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장인영 기자)
([엑's 인터뷰①]에 이어) '올라운더'(All-rounder). 사전적 의미는 '다재다능한 사람'. 올라운더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누군가 떠오르는 듯한 기시감이 들곤 했다. 폭설로 시작을 알린 올겨울,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첫 번째 정규앨범 '샤인(Shine)' 발매 기념 인터뷰를 위해 손태진과 만났다. 약 60분간 이어진 손태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떠오를 듯 말 듯 한 그 '기시감'을 해결했다.
손태진의 첫 시작은 성악이다. 손태진은 2016년 JTBC '팬텀싱어' 시즌1 초대 우승 팀 포르테 디 콰트로(Forte di Quattro) 멤버로,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2018년에는 첫 솔로 싱글 '잠든 그대'를 발표한 데 이어 첫 단독 콘서트 'Fw : I am'까지 성황리에 마치며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저변을 넓혀갔다.
그러던 손태진은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2022년 MBN '불타는 트롯맨'(이하 '불트')에 출연을 결정한 것. 베이스 바라톤 성악가가 부르는 트로트. 누군가의 상상 속에나 있을 법한 장면을 그가 실현시켰다. 그리고 보란 듯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
돌연 트로트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손태진은 "아무래도 성악이나 오페라는 외국 문화가 많이 담겨 있다 보니까 (대중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지 않나. 일단 우리말로 된 노래를 해야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군악대에서 성악병으로 활동하면서 발성은 성악인데 '붉은 노을' 부르고. 아는 노래가 나오니까 많은 분들이 함께 즐기고 무대를 응원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뒷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전역하고 '팬텀싱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대중들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특성상 외국곡들을 많이 다루지 않나. 자연스레 가요를 노래하고 싶은 꿈과 목표가 생기더라. 신인 가수처럼 지금까지 쌓았던 것들을 내려놓고 루키처럼 도전해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불트' 출연을 두고 손태진은 "내 인생 수많은 선택 중 가장 힘들었던 선택"이라고 일컬으면서도 "가장 큰 효과와 배움이 있었다. 몸소 부딪혀 봐야 깨닫는 게 있지 않나. 제 몸을 새로운 세계에 던진 거다. 덕분에 음악적으로도 시야가 넓어지고 오늘날 정규앨범을 내는 것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성악과 트로트, 두 장르는 발성부터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발성은 독학으로 접근하기 힘든 분야다. 통상 음악이라는 대장르 안에서 음악가라고 한들 모든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든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손태진은 서울대학교 성악과 출신으로 오랜 시간 성악을 배우고 성악 발성을 다져온 사람이다.
손태진은 "성악을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과거 음향 시스템이 없었을 때 몸을 악기화해서 멀리까지 (소리를) 보내는 발성을 연구하는 거다. 하지만 이제는 마이크가 있다 보니 성악가들도 발성을 많이 바꾸기 시작했다. 성악가들이 '마이크를 탄다'라고 얘기하는데 음향 시스템에 힘입어 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는 발성들을 많이 연구하고 있다. 저도 매일매일 연습실에서 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근데 '불트' 출연에 있어 단순히 악기화가 아니라 가수 손태진이 노래를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할지 방법을 찾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불타는 트롯맨' 첫 예선 당시를 떠올리던 손태진은 "노래를 해석할 때 원곡 가수의 느낌을 따라가면서도 새로운 창조가 되려면 나의 색깔을 잃으면 안 된다. 오히려 성악적인 걸 다 덜어내면 이질감이 생길 것 같더라"라며 "손태진의 색깔 20~30%는 남겨두고 새로운 것들을 채우려고 했다. '팬텀싱어' 예선 때랑 '불트' 예선 때를 비교해도 다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손태진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구나 싶다"고 설명했다.
'트로트가수 손태진'을 위해 그는 "존경받는 대선배님들을 보면 그분만의 장점이나 필살기가 있더라. 그게 목소리나 고음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춤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특출난 부분이 있는데 그런 걸 보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빛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가성이 좋은 분들을 보면 제 음악에도 한 번 넣어보고 반대로 읊조리듯이 노래하시는 분들은 몰입감이 엄청난데 그럴 땐 나도 한번 읊조려본다"고 그간의 노력들을 밝혔다.
손태진은 "'불타는 장미단'만 해도 1년 동안 150곡을 불렀다. 다양한 장르와 곡들을 소화하면서 일종의 실험을 해본 거다. 제 것을 만들어 나간 계기였다. 처음에는 저와 안 어울리는 노래 불러달라고 하면 망설이곤 했는데 지금은 망설임 없다. 한 곡 한 곡 저만의 색깔로 만들어가다 보니 지금의 손태진이 있다"고 자신했다.
'우승 컬렉터'라는 별명까지 거머쥘 정도로 턱턱 우승을 해낸 사람처럼 보이지만, 늘 불안감이 함께 했다. 손태진은 '불트' 경연 당시 타 참가자들을 보며 '정통으로는 이 실력자들을 이길 수 없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고.
그는 "다른 동료들이 못하는, 손태진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줘야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전 댄스로 누군가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 그러면 댄스로 싸우지 않는 거다. 이처럼 스스로의 음악성을 믿고 나만의 색깔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곡들을 찾았다. '불트'를 하면서 누가 봐도 손태진이 잘하는 무언가를 찾는 과정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손태진은 '남자 패티김'을 꿈꿨다.
그는 "음악적 롤모델을 얘기하자면 패티김 선생님이다. 감성이 비슷한, 음악적으로 따라가고 싶은 길이라고 하면 이미자 선생님이다. 현인 선생님, 백호 선생님처럼 중후한 목소리를 가진 그런 가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고 말했다.
손태진은 "평소에 서정적이면서 시적인 가사들을 좋아한다. 오페라보다 가곡을 좋아했던 이유도 가사 때문이었다. 찾아보니까 1세대 가수분들 중에 성악 전공자들이 많으시더라. 저의 음악적인 색깔을 완성시키기 위해선 배울 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씀드린 분들이 한 시대의 아이콘 아닌가. 국민 가수가 되는 건 모든 가수들의 꿈이기 때문에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롤모델로 삼고 그 길을 따라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크로스오버 남성 4중창 멤버부터 트로트 가수까지. 극과 극의 장르를 넘나들며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 있었던 용기의 원천을 묻자, 손태진은 망설임 없이 '팬들의 응원'을 꼽았다.
([엑's 인터뷰③]에서 계속)
사진=미스틱스토리
장인영 기자 inzero62@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