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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리의 부귀영화] '감기' 재난 영화로 포장된 현실풍자극의 언밸런스

기사입력 2013.08.14 16:55 / 기사수정 2013.10.24 16:09

나유리 기자
 

[엑스포츠뉴스=나유리 기자] '돈벌이'를 찾아 한국에 밀입국한 동남아계 외국인들이 컨테이너 안에서 모두 죽은채 발견된다. 사망 원인은 변종 조류 인플루엔자로 추정되었다. 여기에 감염되면 감기에 걸린 것처럼 고열이 나고 기침이 나지만, 보통 감기와 달리 시간이 치료제가 없는 상태에서 결국 피를 토하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영화에서는 이 변종 조류 인플루엔자를 '감기 바이러스'라고 부르고 있다.

컨테이너의 주검들을 최초로 발견한 밀입국 알선책인 병우(이상엽 분)는 '감기 바이러스'에 자신도 모르게 감염되고, 경기도 분당 시내 전체에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리게 된다. 수십만명이 급사하고, 도시가 통제불능에 빠지는 아비규환 속에서 영화 '감기'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감기'는 90년대 청춘 영화의 대표격인 '비트'(1997)와 '태양은 없다'(1998)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의 컴백작이다. 깜찍한 이나영의 모습만 기억에 남았던 '영어완전정복'(2003) 이후 약 10년만이다.

또 순수 제작비만 100억을 들인 대작이기도 하다. 관객수 700만을 넘기며 절찬리에 상영 중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 들어간 450억원이나,  지난해 개봉한 '어벤져스'의 제작비 2400억원에 비하면 무안해지는 '금액'이지만, 충무로에서 100억원은 근사한 영화 하나를 만들어내기에 모자람이 없는 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감기'는 어깨에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는 듯 보인다. 



 '감기'는 외국인 노동자 인권 문제, 모성애, 한·미 군사 작전권 문제, 인간의 양면성, 이기적인 정치인들, '자나깨나' 고생하는 소방관들의 노고까지 대한민국의 현재를 풍경화처럼 담아내겠다는 듯한 의욕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여러 캐릭터들이 고지식하고 평면적이며, 곳곳에 클리셰(진부한 표현)로 보이는 장면들이 배치돼 있어 스토리의 신선함이 떨어진다. 

이를테면 '재난 영화'라고 할 때 흔히 떠올리게 되는 익숙한 장면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시내 한복판에 걸려있는 대형 스크린 안에서 뉴스 앵커가 소식을 전하면 멈춰선 시민들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키며 동요한다던가 하는 장면은 눈이 높아진 영화팬들에게는 진부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주인공인 소방관 장지구(장혁 분)는 지나치게 착하고 정의로운 인물로 규정된 나머지 '사람의 냄새'가 부족하다. 그래서 영화 전반에 흐르는 '현실적인 풍경' 들과는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지구의 절친한 '소방서 형'이자 이 영화에서 '코믹'을 담당하는 경업(유해진 분)의 유머는 다소 민망할 정도로 애초의 의도가 살지 않으며, 병기(이희준 분)는 비중 있는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화가 나있는 '막가파'처럼 보인다.

특히 후반부에 시민 진압을 위해 투입된 앳된 군인 두사람과 어머니의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튀어나와 당황스럽기조차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또다른 주인공 인해(수애 분)의 역할이다.  이기적인 의사로 그려지지만 모성애라는 겉옷을 잘 입힘으로써 자칫 평면적일 수 있는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했다. 

진정한 '씬스틸러'는 인해의 딸로 출연하는 아역배우 박민하다. 대사나 표정 연기, 배우로서의 존재감은 어떤 언니, 오빠 연기자들보다 좋지 않았나 싶을만큼 '감초' 역을 잘 소화해 영화에 숨통을 터 주었다.  



이야기가 중후반으로 치달을 수록 '감기'는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재앙'의 모습 그 자체보다 대규모 재난 사태가 일어났을때 이에 대처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더 치중하는 '현실풍자극' 쪽으로 무게가 기운다.

어쩌면 그래서 더 '현실적인 공포'를 체감하게끔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마트, 아파트 주차장, 동네 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실제로 저런 일이 생기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나 고민하게 만든다.

일단 감염된 도시는 '무식하게' 외부와 차단시켜 버리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도 '무식하게' 격리 수용해 버림으로써 사태를 해결한다고 믿는 지도자들의 모습은 또 다른 의미에서 '폐포에 와닿는 공포'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영화 '감기'는 재앙의 진정한 공포 바이러스를 관객들에게 널리 퍼뜨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마도 너무 많은 것들을 담아내려는 무리한 욕심이 '이도 저도 아닌' 무색무취의 영화로 남게 하지 않았나 싶다.

이를 테면 시민 진압을 위해 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나 쓰일 법한 폭격기를 띄우려는 미국 측 파견인과, 서방의 말 한마디에 유약하게 흔들리는 우리 정부의 모습은 실소가 머금게 하는 블랙코미디로서의 효과는 있지만, 과연 애초에 영화가 가려고 했던 방향과 매치가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한마디로 영화가 불균질하다는 인상이 짙은 것이다. 

영화 '감기'는 진짜 무서운건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아니라 이에 대처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력과 무가치관이며, 그것보다 더 무서운건 미국이 가지고 있는 군사통제권이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관객들이 이에 얼마나 동조하고 감동을 느끼게 될까.   

상영시간은 121분. 엔딩크레딧이 지나간 후 짧은 쿠키 영상이 등장하니 놓치지 않아야겠다. 14일 오늘 개봉.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사진 = 영화 '감기' 스틸컷, 포스터 ⓒ 아이러브시네마 제공]



나유리 기자 NY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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