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대구, 조영준 기자] '번개' 우사인 볼트(25, 자메이카)의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100m에서 부정실격을 당했던 시련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스프린터인 볼트가 대구 하늘아래 기억에 남을 만한 레이스를 펼쳤다. 볼트는 3일 저녁,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린 '제13회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200m에서 19초40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자신의 최고 기록이자 세계 기록인 19초19(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 시즌 가장 좋은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부상으로 정상적인 시즌을 보내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성과였다.
경기를 마친 볼트는 "최대한 빨리 달리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3번 레인에서 경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주로 5번과 6번 레인에서 뛰었는데 커브를 돌 때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 만족하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볼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3관왕(100m, 200m, 400m계주)에 올랐다. 100m와 200m 세계기록 보유자인 그는 육상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볼트 스스로도 "전설로 남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단거리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우고 있는 볼트는 이미 전설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볼트처럼 단거리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는 드물었다.
칼 루이스와 마이클 존슨(이상 미국)의 대를 이어 육상의 전설로 남고 싶어 하는 볼트는 4일 저녁에 열릴 400m 계주를 남겨놓고 있다. 또한, 내년에 열리는 '2012 런던 올림픽'도 기다리고 있다.
최고의 기량과 겸손한 마인드까지 갖췄다
200m 우승을 차지한 볼트는 기자회견에서 100m 부정 출발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볼트에게 100m 부정출발은 분명 기억하기 싫은 일이다. 하지만,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펼쳐질 대회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볼트는 "한번 부정출발을 하면 실격을 주는 현행 규정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들었다. 하지만, 내가 당한 실격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100m에서 실격을 당한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번 일로 인해 좋은 경험도 얻었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실격을 당한 점은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볼트는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이를 극복해내고 200m에 집중해 값진 성과를 얻었다.
볼트는 "사람들은 아픈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지나간 일은 모두 잊었고 신경 쓰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 남은 경기들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100m 우승자인 요한 블레이크(21, 자메이카)는 볼트가 부정출발을 하는데 영향을 줬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100m에서 스타트를 끊기 전, 블레이크는 미세하게 움직였고 이에 자극을 받은 볼트는 곧바로 스타트를 펼쳤다.
하지만, 볼트는 100m 우승자이자 동료이기도 한 블레이크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볼트는 "블레이크는 매우 훌륭한 선수다. 만약 누군가가 메달을 따야한다면 블레이크를 지목하고 싶다. 그는 충분히 우승할 자격이 있고 매우 성실한 선수다. 블레이크는 처음 훈련할 때부터 지켜봤는데 '이 선수는 다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단거리에서만큼은 독보적인 선수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스프린터 중,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받는 이는 칼 루이스(미국)이다. 루이스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4관왕(100m, 200m, 멀리뛰기, 400m계주)에 등극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4관왕에 등극한 제시 오웬스(미국) 이후, 처음으로 올림픽 육상에서 4관왕에 등극하는 쾌거를 올렸다.
루이스는 단거리 선수로서 멀리뛰기까지 정복하는 저력을 보였다. 루이스 이후, 아직까지 100m와 200m, 400m계주, 그리고 멀리뛰기까지 세계 정상에 오른 스프린터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루이스는 육상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하지만, 거만한 성격은 늘 빈축의 대상이 됐으며 지나치게 상업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태도도 문제점으로 남았다.
마이클 존슨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200m와 400m에서 정상에 오르며 육상계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특히, 400m에서는 세계선수권 4연패를 이룩하며 '90년대 육상의 황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이후로 육상에서 독보적인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볼트는 단거리에서 신기원을 이룩하며 '전설'의 반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볼트가 루이스처럼 올림픽 4관왕에 등극하려면 400m에 출전해야 한다. 400m에 도전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볼트는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큰 신장과 최고의 스피드를 동시에 지닌 단거리 선수
스타트는 언제나 볼트의 '유일한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블레이크와 경쟁을 하던 100m에서도 볼트는 이 부분을 의식했다. 또한, 200m에서 우승을 차지했지만 반응 속도는 0.193로 가장 느렸다.
단거리 선수에게 반응 속도와 스타트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볼트는 이 점에 약점을 보이면서도 '절대 강자'에 등극했다.
볼트는 넓은 보폭과 빠른 스피드로 이 부분을 극복하고 있다. 196cm의 장신은 그는 다른 선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넓은 보폭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민첩성과 막판 스퍼트는 따라올 선수가 없다.
칼 루이스도 출발 반응 속도는 느리지만 막판 스퍼트로 승부를 내는 스프린터였다. 볼트는 자신의 장점인 넓은 보폭을 최대한 살리면서 내딛는 주기를 줄이는 스트라이드 주법을 사용한다. 큰 장신의 장점을 십분 살린 이 주법은 볼트를 최고의 스프린터로 완성시켰다.
2m에 가까운 신장을 지닌 볼트는 현존하는 선수 중, 최고의 스피드까지 갖췄다. 볼트처럼 큰 신장과 최고의 스피드를 동시에 갖춘 스프린터는 보기 힘들었다.
볼트는 자신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다는 점을 200m에서 증명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한 그는 400m계주에서 대회 다관왕에 도전한다.
[사진 = 우사인 볼트 (C) 엑스포츠뉴스 조영준 기자, 전현진 기자]
조영준 기자 spacewalker@xportsnews.com