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강산 기자] '야유', '남을 빈정거려 놀림', '남을 빈정거리며 놀리는 몸짓'을 뜻하는 명사다. 최근 야구장에서 빈번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다. 지난 24일, 잠실구장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LG 트윈스 간의 경기에서 화제가 됐던 단어도 바로 '야유'였다.
상황은 1회초, 넥센의 3번 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장한 이택근의 타석이 돌아오자 1루 측 LG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이택근은 이에 헬멧을 벗고 90도로 인사하는 장면을 보였다. 이 장면은 TV 중계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게도 전달됐다. 이후에도 이택근의 타석이 돌아올 때마다 야유가 계속됐다. 이택근은 계속해서 1루측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택근은 LG에서 활약한 지난 2시즌 동안 2할 9푼 9리(654타수 196안타) 18홈런 79타점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FA(자유계약선수)가 된 이택근은 4년 50억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에 친정팀 넥센 유니폼을 입게 됐다. 친정팀 유니폼을 입고 2년간 몸담았던 팀의 홈경기에 출장한 이택근에게 돌아온 것은 '기립박수'가 아닌 '야유'였다.
야유 세례를 받은 이는 이택근 뿐만이 아니다. 1998년 신인 시절부터 무려 14년 간 LG에만 몸담았던 포수 조인성도 야유 세례를 피해가지 못했다. 조인성은 20일 잠실구장서 열린 LG와 SK의 맞대결에 SK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LG의 '안방마님'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한 조인성에게 LG팬들은 정이 많이 들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조인성의 첫 타석에서도 기립박수가 아닌 야유가 터져나왔다.
2년 간 잠시 LG 유니폼을 입었던 이택근의 경우엔 어쩔 수 없다 할 지라도 14년간 묵묵히 팀의 안방을 지키다가 떠난 선수에게 야유를 보낸 점은 누가 봐도 쉽게 이해 되지 않는 장면이다. 조인성 본인도 친정팀인 LG 팬들의 야유에 "섭섭하기도 하고 속상했다"고 한다.
문화적인 차이와 시각차를 감안하더라도 메이저리그의 경우를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가장 좋은 예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1997시즌 신인왕 출신으로 9년 간 한 팀에 몸담았던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경우를 보면 된다.
가르시아파라는 보스턴서 8년간 활약한 뒤 2004시즌 중반 내셔널리그의 시카고 커브스로 트레이드됐고 2006시즌부터는 LA 다저스로 옮겨 3년 간 활약했다. 2009시즌에는 아메리칸리그로 돌아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2009년 7월 7일, 가르시아파라는 보스턴을 떠난 이후 5년 만에 정든 펜웨이파크(보스턴 홈구장)을 찾았다. 물론 그는 오클랜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가르시아파라가 2회초 첫 타석에 들어서자 열광적이기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보스턴 팬들이 일제히 일어나 약 1분간 기립박수를 보냈다.
'환영한다, 노마(Welcome Back, Nomar)'라는 플래카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팀을 떠나긴 했지만 8년 간 한 팀에서 활약한 뒤 떠난 레전드에게 박수를 보내는 팬들의 표정엔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 보스턴 팬들의 사랑 덕분이었을까, 가르시아파라는 2010년 3월 보스턴과 1일 짜리 계약을 맺은 뒤 보스턴 유니폼을 입고 은퇴식을 가졌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내 식구'라고 생각했던 선수들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활약하는 모습을 인정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야구'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저 선수가 우리 팀에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떠난 이들에 대한 '야유'가 '기립박수'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가 아닐까.
[사진=이택근, 조인성 ⓒ 엑스포츠뉴스 DB, SK 와이번스 구단 제공]
강산 기자 posterboy@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