인 공주, 백마탄 왕자와의 운명적인 로맨스, 악역의 설정 등 기존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한계로 지적받던 '클리셰'를 비튼 것이다.

여성들에게 '겨울왕국' 엘사와 안나가 사랑받는 이유는 "Let it go(내버려둬)"라고 외치며 자신을 둘러싼 운명의 굴레를 온몸으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주체가 된 두 공주와 저주에서 스스로 구원하는 엘사의 이야기는 디즈니 공주의 혁명이라 볼 수 있다.


디즈니의 대표작 '백설공주', '인어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은 공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여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디즈니 속 공주들은 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여성으로 그려졌다. 공주들은 사랑의 결실을 맺고 왕자와의 결혼으로 더 나은 계층 상승까지 보상받았다.


일곱 난쟁이의 집에 얹혀살며 왕자의 키스로만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백설공주를 비롯해 왕자의 사랑을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인어공주 등 디즈니 속 공주들은 하나같이 '수동적인 여성상'을 강요했다. 이에 디즈니는 성차별과 인종편견을 주입시킨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있는 사회 현실 속에서 디즈니는 점차 '뮬란', '라푼젤' 등을 통해 시대적 분위기를 탄력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집대성한 작품이 바로 '겨울왕국'이다.



'겨울왕국'은 결국 왕국을 구하는 자가 왕자가 아니라 '여성들'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디즈니의 정형화된 성역할을 깼다. 물론 저주 받은 공주와 그 저주를 푸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틀은 그대로지만 저주를 내린 존재가 악역이 아니란 점 또한 색다르다.

특히 엘사와 안나는 전형적인 공주 캐릭터를 거부했다. '알라딘' 쟈스민 공주는 아버지의 결혼 강요를 거부하며 주체적인 인생을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은 알라딘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안나가 언니 엘사에게 처음 만난 왕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겨울왕국'이 주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방금 만난 남자와는 결혼할 수 없어"라는 대사는 처음 만난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하는 디즈니 공주들의 습성을 정면으로 꼬집었다.



또한 안나는 엘사를 설득하고 왕국을 구하기 위해 '왕자'가 아닌 '얼음장수' 크리스토프와 '함께' 떠난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말을 타고 무작정 떠나버린 안나는 독립적이고 도전적인 현대 여성의 모습을 나타낸다.

심지어 크리스토프는 엘사와 안나의 저주를 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왕자가 키스해서 깨워줄 만큼 사랑받던 공주는 없다. 공주와 왕자의 사랑보다 진취적인 여성들의 연대와 우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보다 "내버려둬"라며 내 인생 내 자신을 사랑하겠노라고 선전포고하는 공주의 모습에 현대 여성들은 더욱 열광한다.

'겨울왕국'을 통한 디즈니의 자기 비틀기에 대해 동의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주재원 교수는 "엘사라는 캐릭터가 공주의 전형성을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은 분명하다.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공주의 미덕이었으며,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권력구조가 당연시 됐다"라고 설명했다.

주 교수는 이어 "엘사가 자신의 저주받은 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있게 'let it go(내버려둬)'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왕자에 의해 삶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공주들과 달리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능동적 공주의 탄생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라고 진단했다.



또한 "'겨울왕국'이 여전히 공주들의 이야기라는 지점에서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소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엘사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새시대의 공주 캐릭터로 인형, 그림책, DVD, 기타 유아용품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디즈니의 전략적 캐릭터 변화였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그것이 OST와 함께 잘 먹혀들었다"라고 '겨울왕국'의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겨울왕국'은 클래식 뮤지컬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한편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진화를 보여줬다. 새로운 디즈니 공주를 탄생시킴으로써 대중들을 다시 디즈니의 마법으로 홀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희서 기자 hee108@xportsnews.com

[사진 = 겨울왕국 스틸컷 ⓒ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정희서 기자 hee108@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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