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조영준 기자] "처음 출전하는 그랑프리 대회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그저 좋은 경험을 쌓고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기쁩니다."
'남자 피겨의 기대주' 김진서(16, 오륜중)가 처음으로 출전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남자 피겨 사상 두 번째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주관하는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한 그는 위와 같이 소감을 밝혔다.
한국 남자 피겨는 여자 싱글과 비교해 선수층이 열악하다. 몇몇 재능 있는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시상대에 오르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현재 피겨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성일(43) 코치는 1991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올렸다.
또한 91, 92 아시안컵 정상에 오르면서 남자 피겨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러나 정성일 이후 한국 남자 피겨의 침체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ISU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이준형(16, 수리고)이 동메달을 목에 걸며 ISU 주관대회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획득해냈다.
그 다음 페이지는 김진서가 작성했다. 김진서는 지난 14일(이하 한국시간)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2012~2013 피겨 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3차대회'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 출전해 10위에 머물렀다.
점프는 나름대로 괜찮았지만 스핀과 스텝에서 큰 실수를 범하며 10위로 추락했다. 메달 획득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지만 김진서는 대역전극을 펼치며 3위로 수직상승했다.
트리플 악셀 두 번 성공, 한국 피겨 사상 최고의 기술 난이도
15일 열린 프리스케이팅에 출전한 김진서는 8개의 점프를 시도했다. 트리플 악셀+더블토룹 콤비네이션 점프와 트리플 러츠, 트리플 룹, 트리플 플립, 그리고 단독 트리플 악셀과 트리플 살코, 트리플 토룹+트리플 토룹, 더블 악셀+더블 토룹+더블 토룹 등 만만치 않은 구성이었다.
김진서는 트리플 플립에서 롱에지(잘못된 스케이트 날도 도약하는 점프)를 받았다. 하지만 더블 악셀+더블 토룹+더블 토룹 콤비네이션 점프를 제외한 나머지 점프에서는 모두 가산점(GOE)을 챙겼다. 특히 첫 기술인 트리플 악셀+더블 토룹은 1.14의 높은 가산점을 받았다.
어린 시절 줄넘기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는 그는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는 점프가 인상적이다. 김진서는 이번 대회를 통해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점프를 검증받았다. 쇼트프로그램까지 포함해 한 번도 빙판에 넘어지지 않는 점프 성공률도 인상적이었다. 피겨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김진서는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트리플 5종 점프(토룹, 살코, 룹, 플립, 러츠)를 모두 완성시켰다. 그리고 트리플 악셀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현재 김진서는 남자 싱글 선수에게 '필수 요소'가 된 쿼드러플(4회전) 점프까지 도전하고 있다.
약점인 스핀을 보완하는 것이 과제, 큰 부상도 피해야할 요소
김진서는 쇼트프로그램을 연기하는 도중 스핀에서 큰 실수를 범해 점수를 챙기지 못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한층 좋아진 집중력을 보이며 스핀을 마무리했지만 앞으로 보완해야할 과제도 나타났다.
또한 큰 부상을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김진서는 지난해 5월 13일. 트리플 악셀을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하지만 기쁨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고 시련이 닥쳤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지난해 6월. 지상 훈련 도중 바닥에 크게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아픔을 이기고 다시 연습에 들어간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코를 풀 때, 왼쪽 귀에서 바람이 나오는 것이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어린 김진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왼쪽 귀 고막의 80%가 찢어졌다는 검진 결과가 나왔다.
고막 이외에 허리와 무릎도 좋지 않았다. 지난해 열린 국내대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하지만 올해 1월에 열린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이를 극복하고 국내 정상에 등극했다. 지난달에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도 1위에 오르며 두 번의 주니어 그랑프리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처음 선 국제무대라 그런지 쇼트프로그램에서 김진서의 움직임은 경직됐다.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에서 제 기량을 발휘한 그는 10위에서 3위로 7계단이나 도약했다.
어려서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김진서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갖췄다. 여기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성실함도 겸비했다. 밝고 낙천적인 성격도 큰 몫을 했다.
좋은 스케이터가 갖춰야할 가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꾸준함'이다. 어린 유망주들이 성장할 때 반드시 극복해야할 고비가 있다. 주니어는 물론 시니어에서 성공하려면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과 사춘기 시절의 정신력 극복 그리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근면함을 고루 갖춰야 한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에반 라이사첵(미국)은 지난 5월. 아이스쇼 출연을 위해 내한했다. 당시 스는 좋은 스케이터가 될 수 있는 조건 중 '근면 성실'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나태해지다가 사라져버린 기대주들은 적지 않다.
밝고 쾌활한 성격에 성실함까지 갖춘 김진서의 행보는 지금부터 시작됐다.
[사진 = 김진서, 김연아 (C) 엑스포츠뉴스DB]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