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12.20 22:43 / 기사수정 2007.12.20 22:43
질서를 배반하는 그들 앞에서….
[엑스포츠뉴스=남기엽 기자] 1960년대 일본의 소니(SONY)가 워크맨을 개발하면서 20세기 후반의 문명의 패러노이아적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정주적 삶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으며 이 워크맨의 발명은
오디오 시장을 넘어 전체 시장 판도를 뒤엎었다.
그러한 미분적 혁명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무엇에 선행하는지 또 이 작은 발명이 어떤 문명사적 패러다임을 가져다줄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심리학자 네이튼은 인간들이 한 체제에 대해 질서지울 수 없을 때 '정신적 공황'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인간에게는 반드시 일정기준으로 순서를 정해 그것을 각각의 네트웍 효과로 활용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4년마다 월드컵을 하고 매년 수차례 국가 대항전을 하면서도 온갖 비판을 감수하며 피파 랭킹을 정하는 것은 이런 욕구와 무관치 않으리라.
그런데 이 체제라는 것은 매우 영특해서 순순히 인간의 욕구를 따라주지 않는다. 체제 안에는 언제나 카오스적 동력 변화의 요인이 작용하며 그것은 때때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또한, 엄청난 양의 소모적 논쟁을 양산해 많은 이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제일 강한가, 가위냐 바위냐 보냐 하는 보다 단성적이고 중추적 문제가 될 때 그 진원은 폭발한다.
UFC 라이트 헤비급을 정렬하라.
그런 면에서 볼 때 올 한해 네이튼이 말한 '질서화의 욕구'를 가장 배반적으로 제시해 준 체제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UFC 라이트 헤비급일 것이다. 현 챔피언인 퀸튼 잭슨이 전 챔피언인 리델을 훅 한 방으로 내쳤고 그 리델은 '뉴클리어' 키스 자르딘에게 또 한 번 패배했다.
그러나 이 키스 자르딘은 상대적으로 무명인 알렉산더 휴스턴에게 멋진 제물이 되었고 그 휴스턴은 '무패강자' 티아고 실바에게 실신 당했다.
화려하게 입성한 프라이드 챔피언 출신의 쇼군은 포레스트 그리핀에게 제물이 되었으나 그리핀은 과거 자르딘과 '헌팅턴 비치보이' 티토 오티즈에게 패한 경력이 있다. 티토 오티즈는 반달레이 실바까지 잡은 적이 있지만 리델의 벽을 넘지 못했고 반달레이는 현 챔피언 퀸튼 잭슨을 2번이나 링바닥에 눕혀버렸다.
게다가 댄 핸더슨은 올해 반달레이를 잡으며 프라이드 챔피언에 등극했으나 퀸튼에게 졌다. 이쯤 되면 대체 이 선수를 어디다 올려놓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셔독이나 MWK같은 단체들의 고충을 알 법도 하다.
이제 이 화려한 분산적 도미노를 다시금 세워 누가 더 오래 버틸 것인지 정리할 때가 왔다. 그러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세 명이 있다. 바로 정상의 자리에서 낙마하기 전까지 오랜동안 왕좌를 수성하며 양대 단체의 챔피언을 지내온 반달레이 실바와 척 리델, 그리고 현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인 퀸튼 잭슨이다. 때문에 먼저 챔피언의 자리에 다가갈 이를 정하기 위해 실바와 리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위기의 다리에서 맞붙는다.
퀸튼 잭슨, 그가 말하는 실바와 리델
과거가 어찌되었건, 지금 무식할 만큼이나 강자들이 우글거리는 이 디비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이는 퀸튼이다. 퀸튼은 이들과 필연적 운명을 갖고 있다. 과거 프라이드 시절 잭슨은 실바 때문에 2번이나 타이틀 바로 밑문턱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게다가 이후 쇼군에게마저 처참하게 패하며 중소단체로 이적해 파이터로서 전성기를 마감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UFC입성 후 과거 리델을 이긴 전력이 있다는 이유로 비교적 손쉽게 타이틀샷에 접근, 단 한 번의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들며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실바와 리델, 이 두 명의 막강한 역대 챔피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실바가 그에게 2번의 처참한 KO패를 안겨주었다면 반대로 그는 리델에게 2번의 잔혹한 KO패를 안겨주었다. 분명 이들을 바라보는 퀸튼의 심정은 복잡할 것이다.
그에게 "실바는 당신을 이겼고 당신은 리델을 이겼으니 이번 시합은 실바의 승리인가"라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멍청한 질문이다. 그런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에 찬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붙이는 걸 잊지 않는다. "실바가 만약 나와 여기서 (케이지) 붙었다면 그 녀석은 바닥에 널브러졌을 거야. 내가 보증하지."
단 한 명의 승자만이 부활로, 한 명의 패자만이 나락으로.
실바와 리델은 일찍이 겪어본 적이 없었던 고난의 세월을 맞이하고 있다. 연패라고는 당해본 적이
없는 그들이 올 한해 크로캅과 댄핸더슨, 퀸튼과 자르딘에게 각각 2연패를 당하고 타이틀을 빼았겼으니 이 절명에 공감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퀸튼은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 "그 두 녀석은 2연패 때문에 무척이나 힘들 것이다." 이어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이보게, 쉽게 생각해보라고 파이터에게 있어 2연패는 정말 최악이다. 그럼 3연패는 어떨까? 간단하지. 더 최악이야."
내친김에 퀸튼에게 과거의 아픈 기억을 물어보았다. 2003년 프라이드 미들급 타이틀 매치에서 실바의 니킥을 머리에 맞고 링줄에 걸렸던 상황을 묻자 퀸튼은 "이봐, 니킥 하나에 맞고 쓰러질 정도로 내가 약해 보이나?"라며 발끈한다.
"그놈은 처음부터 펀치로 이리저리 나를 교란시켰다고. 두 눈뜨고 그놈 펀치를 맞을 수밖에 없었지 제기랄. 그것만 아니었다면.."이라고 말끝을 흐린다. 이유를 묻자 내놓는 대답이 걸작이다. "그 때 비디오게임을 워낙 많이 해서 훈련을 못 했다."
실바, 올라오라!
그들에겐 풀어야 할 매듭이 있다. 퀸튼이 자신의 디비젼에서 절대적인 강자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킬레스 건인 실바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리델 역시 마찬가지로 그에게 2번이나 패배를 안겨 준 퀸튼을 잡아야 하며 실바 또한 약해진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저 둘을 반드시 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퀸튼은 누가 올라오길 원할까? 이 민감한 질문에 그는 별로 대답하고 싶어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어느 상대를 꼽고 있는 듯하다. 그때 퀸튼의 매니저 후아니토가 말을 꺼냈다. "냉정하게 보면 리델의 격투 스타일은 너무 단성적이다. 그에 비해 실바는 다성적이며 굉장히 강한 멘탈을 갖고 있다. 그는 언제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라고 언급했다. 이어 "실바가 이길 것이다. 뭐, 그래 봐야 이 녀석(퀸튼)이 챔피언 자리를 절대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건 변함없지"라며 긴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실바와 리델, 어느 쪽이 되든 간에 이긴 쪽은 타이틀 샷으로 진 쪽은 전례없는 고난으로 빠져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오래도록 성사되지 못한 양 선수의 질긴 인연의 중심에는 퀸튼이 있다. 퀸튼은 이 둘 중 한 인간을 챔피언으로 만들어 주었고 한 인간을 챔피언 자리에서 내쳐버렸다. 이 지긋지긋한 삼각 굴레가 정리되는 날이 일단은 라이트 헤비급의 명확한 '정점'을 가려주는 실마리가 되리라.
오래 기다렸다. 이제 느긋하게 즐겨보자. 그래도, 아마 정감 넘치는 저 파이터 중 한 명이 고개를 떨어낼 때면 필자는 그 옛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을 당시의 염세적 낭만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 엑스포츠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주요 뉴스
실시간 인기 기사
엑's 이슈
주간 인기 기사
화보
통합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