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안도 미키의 스케이트가 멈췄다.
지난 23일 일본 사이타마의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제 82회 전일본선수권대회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 안도 미키가 주니어 시절부터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곡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에 맞춰 유영하듯 프리스케이팅을 마쳤다.
노래가 끝나고 움직임이 멈췄다. 마지막 무대였다는 사실을 짐작이라도 하듯 안도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어렸다. 그의 한 살배기 딸을 포함한 1만 7000여명의 관중들은 일어서서 박수를 치며 피겨 스타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프리스케이팅 점수는 106.25점. 쇼트프로그램 점수인 64.87점과 더하면 합계 171.12점. 최종 순위는 7위였다. 올림픽 출전권은 종합 3위까지만 주어지기 때문에 안도의 세 번째 올림픽 출전 도전은 물거품이 됐다.
점수가 발표된 직후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는 더 커져 경기장을 가득 메웠고, 사방에서 플래시가 쉴새없이 터졌다. 키스앤크라이존에 자리한 안도는 왈칵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아쉬움보다 기쁨의 눈물이었다.
안도는 "지난 17년 가운데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며 "올림픽 출전보다 그동안 안도 미키라는 스케이터가 얼마나 나답게 살아왔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은퇴 소감을 밝히며 환히 웃었다. 그가 올 시즌 쇼트프로그램 곡으로 선정한 엘비스 프레슬리의 '마이 웨이(My way)' 가사처럼,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던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마지막이 가까워졌네. 난 내 삶의 마지막 장을 마주하고 있지…지금껏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여러 번의 고난을 겪었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는 것…"
일본 피겨계의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가 그렇게 은반을 떠났다.
◆ 혜성처럼 등장한 일본 피겨의 희망
1987년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난 안도 미키는 9살이던 1996년부터 스케이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그녀가 은반 위에서 지냈던 17년의 세월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안도는 15살이던 2002-2003 시즌 주니어그랑프리파이널에서 4회전 점프인 '쿼드러플 살코'를 여자 선수로서 최초 성공하며 대회 3위에 올랐다.
다음 해인 2003-2004 시즌 안도는 주니어그랑프리파이널과 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주니어 시절 목에 건 메달의 갯수만 무려 10개. 일본 국민들은 새로운 피겨 스타의 등장에 열광했다. 안도는 일본 피겨의 희망이자 미래였다.
생애 첫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선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그러나 안도는 메달 획득에 대한 중압감에 시달렸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쿼드러플 살코' 실패와 어깨 부상으로 종합 순위 15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잔인했다. 안도가 올림픽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자 일본의 관심은 '신성' 아사다 마오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안도 보다 3살 어린 마오는 2004-2005 시즌 주니어그랑프리파이널과 주니어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했다. 예상대로 마오의 성장 속도는 무서웠다.
◆ 재기 그리고 위기
안도는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 2009 그랑프리파이널에서 쇼트프로그램 1위, 프리스케이팅 2위로 종합 2위를 차지하며 벤쿠버동계올림픽 출전을 확정 지었지만, 최종 5위에 그쳤다. 올림픽에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는 총점 200점을 돌파하며 금, 은메달을 휩쓸었다. 이즈음 세계 피겨계는 김연아와 마오를 '라이벌' 관계로 형성하며 경쟁을 부추겼다. 안도는 스포트라이트 밖에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세계 신기록 보유자' 김연아를 견제하기 위해 마오가 트리플악셀을 고집하는 한편, 안도는 맞춘 옷처럼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난이도가 낮은 기술을 효과적으로 연기하며 안정적으로 점수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은 안도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올림픽 이후 빠르게 제 기량을 회복했다. 2010-2011시즌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를 1.29점 차로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고, 생애 첫 4대륙 선수권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동시에 4번째로 총점 200점을 넘긴 여성 스케이터로 기록됐다.
안도의 위기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사생활에서 문제가 생겼다. 안도는 2011 세계선수권 우승 직후 니콜라이 모로조프 코치와 결별했다. 호사가들이 두 사람의 결별을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 안도와 모로조프가 한 집에서 동거하며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는 지쳐있었다. 돌연 잠정 은퇴를 선언한 안도는 2012-13 시즌 그랑프리시리즈 참가를 취소했다. 의욕을 불태웠던 세 번째 올림픽 출전도 불투명해졌다.
더욱 놀라운 소식은 올해 7월 일본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졌다. 안도는 현역 복귀 기자 회견 자리에서 최근 딸아이를 출산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열애설이 돌았던 남자 피겨 선수, 모로조프 코치 등 여러 명의 남자들이 거론되며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가'라는 추측성 보도들이 물밀 듯이 쏟아졌지만 그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은 피했다.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지만, 당사자는 의연했다. 안도는 "피겨와 딸 모두 끌어안고 싶다"며 "소치올림픽 출전에 도전한 뒤 명예롭게 은퇴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안도 미키의 마지막 소원
'엄마 스케이터'가 된 안도 미키는 다시 한 번 스케이트 끈을 조여 맸다. 네벨혼트로피대회, 골든스핀오브자그레브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대회에 출전하며 컨디션을 점검했다.
소치 동계올림픽 출전권이 달려있는 일본선수권대회. 대회 직전 안도는 허리 부상으로 연습량이 많지 않아 걱정된다면서도 "우승 밖에 방법이 없다"고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다.
출산 이후 체력과 근력이 많이 떨어진 안도는 잦은 점프 실수를 빚었다. 종합 점수 3위 진입에 실패하며 세 번째 올림픽 출전은 물거품이 됐지만, 스스로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고 표현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대회 후 기쁨과 아쉬움, 후련함과 섭섭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던 안도는 "선수로서 최고의 모습은 아니지만,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린 선수들의 꿈을 위해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제 안도 미키는 17년간 신었던 무거운 스케이트를 벗는다. 사람은 떠난 자리가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옛 말처럼 그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스캔들에 휘청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전보다 단단해졌다. 첫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을 품에 안을 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도 경기장 안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경쟁에 나섰다.
출산 이후 참가하는 대회마다 "대회장에서 나는 어머니가 아니라 선수다. 단지 지금의 내가 최고의 선수들과 같은 링크에서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고 겸손함도 잃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마이 웨이' 자신의 길을 걸었던 안도 미키. 그가 은반 위에 남긴 것은 숫자로 나열하는 기록만이 아니다.
17년동안 숨 가쁘게 달려온 그가 보여줬던 선수로서, 어머니로서의 자세는 국경과 시대, 인종과 지위를 막론하고 깊이 담아둘 만한 본보기로 남았다.
"출산 이후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만끽했다. 덕분에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 강해졌다"는 안도의 수줍은 고백 역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안도 미키 ⓒ 엑스포츠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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