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3.16 07:35 / 기사수정 2005.03.16 07:35
‘주먹이 운다’. 흔히 약자들의 입버릇이나 치기어린 허풍을 표현하는 영화의 타이틀롤은 복싱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말 그대로 ‘울고 있는 주먹’이라는 의미로 다시 태어난다. 그만큼 영화는 시종일관 주인공들의 울분과 희망을 복싱으로 마음껏 표현해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관점에서 본다면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띈다.
우선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인 전 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태식(최민식 분). 한때 잘나가던 그는 화재로 불타버린 공장과 도박 빚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남은 것은 몸뚱아리 하나 뿐. 그는 길거리에서 돈을 받고 사람들에게 매를 맞아주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빚독촉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지고 결국 가족들마저도 그를 외면한다.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물러설 곳도 없는 그에게 우연히 복싱 신인왕전 포스터를 보게 된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상환(류승범 분). 그는 전형적인 동네 한량. 패싸움과 삥뜯기가 하루 일과인 그는 큰 싸움에 휘말려 합의금이 필요했다. 결국 돈을 노린 강도 사고를 벌이게 되고 이 사건으로 그는 소년원에 수감된다. 그 곳에서도 방황을 계속하던 그는 우연히 복싱을 접하게 되고 점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할머니마저 쓰러지면서 그는 인생의 막바지를 경험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복싱 뿐.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신인왕을 차지해야 한다.
복싱을 통해 희망을 말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보이는 두 남자의 선택은 복싱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인왕전이다. 사실 이들이 신인왕을 차지한다고 그래서 달라지는 건 없다. 태식이 신인왕을 차지한다고 해서 그의 경제적인 사정이 나아진다는 것은 아니다. 상환도 역시 특박 몇 일이나 모범수로 좀 더 일찍 소년원의 문을 나서는 것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신인왕은 그 타이틀 자체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바로 희망이다.
영화의 마지막 신인왕전 결승 경기 씬에서 그들은 지금까지의 울분을 마음껏 분출한다. 그리고 그 흩날리는 주먹의 눈물은 자신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아직까지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통해서 말이다.
복싱에서 '헝그리'를 뺀다는 것
이렇게 영화는 복싱을 통해서 희망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다. 사실 복싱은 패배자들의 이야기에 단골 매개체였다. 멀게는 영화 ‘성난 황소’(국내에서는 분노의 주먹으로 출시)부터 최근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까지 꾸준히 그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는 오늘날 복싱하면 ‘헝그리(Hungry)'라는 단어를 떠올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셈이다.
일반 스포츠와 달리 복싱이 인간 내외면의 처절함을 표현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소재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이 오히려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낡은 틀에 가둬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또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복싱이 ’패배자들의 스포츠‘라는 이미지 때문에 점점 더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여전히 종합격투기는 복싱의 적?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 속에서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자의 대사이다. 많은 관중들을 본 후 그는 ‘격투스포츠에 식상한 분들이 순수스포츠인 권투를 많이 찾아 주었다’는 식의 말을 한다. 물론 이것이 영화에서 의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류승완 감독은 복싱이 아닌 종합격투기를 고려했을 정도이다.) 출연자의 애드립일 수도 있고 각본진의 무심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벗어나 이는 여전히 격투기를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권투계의 현실과 그를 공론화하고 있는 영화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격투기는 엄연히 권투와는 같은 스포츠이지만 결코 라이벌은 아니라는 것. 아니 오히려 같이 가야할 동반자라는 것. 이런 잘못된 대중들의 오해들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스포츠 영화가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싶다.
<스틸컷 출처 - 영화 '주먹이 운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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