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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논어와 스포츠] 홍명보를 지켜라

기사입력 2013.10.07 14:30

조용운 기자


[엑스포츠뉴스=장원재 칼럼니스트] 일본 서점에 축구 신간 한 권이 나욌다. 이케다 세이고(池田誠剛: 53) 코치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일본인 최초 한국대표팀 피지컬 코치'라는 표지의 부제(副題)가 눈길을 잡아 끈다. 스포츠서울에 기고하는 칼럼니스트 요시자키 에이지의 서평을 옮겨보자.

"이케다와 홍명보 감독은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글쓴이가 이케다에게 물었는데, 홍 감독이 1997~2001년 J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할 무렵 지인과 식사자리에서 동석했다고 한다. 당시 이케다는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코치로 일했다. 한솥밥을 먹은 유상철과 안정환을 통역하던 다카하시 켄토는 홍 감독이 벨마레 히라츠카(현 쇼난 벨마레)에 있을 때부터 통역했다. 두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처음 만난 순간부터 느낌이 왔단다. 두 사람 모두 한국과 일본이 맞수면서도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해 의기투합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했다. 홍 감독은 그 자리에서 '언젠가 제가 감독을 맡을 때 같이 일해주시겠느냐'고 물었단다. 이케다는 자기와 같은 팀에서 활동하지 않은 홍 감독이 적극적인 제의를 한 것에 대해 "(한국 선수들이) J리그로 넘어오면서 몸 상태가 더 좋아졌다는 얘기를 종종 하더라. 그게 피지컬 코치 덕분이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며 "홍 감독은 선수 시절부터 피지컬 코치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 전 까지 축구계에서 통용되던 상식이 있다. 한국 선수들은 체력이 강한 대신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 이 '상식'을 뒤집은 것이 거스 히딩크 감독이다. 그는 한국 선수들의 체력이 세계 수준에 비해 얼마나 뒤져있는지를 여러 가지 수치로 증명했다. 히딩크 노트에 의하면,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경기를 기준으로 했을 경우 후반 17분 무렵에 팀 전체의 체력이 바닥나는 팀이었다. 100% 경기력을 보여주는 시간도 초반 15분에 불과하다는 분석. 우리가 '체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순간 스피드'였고, 86년과 94년 월드컵의 상대적 선전은 '고지대'와 '40도를 넘나드는 고온'이라는 변수에 힘입은 바 크다는 이야기였다.  

2002년 이전의 한국축구엔 그래서 '피지컬 코치'라는 직종이 없었다. 과학적인 컨디션 관리, 부상 방지와 체계적 재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피지컬 코치는 선수들의 운동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고 이를 유지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전문인력이다. 그렇다면 홍명보 감독은 왜 이케다 코치를 선택했을까? 다시 요시자키의 칼럼으로 돌아가 보자.

"이케다는 홍 감독과 2009년 청소년월드컵을 시작으로 4년째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자서전을 들여다보면 "한국 A대표팀 제의가 왔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런던 올림픽에서 추억은 모든 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A대표팀의 책임감이 차원이 다르다. 올림픽 이후 일본 네티즌의 비난은 물론 가족들도 협박을 받을 정도였다. 다시 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케다의 말이 실려있다. 그러나 홍 감독과 약속한 이상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게 이케다의 매력이다. 그의 자서전을 펴낸 프리랜서 기자 모토가와 에츠코는 "이케다는 한국에서 일하는 게 아시아 축구 수준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또한, 일본 축구 수준 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더라"며 "홍 감독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신념이 이케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케다는 '한국 축구의 강점은 자기 희생과 헌신'이라고 말한다. 히딩크가 꼽았던 한국 축구의 강점이자 매력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렇다면 이케다는 왜 홍명보를 선택했을까.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홍명보는 예전에 일본에서 태어났더라면 역사에 남는 쇼군(將軍)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웃음기가 거의 없는 남자’에게 흠뻑 빠진걸까. 이케다에 의하면 홍명보는 이케다를 감동시킨 남자다. 2009년 수원컵 청소년 대회 결승 한일전. 홍명보는 한국팀 감독이었고 이케다는 일본팀 피지컬 코치였다. 홍 감독은 킥오프 전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시 요시자키 칼럼이다.

"일본선수를 존경하라. 일본을 이기려는 마음이 얼마나 너희를 성장시켰는지 생각해라. 그래서 (일본을) 존경해야 한다. 깨끗한 플레이를 펼쳐 이겨라. 그래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2-1로 이기고 전승 우승했다) 글쓴이 또한 이 말이 정말 마음에 들어 2011년 1월에 엮은 한일 축구문화 관련 서적에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이 일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지닌 것을 고맙게 느끼기도 했다.
또한, 올 6월 동아시안컵 한일전을 앞두고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를 찾았을 때다. 이케다는 "홍 감독은 선수로서 월드컵 본선을 경험하고 국외에서 뛴 적이 있다. 아울러 지도자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경험했다. 선수들에게 세계와 격차에 대해 실감 나게 설명할 자격을 지녔다. 일본에선 아직 선수와 감독으로서 이만한 경력을 가진 감독이 없다"고 말했다. 참,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홍명보를 얼마만큼 지원하고 있는가. 그가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배려를 하고 있는가. 적어도, 일본 축구협회가 일본 대표팀을 위하는 것만큼의 지원을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 코리아에 투자하고 있는가.

FIFA의 홈페이지에 각국의 A매치 정보를 모아놓은 곳이 있다. 한국 과 브라질(10월 12일 서울 상암), 한국 대 말리(10월 15일 천안) 경기도 공식일정으로 잡혀있다. 일본은 10월 11일 세르비아, 15일 벨라로스와 2연전을 치른다. 모두 원정경기다. 이 점이 부럽다. 월드컵을 앞두고 정말로 필요한 것은 원정경기다. 월드컵 본선이 홈에서 열리지 않는 이상, 경험을 축척하는 데는 원정경기가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이변이 없는 한, 아시아 팀은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 1, 남미 1, 아프리카 1 팀과 상대하거나 유럽 두 팀 + 아프리카 한 팀과 한 조를 이룰 가능성이 99%다. (2014 월드컵의 경우 북중미와 아시아는 같은 포트에 속해 만날 확률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유럽 팀과의 원정경기가 우리의 문제점을 점검하는 최적의 매치업이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팀을 상대하는 것도 좋다. 홍명보 감독도 대한축구협회에 이러한 뜻을 여러 차례 전달한 것으로 소생은 전해 들었다.    

11월 16일과 19일은 월드컵 플레이오프를 위해 FIFA가 비워 놓은 날이다. 이미 본선에 진출했거나 탈락한 팀에게는 2연전이 가능한 ‘A매치 데이’다. 일본은 11월 16일 네덜란드와 원정경기를 갖는다. 소생의 취재에 의하면, 일본 축구협회가 ‘출전료 필요없고 항공료도 자비부담할테니 체제비만 네덜란드 협회가 부담해 달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성사시킨 경기라 한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도 아시아 팀과 한 조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던 셈이다. 아직 FIFA 홈페이지에는 올라있지 않지만, 일본은 육로로 이웃나라인 벨기에로 이동, 19일에 경기를 치르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네덜란드는 늘 우승권을 멤도는 전통의 강팀이고, 벨기에는 이번 월드컵 다크호스 1순위로 꼽히는 돌풍 예비후보다.

아직 대한민국의 11월 일정은 오리무중이다. 16일은 서유럽의 한 팀과 국내에서, 19일은 유럽으로 날아가 남유럽의 강팀과 경기를 치르기로 막바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건 다소 무리한 추진이다. 만약 이 일정이 확정된다면, 유럽파들은 일주일 사이에 유럽과 한국을 왕복하며 시차적응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신체적으로 무리가 가는 일이다. 19일 경기를 추진 중인 팀이 조 2위로 플레이오프에 나서는 경우가 생기면 부랴부랴 새로운 상대를 섭외해야 한다. 어지간한 강팀은 이미 일정을 모두 확정했으므로, 우리가 원하는 상대와 경기를 한다는 건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만약 이번 11월을 흘려보낸다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치를 수 있는 원정 경기 기회는 내년 1월의 남미원정(예정)과 중간 기착지인 미국에서 치르는 두 경기가 전부다. 미국에서 열릴 두 경기의 상대가 유럽이나 아프리카 팀이어야 제대로인 월드컵 본선 대비 경기가 되리라는 건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말한다. 홍명보 감독은 이제까지 소생이 이 칼럼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대한축구협회에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지 않았다. 이 칼럼은 홍 감독의 의사 및 의지와는 조금도 관계없이, 소생이 국제축구게의 흐름을 나름대로 취재해서 작성하는 글이다. 논어(論語)에 나온다.

子曰 孟之反은 不伐이로다 奔而殿하야 將入門할새 策其馬 曰 非敢後也라 馬不進也라 하니라
자왈 맹지반(은) 불벌(이로다) 분이전(하야) 장입문(할새) 책기마 왈 비감후야(라) 마부진야(라 하니라)

(해석)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지반은 제 공을 자랑하지 않았다. 싸움에 져 후퇴하자 맨 뒤에서 적을 막았고, 성문에 가까이 이르자 말을 채찍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다. ‘일부러 처져 오려던 것이 아니었는데[非敢後也] 말이 달리려 하지 않았다[馬不進也].’”

- 옹야(雍也)편(篇) 6/15

싸움에 이기고 지는 것은 장수에게 늘 있는 일이다. 싸움에 졌을 때도 공을 세우는 경우가 있으니, 그 중 최상은 끝까지 싸우다 가장 늦게 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맹지반은 노나라 대부의 한 사람이다. 지는 전투에서 끝까지 적에 맞서 싸웠는데, 성에 귀환할 때 ‘내가 용감해서 늦게 들어온 것이 아니라 말이 달리려 하지 않아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끝까지 남아서 싸웠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한 마디로, 자신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구구한 핑계를 대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홍명보 감독은 A매치 후 감독 인터뷰에서 선수 탓, 잔디 탓, 판정 탓을 하지 않았다. 모두 “감독인 자신이 부족해서 흡족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라고 했을 뿐이다. 그래서 묻는다. 월드컵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준비’라는 A매치의 추진 상황이 소생이 취재한 바와 같다면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적어도 일본보다는 한계단 앞선 성적을 올려서 ‘아시아의 맹주’라는 자존심을 세워달라고 청할 수 있는 것인지. 홍 감독의 요청은 별로 들어주지 않고 무작정 16강+는 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것인지. 패전(敗戰)에서도 영웅이 나올 수 있지만, 우리가 그리는 것은 브라질에서 돌아오는 개선장군(凱旋將軍) 홍명보다. 홍 감독에겐 그의 능력을 그의 뜻대로 펼칠 수 있는 적절하고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다. 적절한 지원없이 훌륭한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장원재 칼럼니스트 sports@xportsnews.com

[사진=홍명보 ⓒ 엑스포츠뉴스DB]



조용운 기자 puyol@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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