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최종편집일 2024-09-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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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전설의 주먹', 한국 40대 남성들에게 보내는 응원가

기사입력 2013.04.11 23:14 / 기사수정 2013.04.12 20:25

조영준 기자


[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전 세계 40대 중 한국의 40대 남성의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지난 2009년 서강대 정유선 교수가 발표한 '한국 40대 직장남성들의 생활과 인권-사회위 병리, 육체의 손상, 영혼의 노숙'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밝혀진 것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과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기러기 아빠' 등의 현상은 대한민국 40대 남성의 고단하고 쓸쓸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개봉된 강우석 감독의 19번 째 영화 '전설의 주먹'은 40대 남성들에게 '두 주먹 불끈 쥐고 일어서라'는 응원을 보낸다.

이 영화는 3명의 40대 남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과거 촉망받는 복서였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의 꿈이 무산됐던 임덕규(황정민 분), 해외에 나가있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자존심이 짓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이상훈(유준상 분), 그리고 조폭의 삶을 살아야했던 신재석(윤제문 분)은 동갑내기 고교 동창들이다.

파릇파릇했던 청춘기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순수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40대가 된 이들의 삶은 메마른 사막과도 같다. 임덕규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대신해 외동 딸인 수빈(지우 분)을 키운다. 자그마한 국수집 사장인 그의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못하다. 딸 수빈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애정을 쏟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한다. 어머니가 죽은 뒤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끊은 수빈은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닫는다. 임덕규는 이러한 딸에게 조금씩 다가가지만 언제나 외면 당한다.

이상훈은 고등학교 친구였던 손진호(정웅인 분)의 '머슴'으로 살아간다. 어려서부터 재벌 3세인 손진호를 따라다녔던 이상훈은 성인이 돼서도 손진호의 그늘 속에 파묻힌다. 대기업을 물려받은 '회장님' 손진호는 이상훈을 노예 부리듯 이용한다. 이상훈에게 손진호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했지만 '명령 불복종'해서는 안 되는 '주인'이기도 했다. 손진호의 회사에서 홍보부장으로 뛰는 이상훈은 납득이 가지 않는 회장의 지시도 순순히 따른다.



어른들의 그릇된 가르침으로 조폭이 된 신재석은 가정을 두지 못한 '쓸쓸한 40대'다.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조폭으로 살아온 그의 꿈은 암흑의 세계에서 '권력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이리치고 저리 차이는 '뒷골목 3류 건달'일 뿐이다.

꿈과 희망을 잃은 세 사내들은 '전설의 주먹'이라는 TV 리얼 격투프로그램 출연 제의를 받는다. 임덕규는 하나 뿐인 딸을 위해, 이상훈은 회장인 손진호의 명령으로, 그리고 신재석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신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링 위에 선다. 링 위에서 만난 세 친구 중 누가 최종 승자가 될까?

위축된 40대 남성들의 꿈을 부활시키는 환타지

강우석 감독은 '전설의 주먹'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사연이 현실에 기반을 뒀다고 밝혔다. 영화에는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던 여러 사건들이 등장한다.


임덕규의 딸인 수빈은 세상과의 단절로 인해 학교에서는 '왕따'로 지낸다. 학교 일진에 속하는 아이들은 이러한 수빈을 괴롭히더니 마침내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에는 온갖 이물질이 묻은 수빈은 구타까지 당했다. 비참한 딸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임덕규는 상처투성이가 된 딸을 위로하면서 마침내 화해하게 된다. 그리고 "아빠가 잘하는 것은 그거(격투)잖아, 나는 아빠가 계속 출연했으면 좋겠어"라는 응원을 받는다. 딸의 격려로 임덕규는 '전설의 주먹' 최종 우승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어린 시절부터 상대를 함부로 부리는 것에 익숙했던 손진호는 자신보다 나이가 지긋한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야구 방망이로 엉덩이를 내려치는 장면은 신문 사회면에 올랐던 '직장 폭력'을 고발하고 있다.

이 외에 조폭들이 어린 고등학생들에게 '살인 청부 연습'을 시키는 장면 등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어두운 면들을 다룬다. '투캅스'(1993) 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가졌던 강우석 감독의 시선은 '전설의 주먹'에도 살아있다.

여기에 황정민, 유준상, 윤제문 등 40대 배우들의 호연도 볼거리다. 이들은 링 위에서 펼쳐지는 격투기 액션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 리얼리티를 위해 실제로 때리고 맞는 연기를 펼치면서 부상을 당하기고 했다고 한다.



반면 비중 있는 배우들 중 홍일점이었던 이요원의 연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언제나 시청률을 1순위로 생각하는 냉철한 PD 홍규민을 연기한 이요원은 감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목소리 톤과 표정으로 캐릭터의 참맛을 살리지 못했다.

또한 2시간33분이라는 긴 런닝 타임은 다소 지루하게 다가온다. 주인공들의 현재(40대)와 과거(고교시절)를 오가며 이들의 다양한 사연이 그려졌지만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넣으려다보니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전설의 주먹'은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다. 관객들이 선호하는 '눈물겨운 감동'이라는 코드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위해 피멍이 들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임덕규의 모습과 하루 종일 회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다가 외국에 있는 자녀에게 "아빠 직장에서 잘 하고 돈 많이 벌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며 전화 통화를 하는 이상훈의 모습은 뭉클하다.

직장과 사회 그리고 가족에게 외면을 받는 한국 40대 남성들은 '전설의 주먹'이라는 격투프로그램을 통해 자존심을 회복한다. '전설의 주먹'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지만 결코 비장한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마초'들의 로망 중 하나인 격투기를 통해 꿈을 되찾는 '환타지'에 가깝다. 각박한 현실 속에 고립된 중년 남성들을 위한 '힐링 영화'인 '전설의 주먹'은 지난 10일 개봉돼 상영 중이다.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사진 = 전설의 주먹 스틸컷 (C)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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