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6.26 12:37 / 기사수정 2006.06.26 12:37
- '우리 선수'는 있는데 '우리 심판'은 없는 K리그
독일과 스웨덴의 16강전 첫 경기에서 ‘예상대로’ 독일이 스웨덴을 2-0으로 꺾고 첫 8강 티켓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전반 초반 터진 두 골로 경기의 분위기를 쥐게 된 독일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스웨덴 수비의 중심 루치치의 퇴장이죠. 전반 35분, 아직 경기의 반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한판 지면 끝장나는 토너먼트 경기에서의 퇴장은 어느 팀에게나 굉장한 타격을 안겨줍니다.
루치치의 퇴장은 앞선 경고 1회와 더불어 두 번째 경고를 받아내 퇴장을 당한 것인데, 전반 35분, 루치치의 추가 경고 상황을 보자면 ‘봐 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파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루치치에게는 경고가 주어지고 어김없이 주심의 손에는 시뻘건 퇴장딱지가 손에 잡혔습니다.
엇, 근데 너무 어색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0-2로 뒤처지고 있는 상황. 여기에 주전 수비수가 퇴장을 당하는데 다들 너무 태연합니다. 한번쯤 심판에게 삿대질을 해줘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심판은 루치치를 바라보며 너그러운(?!) 미소와 함께 레드카드를 들어올렸고, 루치치는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비추면서도 ‘놀라운’ 행동을 보여주죠. 레드카드를 준 심판에게 꾸뻑 인사를 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보기에 참 어색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장면 또한 축구를 보는 맛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도 모르게 터덜터덜 경기장 밖으로 나가는 루치치의 모습을 보고 두세 번의 박수를 전하게 됐답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심판들이라고 세계 최고의 심판이 아닐 리 없지요. 그런데도, 이번 월드컵을 꾸준히 지켜본 이라면 알겠지만 이 세계 최고의 심판들이 모인 월드컵이라는 무대에서 역시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어색한 모습이 자꾸 눈에 띄는데, 결정적인 심판의 오심이 일어나더라도 대부분의 국가는 주장 한 명만, 혹은 주변에 있는 선수 한두 명 정도가 함께 붙어서 짧게 항의를 하지 모든 선수가 우르르~ 몰러가 심판 귀에 대고 소리를 질러버리는 상황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재차 하는 이야기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듯, 오심은 어디에 가든 있습니다. 오심이 경기에 일부분이라는 점도 축구를 오랫동안 보아오신 웬만한 축구팬 여러분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신이 지지하는 팀이 이득을 봤을 때만 그 논리가 적용될 때가 많지만 말입니다.
K-리그에서든 월드컵에서든, 그리고 박지성 이영표가 활약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든 항상 ‘오심’이 경기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팬들이 느끼는 것만큼 오심의 빈도가 타 리그나 월드컵에 비해 K리그가 ‘월등히’ 많은 것일까요?
"월등히까지는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약간의 차이는 인정을 해야 하겠지만 ‘경기력의 차이’만큼 ‘심판 판정 능력의 차’가 크지 않다는 점 하나만큼은 인정을 해야 할 듯싶습니다. 심판에 대한 선수들의 태도가 이 격차를 더욱 눈에 띄게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심판의 권위 문제입니다. 우리네 리그를 보면 심판에게서 경고나 퇴장 딱지가 쥐어지면 선수들은 하나같이 달려가 심판에게 항의를 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우리 축구팬들이 동경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를 지켜보면 그런 장면을 좀처럼 찾기 힘들죠. 물론 결정적인 오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비슷한 판정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선수들에게 즉각 욕을 먹고 삿대질을 당하는 심판, 그리고 경고를 주고도 선수들의 미소를 볼 수 있는 심판을 본다면 여러분은 어느 경기의 판정 수준이 높아 일까요?
K리그 심판 분들의 오심,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그분들께서 저지르는(!) 오심 빈도에 비해 그분들께서 당하는 푸대접이 너무 심합니다.
지난 4월 26일 축구회관 5층 대회의실에서는 K-리그 심판 전임교육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를 한 교육이었기에 저 또한 그곳을 찾아 함께 참여를 해 보았습니다. 사실 ‘무슨 교육을 어떻게 받을까?’라는 궁금증만을 들고 들어갔는데, 그분들의 노력과 열성을 직접 접하고 나니 스스로 머리가 조아려지더랍니다.
4시간을 훌쩍 넘기는 장시간의 교육이었습니다. ‘공부가 본업’인 우리네 대학생들도 4시간짜리 강의가 잡혀있다 치면 그중 1시간 이상은 잠이나 지각, 문자메시지, 혹은 옆 친구와의 달콤한 잡담 등으로 흘려보내기 십상인데, 조별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전임심판 교육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교육 내용 역시 ‘저런 건 그냥 좀 넘어가지….’싶은 내용들마저 짚고 넘어가는 철저함을 보였습니다.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K-리그의 김용대 심판위원장께서 전임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 선수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셨고, 일부 심판 분들도 발언 순서에서 같은 칭호를 자연스럽게 사용하십니다.
심판들에게는 ‘우리 선수들’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과연 선수들에게 ‘우리 심판들’은 있었는지, 한번 되새겨봐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피땀 흘려 준비한 경기를 심판이 그르쳐놓느냐!”라며 힘껏 항의했던 선수나 서포터들도 심판 선생님들께서 K-리그의 원활한 경기 운영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여기에 전임심판교육 휴식 시간에 “내가 맡은 경기를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아빠가 그렇게 욕먹는 모습을 어떻게 가족들에게 보여주느냐?”라며 쓴웃음을 짓던 한 심판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문득 가슴이 쓸쓸해지네요.
바로 어제도 제가 좋아하는 형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스위스전 심판 판정 이야기를 나누다가 현재 잉글랜드에서 공부 중이신 한 여성 심판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여성 심판분이 3급 심판으로 활동하던 시절, 초등학교 경기의 주심을 맡은 경기에서 한 초등학교 선수가 거친 파울을 범해 경고를 줬더니 그 여성 심판을 향해 ‘18’이라는 숫자를 부르고 성큼성큼 제 위치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슴이 또 쓸쓸해집니다.
여기에 지난 밤 루치치가 그 중요한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고도 심판에게 꾸뻑 인사하고 들어가는 모습이 오버랩되니 이래저래 속상한 마음도 듭니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칭찬에 인색한 나라라지만 앞으로는 심판들의 오심에 대해 항의할 때는 하더라도, 깔끔하고 원활한 경기 운영을 한 심판들에게는 먼저 다가가 만족을 표시하며 심판들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 주는 매너 또한 한국 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엑's 이슈
주간 인기 기사
화보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