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임지연 기자]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야왕'. 야망의 눈 먼 악녀 다해와 그를 사랑하는 남자 하류의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애증'에 대상이었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계속된 혹평에도 불구하고 연일 시청률이 상승했고, 최종회는 무려 25.8%(닐슨코리아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배우 권상우는 말했다. “올 해 이 기록을 깨는 드라마는 많지 않을 것 같다”고. 함께 자리한 이들 모두 그의 말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드라마 파이가 작아진 건지, 주말극을 제외하곤 20%의 시청률은 넘기는 주중 드라마를 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에.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24부작을 마쳤던 건만, 그는 왠지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배우'라는 자신의 모습에 고민을 안은, 50대 후반에도 멋진 근육을 자랑하는 배우이고 싶다는 권상우를 만났다.
"저라면 복수 안 하죠"
극 중 권상우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당한 남자 하류를 연기했다. 하류는 '야왕' 중반부터 다해를 몰락시키기 위해 복수를 꿈꿨다. 하지만 그에겐 복수심 보다 아련한 미련이 더 크게 남았다. '야왕'은 복수 드라마이기 보다는 한 남자의 처철한 순애보를 택하며 막을 내렸다. 권상우는 "결말이 그래도 하류다운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고 했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너무 기뻤어요.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하지만 한 편으로는 때를 밀러 사우나에 들어갔다가 때를 안 밀고 나온, 딱 그 느낌이에요. 24부작은 한 번쯤은 헤매는 거 같은데, 못 빠져나온 것 같아서 아쉽죠"
왜 그에게 아쉬움이 남았을까. '야왕'은 원작이 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원작의 내용들은 방송용이 아닌 부분들이 많았기에, 큰 틀은 유사하되 드라마는 원작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개연성을 잃어갔고, 극의 초반 빛나던 캐릭터들은 힘을 잃었다는 평이다.
"일단은 캐릭터를 최대한 이해를 하고 찍어야 하잖아요. 시청자들이 따라 오게끔 하려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류가 없어도 이 드라마가 굴러 가겠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밤 세고 쪽 대본은 날라 오는데, 하류는 이미 시청자들이 알 고 있는 내용을 알려주든 그런 식의 대사 밖에 없었거든요. 대사가 길어도 감정을 표현하는 대사면외우는 것도 어려지 않은데…그런 부분이 아쉬웠어요"
"내가 어디까지 와 있는 배우인지 모르겠어요. 25%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 쉽게 나올 거 같진 않지만. 권상우라는 배우를 시청률만큼 좋아해주는 것 같지도 않고 또 쑥스러워요. 사실 하류는 초반 4회까지 보여준 모습이 전부인 것 같아요. 그 힘으로 시청자분들이 배신 안하고 쭉 지켜봐 주신 것 같아요. 반 이상은 사실, 배우도 인간인데…쪽 대본 대사들이 입에 감겨야 하는데 마음이 먼저 밀어내니까요. 그런 부분이 사실 제일 힘들었죠(웃음)"
하류의 가장 통쾌했던 복수를 묻자 머쩍은 듯 웃어 보인 그는 "통쾌했던 복수는 없었던 것 같아요. 초장에 죽였어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이어 권상우라면 하류에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고 되물으니 "저라면 잊을 것 같아요. 자식과 남편을 버리고 간 여자에게 복수해서 뭐하겠어요"라는 덤덤한 모습을 보였다.
"작품이 끝나고 잘되든 안 되든 '그래 수고했다'라는 느낌이 나는 작품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없어요.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드라마 찍지 말아야죠.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 장점일 수도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스태프와 배우들 사이에 뭔가도 있거든요. 그렇지만 대본이 끝까지 나온 상태에서 하게 되면 좋죠. 아쉬운 게 드라마가 중반으로 갈수록 남녀 배우가 보지를 못했어요. 서로 부딪히고, 복수지만 서로 간의 애증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결국 '야왕'은 사랑드라마 인데…그런 부분들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대상은 수애가 받아야. 현장 분위기 너무 좋았어요"
권상우의 아쉬움은 작품을 끝낸 후 배우가 느끼는 작은 것일 뿐 작품 자체를 깎아 내리고자 함은 아니라 했다. 시청률이 높고, 많은 사랑을 받은 만큼 '야왕'의 현장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솔직히 '마의'랑 붙기 싫었어요(웃음) 사극이 자리 잡으면 시청률이 안 빠지니까요. 내심 걱정했는데, 사실 '마의'와 시청률이 비슷하게 나올 때 저희가 이긴 거라 생각했어요. 그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어요. 좋은 분들이었고 늘 웃음이 끊이지 않았죠. 또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재밌게 찍었죠. 사실 시청률 안 나오고 작품성이 좋다고 해도 현장이 분위기가 좋을 수 없는 거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1회 8%의 시청률로 시작한 '야왕'은 먼저 출발한 쟁쟁한 경쟁작 MBC '마의'에 선전에도 불구하고 엎치락뒤치락 동시간대 선두를 다투며 활약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된 촬영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열연을 펼쳤다. 권상우는 '국민 악녀'에 등극한 파트너 수애를 연말 연기 대상감이라고 칭찬했다.
"수애씨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국민 악녀라는 평을 받았는데, 연기를 잘하니까 가능했죠. 만약 연기력이 부족한 여배우가 다해를 연기 했다면, 시청률도 떨어지고 욕은 더 먹었을 거예요(웃음) 수애씨가 잘해줬죠. 감독님께 그런 말씀을 드렸어요. 솔직히 이 정도 시청률 나와서, 연말에 좋은 결과 있으면 대상은 수애씨 줘야 한다고요. 중반 이후부터는 수애씨가 다 이끈 거라고. 하류는 사실 분량이 없었죠. 쑥스러워서 제가 어떻게 받아요. 그럴만한 캐릭터도 아니었던 것 같고(웃음)"
또 이번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정윤호를 향한 칭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정윤호를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가장 '의외의 인물'이라 표현했다.
"윤호가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너무 예의바르고 괜찮더라고요.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것 같기도 하고, 의리도 있고요. 어떻게 보면 가수 쪽에서 신이지 않나. 그런데 순진한 구석도 있고, 매력적인 친구였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는 연기도 곧 잘 하던데요. 이 작품으로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매력 있는 사람 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일 하면서 만나면서 가장 의외의 사람이에요"
'왜?'라고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권상우는 "현장에서 주눅 드는 상황이 많았거든요. 동방신기라는 타이틀 때문에 짜증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미안해하고 잘 따르더라고요. 참 잘하고. 한가로울 때 같이 밥도 먹고 싶어요"라며 다시 한 번 정윤호를 칭찬했다.
예상보다 더 힘들었던 촬영 현장이야기도 들려줬다. 그의 말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마지막 회 엔딩 장면 촬영이 방송 당일 밤 9시 20분까지 이어진 것이다. 진짜 '생방송 촬영'이었다.
권상우는 "그냥 목요일에 나오면 화요일 밤에 집에 들어갔어요. 아침 6시에 촬영 끝나면 스태프들이랑 같이 사우나 가서 같이 씻고, 같이 다시 촬영현장에 가고(웃음) 제가 했던 드라마 중엔 최고였던 것 같아요. 화요일까지 찍었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야왕'은 어느 순간부터 화요일까지 찍더라고요. 그래도 육체적으로 견딜 만 했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죠(웃음)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한강에 빠지는 장면에서 못 빠질 이유가 있겠어요?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아쉽죠"라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배우 권상우, 잘 활용해 주세요"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여유를 좀 누릴 법 하건만 권상우는 계속해서 고민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숨가쁘게 달려왔던 20대와는 달리 점점 생각과 고민이 늘어간다는 그는 '권상우 다운 작품'에 목말라 있었다.
"20대 때는 정신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3년 정도 전부터 배우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팍 와 닿는 뭔가가 없었던 것 같아요. 불안했고요. 배우로서는 좋은 고민인 것 같아요. 스스로는 위축되기도 하고. 남들은 이해 안갈 수 있어요. 어찌됐든 드라마가 성공했는데, 이런 걱정을 한다는 거 자체가. 하지만 이번 드라마가 끝나니 그런 생각이 더 들어요. 나와 잘 맞는 옷을 입고 싶어요. 지금 내가 느끼는 타이밍은 '권상우 다운 걸 보여주자'에요. 쉽게. 하지만 그 쉬운 것 안에서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캐릭터요"
"나는 기복이 굉장히 심한 배우같아요. 활용 방법의 따라 장점이 부각될 수도 있고, 단점이 부각될 수도 있는 배우라고 생각하거든요. 잘 활용하는 작품를 만나고 싶어요. 내 장기를 한 번 발휘해 보고 싶어요"
멜로, 학원물, 액션, 코미디 연기 등 다방면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권상우는 자신 만의 색을 찾길 원했다. 동시에 그는 10년, 20년 후 배우 권상우의 미래를 그려놓고 그 길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중이다.
"정우성 선배를 굉장히 좋아해요. 제일 멋있는 한국 배우 같아요. 그는 '비트'때 건 지금이건 똑같잖아요. 늘 멋있는 길로 갈 수 있는 배우죠. 내가 관객이라면, 정우성이 다른 걸 시도하면 싫을 것 같아요. 늘 멋있게 늙어갔으면 좋겠어요. 차태현도 마찬가지죠. 뭐 늘 똑같다라는 기사가 나오지만 그래도 늘 성공하잖아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인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답답한 게 많은 것 같아요. 멜로, 액션, 코미디 된다고 하지만 정점을 찍을 수 있는 뭔가가 없는 것 같아서요. 한 휙을 그을 수 있는 작품을 장르별로 하나씩은 만들어 놓고 싶어요"
"요즘엔 그런 생각을 많이해요. 캐릭터 선상에 같이 오르는 동년 배우들. 나도 어떨 때는 튀어나갈 때도 있고, 후퇴할 때도 있는데. 그게 중요하기 보다는 그 포지션에서 누가 오래 가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이 빨리 가요. 저는 나름 계획대로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제 2의 전성기가 와도 '천국의 계단' 때처럼은 아닐 것 아니에요. 그래도 나의 포지션 앞에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싶고, 또 50대 돼서도 멋진 영화에서 상체 노출하는 그런 멋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너무도 솔직했던 배우 권상우와의 인터뷰. 20대의 신선함을 지나 30대의 고민과 도전이 지나면, 40대 그리고 그 후의 그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바람처럼 시간이 지나도 '권상우 다운' 매력을 뽐내길 기대해 본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승부해야 할 것은 연기인 것 같아요. 40이 되서도, 영화나 작품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면요.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아 지는 거 같아요. 나는 내가 좋아요. 누구를 만나 건 진솔하게 한 마디 더 하고 싶고, 인간적으로 다가가고 싶죠. 본연의 모습을 바꾸고 싶지 않아요. 요즘 들어 더 크게 하는 생각인데, 배우는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니까요(웃음)"
임지연 기자 jylim@xportsnews.com
[사진 = 권상우 ⓒ 엑스포츠뉴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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