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스포츠부 강산 기자]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다. 청주 KB스타즈 리네타 카이저 얘기다. 부상 치료를 말없이 기다려준 구단의 은혜를 원수로 갚는 모양새다. 이제는 자신의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트위터에 대놓고 한국 농구를 무시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카이저는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코트 안팎에서의 모든 경험 중 배운 것이 없다면 그것은 좋든 나쁘든 쓸모없는 경험일 뿐이다"고 밝혔다. 이는 카이저가 10일 오후 1시 경에 작성한 글이다.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특히 지난 9일 안산 신한은행전서 '태업 논란'이 터져 나온 이후의 발언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카이저는 9일 열린 신한은행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경기 전 몸도 풀지 않았다. 벤치에서는 아예 털모자까지 눌러쓰고 말없이 경기를 바라보기만 했다. 부상 이전 보여준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 너무나 상반된다. 지난해 12월 발목을 다쳐 재활에 매진했던 카이저는 지난 1일 KDB생명전서 47일 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이틀 뒤인 3일 삼성생명전까지 2경기 성적은 경기당 평균 20득점 10리바운드였다.
카이저는 9일 구병두 KB스타즈 감독대행에게 8일 훈련 도중 발목이 밀렸다는 이유로 경기를 못 뛰겠다고 전했다. 구 대행은 어리둥절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뛸 수 있다던 선수가 점심에 에이전트와 대화한 후 갑자기 못 뛴다고 하더라. 미국 팀과 계약이 되어서인지 뛸 생각을 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단과 동료 선수들도 뿔났다. 구단 한 관계자는 카이저의 트위터 글에 대해서도 "본인이 그런 감정을 갖고 있더라도 SNS에 표출하는 건 아니다. 벌금감이다. 구단은 물론 한국 농구 전체를 무시한 행태다"고 말했다.
카이저는 지난 8일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피닉스 머큐리와 재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이저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또 다른 기회를 준 피닉스 구단에 고맙다. 어서 돌아가고 싶다(Cant wait to get back)"는 발언을 남겼다. 국내 리그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재계약 소식에 마음이 들떴을 터.
하지만 카이저는 KB스타즈와 계약이 돼 있는 만큼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프로선수의 의무다. 구 대행은 이날 카이저의 충격적인 발언을 전했다. 그는 "카이저가 한국 리그는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하더라. 다리가 아픈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우리는 두 달을 기다려줬다. 많이 배려했는데 어제 다친 것으로 더는 못하겠다고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저가 트위터에 남긴 발언은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본인이 "아프다"고 하는데 확인할 방법도 없다. 몸 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답답할 수밖에 없다. "아파서 남은 경기를 못 뛰겠다"는 선수가 "WNBA에 빨리 복귀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자체도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카이저는 11일 경기가 있는 안산이 아닌 천안 숙소로 돌아갔다. 구단 측은 "카이저가 뛰려는 마음이 전혀 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결국 KB스타즈만 '바보'가 됐다. 부상당한 선수를 교체하지 않고 47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기다려줬다. 카이저가 없는 상황에서 국내 선수들이 최대한 버텨줬기에 4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11일 현재 KB스타즈의 4강 진출 매직넘버는 '2'다. 남은 5경기에서 2승만 거두면 자력으로 4강 진출이 확정된다. 하지만 '카이저 사태'로 인해 또다른 변수가 생겼다.
공동 5위 KDB생명과 하나외환이 2.5경기 차로 추격하는 상황. 외국인선수 없이 남은 경기를 치러야 하는 KB스타즈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게다가 선두 우리은행의 우승 매직넘버도 아직 '2'에 머물고 있다. '죽은 경기'를 하는 팀이 단 한 팀도 없기에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빠른 시간 내에 대체 용병을 알아보겠다"는 것이 구단의 입장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잔여 연봉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KB스타즈 구단 한 관계자는 "계약 조항에 WKBL 지정 의사의 검진 결과 선수에게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오면 태업으로 간주하고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며 "본인은 계속 아프다고 하지만 MRI 촬영까지 해가며 검토했다. 국내 선수 중 그 정도 안 아픈 선수는 없다"고 밝혔다.
WNBA 팀과의 재계약이 확정된 상황에서 굳이 한국에서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국 농구를 무시하는 처사다. 이대로라면 제2의 '카이저 사태'가 나올 가능성도 충분하다. WKBL도 규정에 대해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결국 23세의 어린 선수가 팀을 송두리째 흔들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대한 빨리 4강 진출을 확정짓겠다던 토종 선수들의 사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상 치료를 도와주고 기다려준 KB스타즈를 송두리째 흔든 카이저에게 일말의 양심은 있을까. 국내 무대에서 단물만 골라 삼켜버린 카이저, WKBL을 '동네 농구코트'로 아는 모양이다.
[사진=리네타 카이저 ⓒ WKBL 제공, 카이저 트위터 캡처]
강산 기자 posterbo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