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임지연 기자] “느려도 자신 있게, 내 공을 던지겠다.”
‘느림의 미학’ 유희관(두산 베어스)이 30일 잠실벌에서 서울 라이벌 LG를 만나 5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10승 고지를 밟았다. 생애 첫 두자릿수 승수를 쌓게 된 유희관이다.
프로 5년차인 유희관은 올해로 처음으로 1군에서 풀타임을 뛰고 있다. 지난해 말 전역한 뒤 시즌 초반 불펜에서 활약했던 유희관은 제구력과 구위를 인정 받아 5월 4일 잠실 LG전에 선발로 등장해 승리투수가 됐다. 좌완이 귀한 두산에겐 보배였다.
▲ 신의 한수가 된 선발 전환
유희관은 5월 28일 사직 롯데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김선우의 부진과 새로 영입한 개릿 올슨의 부상으로 구멍 난 선발진을 채우기 위한 조치였다. 결과는 ‘대성공’. 유희관은 선발로 18경기 나서 8승(6패) 평균자책점 3.67로 마운드를 지켰다. 두산 선발진의 한 축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았다.
최강타선을 가진 두산은 선발 투수들의 부상과 난조로 시즌 중반 어려움을 겪었기에 유희관의 선발 전환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가 됐다. 유희관이 10승 고지를 밟으며 기대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두산은 올 시즌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와 노경은에 이어 10승 투수만 세 명을 배출하게 됐다.
▲ 생애 첫 두 자리 승수·25년 만에 달성한 두산 국내 좌완 10승
유희관은 생애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또 두산 마운드 역사에서 25년 만에 10승을 수확한 토종 좌완 투수로 남게 됐다. 1988년(OB시절) 윤석환 전 투수코치가 13승을 올린 이후 처음 기록한 좌완 10승이다. 이혜천, 류택현, 진야곱 등 많은 투수들이 10승을 노렸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경기 후 유희관은 “경기 내내 떨렸고, 10승이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또 윤석환 코치님 이후 25년 만에 기록이라니 더 각별하고 기분도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느림'이 트레이드 마크가 된 유희관이지만 실제로는 빠른 공이 위력적이다.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묵직하면서도 제구가 뒷받침되는 직구가 있기에 느린 공은 더욱 큰 무기가 된다.
유희관은 최고구속 130km 중반대 직구를 뿌리며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또 80km대 저속 커브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다. 유희관의 완벽한 제구력과 완급 조절능력이 낯설어, 버럭 불쾌함을 표하는 타자들도 있었다. 전문가들도 느린공은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희관은 보란 듯이 해냈다. 빠른 게 대세일 때 자신만의 묵직한 공으로 ‘느림의 미학’을 세상에 내놓았다.
“올해 목표가 1군에 머무르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와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족하지 않고 포스트시즌에 나아가 팀에 기여하고 싶다. 내년, 후년을 더 잘 준비하도록 하겠다”는 유희관은 "내 공이 느려 한계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더 자극이 됐다. 공은 느려도 자신 있게 내 공을 던지려는 생각뿐이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 10승 투수 유희관의 다음 등판이 기다려진다.
임지연 기자 jylim@xportsnews.com
[사진 = 유희관 ⓒ 엑스포츠뉴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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