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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스위스 전의 추억

기사입력 2013.11.14 18:16 / 기사수정 2013.11.14 18:16

김덕중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11월 15일 금요일 저녁 8시 상암경기장. 한국 대 스위스의 친선경기가 열린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금년 마지막 홈경기다. 태극전사는 19일엔 UAE로 날아가 러시아와 친선전을 치른다. 금년 시즌 마지막 평가전이다.

한국과 스위스 사이에 벌어진 대표팀 경기는 단 한 번. 2006년 월드컵 본선에서 스위스가 2-0으로 승리한 경기가 유일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인연의 전부일까?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 데뷔전이 열린 곳이 바로 스위스다. 1954년 6월 17일 한국은 취리히에서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와 대결했고 0-9로 대패했다. 전반전 스코어는 0-4, 헝가리는 경기 막바지 15분에 세 골을 몰아치는 등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6월 20일에 열린 한국의 2차전 상대는 터키. 제네바의 4,000여 관중 앞에서 열린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최소관중 경기다. 결과는 한국의 0-7 패배.

2조의 나머지 한 팀은 서독이었지만, 54년 대회규정에 따라 한국은 다음 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2승의 헝가리는 바로 8강에 진출하고 2패로 탈락이 확정된 한국을 제외한 두 팀이 단판 재대결로 준준결승 진출팀을 가리는 방식. 첫 대결에서 터키를 4-1로 꺾은 서독은 재대결에서도 7-2로 득승하며 8강에 올랐다. 이것이 이른바 '스위스 룰'이다. 승자는 승자끼리 대결하고 패자는 패자끼리 대결하도록 한 뒤 각 경기에 가중치를 부여해 순위를 가리는 방식. 복잡하기는 하지만, 토너먼트와 리그전의 장점만을 취한 제도라는 평가도 있다. 이 방식으로 경기하는 대회로는 세계 아마추어 바둑선수권대회가 대표적이다. 54년 월드컵에선 2조 이외에도 4조에서도 플레이오프 경기가 나왔다. 1승1무의 잉글랜드가 8강 직행, 각각 1승1패를 기록한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재대결을 벌인 끝에 4-1로 승리한 스위스가 다음 라운드 진출. 스위스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를 2-1로 물리쳤었다.

두 경기에서 16골이나 내주며 무너졌지만, 스위스 국민들은 한국팀을 배려했다. '전쟁을 겪은 지 얼마 안 되는 나라'의 선수들에게 매일 숙소로 ‘산더미 같은’ 수많은 구호품이 답지했다고 한다. 생각지도 못한 배려요 호의였다.

다음 인연은 1981년이다. 7월 13일부터 26일까지 열렸던 제11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5공화국 최초의 본격적인 스포츠 행사였다. 대한축구협회의 초청장을 받은 스위스는 '일정상 대표팀 파견이 불가능하다'는 양해를 구하고 대타 출전팀을 추천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접경지에 자리한 인구 3만의 소국 리히텐슈타인. 1933년 협회를 창립했고 1974년 FIFA에 가입하기는 했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정식 A매치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들의 역사적인 국가대표팀 첫 경기는 7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몰타 대표팀과의 1-1 무승부다. 대 태국 전 0-2패, 대 우루과이(다누비오 클럽) 0-1패, 대 브라질(비토리오 클럽) 0-2패, 대 인도네시아에 3-2로 승리하며 리히텐슈타인은 원정일정을 모두 마쳤다. 첫 경기와 첫 승을 모두 우리 땅에서 기록한 유럽국가. 한국 원정 이후 리히텐슈타인은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2014년 월드컵 유럽예선 성적은 2무8패 4득점 25실점이다. 홈경기에서 라트비아, 슬로바키아와 각각 1-1로 비겼고, 그리스와는 두 번 다 졌지만 스코어가 0-2. 0-1에 불과했을 만큼 나름대로 선전했다.  

2006년 6월 24일 하노버. 토고에 2-1로 승리하고 프랑스와 1-1로 비긴 한국은 프랑스와 0-0, 토고에 2-0을 기록하며 역시 승점 4점을 챙긴 스위스의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쳤다. 2무의 프랑스가 토고를 이긴다고 보면, 한국 대 스위스 전은 승자는 16강에 오르고 패자는 탈락하는 비정한 한판 승부였다. 비기면 골득실차에 의해 스위스가 16강행. 한국은 이 경기에서 2-0으로 졌다. 스위스의 두 번째 골이 저 유명한 '오프사이드 논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골은 오프사이드가 아니다. 정당한 골이다. 오프사이드 룰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와 변수가 다 들어있는 기가 막힌 샘플이다. 오죽하면 '그때 그 장면'을 FIFA가 국제심판 학습교재로 제작해서 활용하고 있겠는가. 16강에 오른 스위스는 우크라이나와 0-0으로 비긴 후 승부차기에서 0-3으로 졌다. 

대한민국은 런던올림픽에서 스위스를 다시 만났다. 2012년 7월 29일 코벤트리. 2006년 월드컵 대표팀 코치였던 홍명보는 올림픽 팀 감독이 되어 스위스를 상대했다. 2006년 당시 선수였던 박주영이 보은(報恩)의 선제골을 넣었지만 곧바로 동점타를 허용해 전반전 스코어는 1-1. 후반전에 김보경의 환상적인 발리슛이 터지면서 한국은 2-1로 스위스를 잡았다. 스위스는 예선 탈락했고 대한민국은 8강전에서 영국을 잡은 뒤 3-4위전에서 일본을 2-0으로 격파하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인연 이야기를 하나만 더해보자. 작년부터 K리그는 전반기 리그를 치르고 상위팀 하위팀을 갈라 따로 리그를 운영한다. 이른바 스플릿방식이다. 이러한 운영방식의 원조가 스위스리그다. 열두 팀이 홈앤드 어웨이로 22경기를 치른 후 상위 8팀이 챔피언십 리그를, 하위 4팀이 강등탈출 리그를 벌이는 것이 스위스리그의 오랜 전통이다. 한국인 선수가 스위스 리그에서 활약한 경우는 국가대표 수비수인 박주호가 아직까지는 유일한 케이스다. 2013년 7월 현 소속팀인 독일 분데스리가의 FSV 마인츠 05로 이적하기 전까지, 박주호는 스위스 챔피언인 FC 바젤에서 성공적인 두 시즌을 보냈다.

은혜가 되었든 원한이 되었든, 갚을 것은 갚고 가는 것이 인간세상의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논어에 나온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혹왈 이덕보원 하여 자왈 하이보덕 이직보원 이덕보원) 헌문

해석)

"은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무엇으로 은덕을 갚을 것인가? 공정함으로 원망을 갚고 은덕으로 은덕을 갚아야 한다"

우리는 구호품을 보내주던 그대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속이 쓰리지만, 2006년의 패배도 '우리가 졌다'라고 깨끗이 인정한다. 그러니 이번엔 제대로 한 합(合)을 겨뤄보기로 하자. 구호물자를 받던 나라가 이제는 주인이 되어 성대한 잔칫상을 마련해 놓고 진객을 기다린다. 오라, 스위스여 대한민국 상암벌로!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 ⓒ 엑스포츠뉴스 DB]



김덕중 기자 djkim@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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