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김현정 기자)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 오묘한 미소, 분노와 원망, 슬픔이 한데 녹아있는 듯한 눈빛까지 왠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지게 했다.
그런 장하빈과 달리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배우 채원빈은 편안하고 캐주얼한 모습으로 기자들을 마주했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20대 초반이지만 조곤조곤한 말씨로 자기 생각을 차분하게 전달한다.
“하빈이는 귀 뒤로 머리를 넘긴 적 없고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방도 깨끗해요. 책장에 꽂힌 책들을 봐도 취향을 알 수 없어요. 옷도 비슷비슷하게 기억에 안 남을만하게 입고요. 마지막회에서 식사할 때 처음으로 한쪽 귀를 넘겨요. 단절되고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채원빈은 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서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인 아버지 장태수(한석규 분)가 수사 중인 살인 사건에 얽혀 아버지와 심리전을 벌이는 하빈 역을 맡아 흡인력 있는 연기를 펼쳤다.
“부모님이 첫 방송이 끝나자마자 전화하셔서 꺼버릴 뻔했다고, 저런 딸을 상상해 봤는데 너무 최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저는 부모님과 친구같이 지내고 고등학생 때 굉장히 평범했죠. 매점 가는 걸 좋아하고 뛰어다니고 재밌는 학창 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힘들었던 게 하빈이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어요. 감독님께 ‘저는 못할 거 같습니다’라고 한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감독님이 일으켜줬어요.”
채원빈은 첫 주연작에서 눈에 띄게 활약했다. 이수현(송지현), 송민아(한수아), 최영민(김정진)을 죽인 범인인지 아닌지 종잡을 수 없도록 하는 연기가 돋보였다.
“하빈이만 보면 눈물이 난다는 반응이 기억에 남아요. 느껴지셨구나 했죠. 보시는 분들도 그렇게 이해를 해주신다는 게 감사해요.”
하빈은 사이코 혹은 소시오패스 기질을 가진 사람일까.
채원빈은 “하빈이는 남다른 인물인 건 맞다”라고 하면서도 “평범한 사람 같진 않지만 그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견해를 밝혔다.
“처음엔 사이코일까, 소시오일까 알아보고 여기저기 물어봤어요. 감독님이 그것에 대해 집중하지 말라고 했는데 초반에는 이해를 못 했거든요. 정보를 얻어야 하는데 왜 집중하지 말라고 하시지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됐어요.
분명 남다른 면이 있는 친구인 건 맞지만 프로파일러 아버지 밑에서 크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어느 정도는 타이르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어도 차별받고 혼나면서 컸을 거로 생각했어요. 파일러의 시선으로 자녀도 자라지 않을까.
결국에는 하빈이도 고등학생이고 미성숙한 사람이거든요. 정말 이 친구가 사이코. 소시오 성향이 강했으면 무턱대고 작은 칼을 들고 산에 간다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아요. 비상한 머리를 가진 거죠. 도윤이를 납치한 것처럼 해서 경찰들을 그쪽으로 유인하고 성희(최유화)를 죽이러 경찰서에 가는 건 보면 남다른 친구가 맞아요. 가정에서의 결핍이 있는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태수는 믿고 싶은 대로 하빈을 보고 의심했던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하빈에게 동생의 죽음에 대해 다시 물었고 안 죽였다는 하빈의 대답을 들은 태수는 “그래. 알아. 아빠가 너무 늦게 물어봐서 미안해. 아빠 용서해줘”라며 진심을 전했다.
“마지막회까지 하빈이에 대해 종잡을 수 없을 거로 생각하고 겁먹었어요. 중후반부터는 여기서 이렇게 하면 이렇게 보일까 라는 생각을 점점 안 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이 인물에 동화됐다고 느꼈어요. 엄마의 유골함을 보면서 ‘이수현 네가 죽였어?’라고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하빈이가 제일 듣고 싶은 말이고 한마디 말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오지 않았을 거예요.
이 친구에게 질문은 큰 의미에요. 물어봐준다는 건 ‘네가 대답하는 말을 들을게’라는 뜻이기도 하고 나의 한마디로 이 사람이 ‘그래 그렇네’ 하는 거잖아요. 계속 그 말을 듣고 싶었을 거예요. ‘하준이 네가 죽였어?’ 이걸 한 번도 안 물어보고 확신해서 이렇게까지 오게 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일 듣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했어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원빈은 2019년 영화 ‘매니지’로 데뷔했다. 영화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 드라마 ‘화양연화’, ‘트웬티트웬티’, ‘날아라 개천용’, ‘보이스4’, ‘순정복서’, ‘스위트홈’ 시즌 2,3 등에 출연했다.
“기대되는 배우, 궁금한 배우가 되는 것도 좋지만 작품과 인물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고 싶어요. 인생 경험이 쌓이다 보면 10년 뒤에 장하빈을 연기하면 또 다르게 할 수 있거든요 인생에 경험이 쌓이다보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좀 더 잘 표현해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차기작은 12월 18일 첫 방송하는 KBS 2TV 새 수목드라마 ‘수상한 그녀’에서 말순(김해숙)의 손녀이자 지숙(서영희)의 딸 최하나 역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들 아시는 영화가 원작이고 리메이크 드라마인데 음악 드라마에요. 하빈이와 공통점이 있다면 공부를 잘하는 친구예요.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잘해온 학업을 과감히 포기하는 인물인데 굉장히 쾌활하고 밝고 구김살 없고 눈치도 없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자기감정에 솔직한 인물이에요.
‘이친자’ 이전에 촬영을 끝마쳤는데 오픈을 늦게 하게 됐어요. 정말 행복하게 촬영했어요. 한 가지 힘든 점은 저는 원래 그렇게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 그 인물이 되려면 워밍업을 해야하거든요. 현장에 갈 때부터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썼어요. 너무 재밌는 게 ‘수상한 그녀’ 감독님은 아직도 제가 정말 외향적인 사람인줄 아세요.” (웃음)
사진= 아우터유니버스
김현정 기자 khj3330@xport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