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7.12 09:25 / 기사수정 2006.07.12 09:25
[엑스포츠뉴스=손병하 기자] 지난 24일 있었던 스위스와의 월드컵 본선 G조 마지막 경기. 후반 31분 터진 스위스 프라이의 골을 놓고, 오프사이드 논쟁이 한참이나 계속 되었었다.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권이 걸려있는 경기였기에 그 파장의 크기는 대단했었다.
헌데, 이 경기를 중계하던 SBS의 신문선 해설위원은 ‘명백한 오프사이드’라고 말했다가 네티즌을 비롯한 여론의 철퇴를 맞으며 월드컵 도중 중계진에서 하차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반면 MBC에서 중계를 했던 차두리 선수는 ‘이건 사기입니다.’라고 말해 편파 판정에 잔뜩 화가 나있던 한국 축구팬들로부터 속 시원하다는 찬사를 들었다. 엇갈린 두 방송사 해설위원의 말 한 마디에 축구팬들이 극과 극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해설자로서의 양심을 버릴 수 없었다는 신문선 위원이나 순수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경기를 해설한 차두리 선수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해설자의 말 한 마디에 경기 전체의 내용이 좌우되는 지금 우리네 축구 중계에 대해서는 한 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해설하지 않는 축구 중계
지난 6월 10일부터 보름 동안 독일에 체류하면서 적지 않은 월드컵 경기를 독일에서 방송되는 TV로 통해 봤다. 헌데 독일의 TV 중계를 보면서 무척이나 따분한 심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캐스터와 해설자가 2인 1조가 되어 쉼 없는 달변을 구사하며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경기를 중계하던 국내 축구 중계에 익숙해져 있던 필자로서는, 차분하다 못해 답답하기까지 한 독일의 축구 중계에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중계 캐스터인지 해설자인지 구분도 없이 등장하는 한 사람의 조용하고 경기 중계 자체를 귀찮아하는 듯한 목소리는, 경기의 전체적인 해설은 고사하고 그저 공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들의 이름만을 가끔 불러줄 뿐이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마켈렐레가 상대의 공을 가로채 지단에게 패스를 하고, 지단은 이 공을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이며 소유하다 공간을 침투하는 앙리에게 그림과 같은 패스를 했다고 치자. 그리고 앙리가 반 박자 빠른 호쾌한 터닝 슈팅으로 마무리해 정말 멋진 득점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하자.
우리나라의 중계진이 이 장면을 해설했더라면, 시청자의 귀는 아마 조금의 쉴 틈도 없이 이들의 현란한 언어구사 능력에 매료되어야 했을 것이다. 헌데, 독일의 월드컵 중계는 너무나도 간단명료했다.
“마켈렐레” “....” “지단” “....” “앙리” “골!!”
장면의 긴장감에 따라 전체적인 톤의 변화만 조금 있을 뿐, 그 어떤 해설이나 수식어도 붙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 말고 경기장 중앙에서 치열한 양 팀의 공방전이 계속되는 장면이 나오면 아예 해설자는 말문을 닫고 침묵해 버린다.
처음 얼마간은 이런 따분한 중계에 답답한 갈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내 그런 조용한 독일 TV의 중계에 매료되어 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경기를 보면 볼수록 내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경기의 실제 상황을, 다른 사람의 감정과 주관이 개입된 해설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눈으로 보는 축구, 귀가 덮어서야...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도 친절한 중계 시스템으로 인하여, 축구의 진짜 매력을 잃고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화면을 통해 보이는 현상들은 모두 사실이지만, 그 사실은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모두 개인의 몫이다. 헌데, 한 사람의 주관적인 해설이 청각을 통해 들어와, 내가 직접 체험한 시각의 사실을 덮어버린다면 우리는 축구를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이 되고 만다.
실제로 이런 우리의 중계 문화는 한 경기에 있어 많은 착오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간혹 TV를 통해 본 사람의 느낌과 현장에서 본 사람의 경기 느낌이 다른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K-리그가 열렸다고 가정해 보자. 그 경기를 현장에서 본 사람들은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박주영의 놀랍고 성실한 움직임에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TV를 통해 중계를 들은 팬들은 골을 넣지 못했다는 이유로 박주영의 경기력을 헐뜯고 만다. 더군다나 해설자가 박주영을 혹평하기라도 했다면 더욱 그렇게 된다.
또, 방송 3사가 같은 경기를 중계했을 때, 그 중계를 맡았던 캐스터와 해설자의 진행 방향에 따라 시청자가 느끼는 경기 결과가 다르게 모두 나타나기도 한다. 같은 경기를 각각 다른 방송사를 통해 본 사람들의 경기 관전평이 조금씩 다른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중계진의 코멘트 하나에 내 시각이 보았던 사실을 나 스스로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사고(?)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시각의 체험을 청각이 방해하는 것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신문선 해설위원과 차두리의 해설이 수많은 시청자의 청각을 지배해버렸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내뱉은 말 한 마디에 그토록 흥분하며 후반 31분 이후부터는 제대로 축구를 시청하지도 못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중계 문화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축구를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중계 문화에 사로잡혀 더 재미있고 창의적인 축구를 놓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디오여서 모든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의 중계 문화도 팬들 자신이 온몸으로 축구를 느낄 수 있도록 조금 조용해지는 것은 어떨까? 우리 축구팬의 수준은 이미 경기를 충분히 평가하고도 남을 만큼 많이 성장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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